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묘염 Dec 07. 2022

인류애가 꽃피는 지점

늙어도 너무 늙어

비교적 친절한 편이지만, 때론 과하게 날카로운 경우도 있다. 감정노동이 어려운 것은 내 안의 치사함과 비열함을 매번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무례함을  그 순간에는 꿀꺽 참아 넘기지만 삼켜버린 감정의 여운들을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았다가 비교적 분출하기 쉬운 대상에게 표출하거나 불쾌한 상황을 무던하게 넘기고는 다른 상황에서 엉뚱하게 예민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참담함을 느껴야 한다. 나의 전두엽은 과연 안녕한가. 나는 인간인가 파충류인가. 하는 종류의 괴로움에 맞서다 보면 마침내 뭔들 그게 중요해? 하는 과감한 인간성 포기 현상이 벌어진다. 나는 때로 십 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완전히 다른 인간이 되었다는 위기감을 느끼는데, 그 와중에 십 년 후의 나를 상상하게 되면 대가리를 처박고 집에 칩거하고 싶어 진다.


하지만 칩거를 하는 것도 대가리를 처박는 것도 십 년 후를 상상하는 것도, 집 대출금과 카드값을 다 갚은 자들의 권리이지 내 권리는 아니다. 심지어 나는 매일같이 고기 생선 각종 비싼 과일 타령을 해대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아닌가. 자 접어두고 그나마 좋은 것만 생각하자. 긍정이라는 것은 사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부정을 책임질 수 없는 인간의 최후의 도피처다.

나는 최대한 긍정적인 인간이 되기로 결심했고, 그게 나의 최선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어제는 한 할아버지 손님이 오셨다.  중절모? 같은 모자에 안엔 경량 패딩을 껴입고 밖엔 검정 코트를 입고 나무로 만든 우아한 지팡이를 짚고 오셨는데, 하루에 응대하는 사람의 거의 80프로가 노인인 내가 보기엔 진짜 엄청난 멋쟁이 할아버지였다. 번호표를 누르고 내 자리까지 걸어오는 동안 계절이 바뀔 거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동안 내 사고 회로는 와 멋쟁이시네 에서  와 저 옷을 입는데 얼마나 걸렸을까로 바뀌었다.

내 앞에 오셔서 영겁의 시간 동안 신분증을 꺼내셨다. 스피드가 중요한 직업적 특성상 어르신들의 느림은 머리로는 이해하고 감정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불편한 속도가 되었는데 아무리 그렇다고 할지라도 주민등록증의 앞자리가 일제강점기인 경우에는 문제가 다르다. 내가 인간이든 파충류든 간에 그 정도의 늙음에는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지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공손함으로 응대했다. 할아버지는 귀가 잘 안 들렸다.  필담을 시도했는데 눈도 잘 안보이셨다.  손짓 발짓을 했지만, 할아버지는 마치 재미있는 연극을 보듯 나를 보며 실실 웃으시며 "뭐라고?"라는 거다. 목이 빠져라 크게 외치며 필담도 매직으로 에이포에 한 단어씩 쓰다시피 하며 간신히 의사소통을 이어갔는데 결론은 여기에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광주은행에 먼저 가서 일을 보신 후 다시 여기에서 해야하는 일이었다.


광주은행 직원에게 거의 편지분량의 쪽지를 써서  할아버지 통장에 붙여서 보냈다. 그때 시간이 열한 시였는데 오후 두 시에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내 걸음으로는 십오 분 정도 걸리는 길이였는데 중간에 지하 건널목이 있어서 그랬는지 다녀오시는데 세 시간이 걸린 거다. 할아버지가 꽁꽁 얼어서 돌아왔는데  내 쪽지를 전달했는지 안 했는지 일을 절반밖에 안 하고 돌아오신 거다. 또 가야 했다. 내가 울고 싶었다.

결국 할아버지가 망연자실한 목소리로 "나 이제 못가 내가 택시비 줄게 니가 갔다 와"라고 하시는 거다.

대기 인원이 10명이 넘는데 불가능하지라고 생각하며 할아버지를 봤는데 할아버지가 장난기 가득하게 웃고 계시다가 내 표정을 보더니 "농담이야 농담 자 그럼 내가 택시 타고 갔다 올게 니가 택시비 줘"라고 하시는데 표정을 보니 또 얼굴에 장난기가 그득했다.

결국  할아버지는 또 다른 동네 청년 노인 (78세쯤?)의 도움을 받아 함께 택시를 타고 광주은행으로 떠났다.




그게 내가 발견한 내 직업의 긍정적인 면모다.

삼십몇년도의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상노인에게서 유머감각을 발견할 때의 경이.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에 이는 장난기를 보면 뭐랄까 인류애를 느낀다. 내가 내 아이의 작은 머리통에서 처음 유머감각을 발견했을 때의 기분이 떠오르면서 내 머리가 잠깐 동안 파충류보다 인간에 가까워진 듯 한 기쁨을 느낀다.


여전히 일을 하며 불쑥불쑥 휩쓸리게 되는 감정의 동요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어떤 인간들은 적절한 방식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전두엽이 없는 것 같긴 하지만 그건 인간의 탈을 쓴 개구리일 뿐, 내가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다만 어떤 사람들은 본인의 감정을 처리하는데 미숙하고 그 감정을 나에게 쏟아내는 적절한 방식을 모르는 것뿐이고 , 때로 인간이란 90세가 넘어도 얼굴에 장난기를 머금을 줄 아는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늙을 것인가 하는 생각과 더불어서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뭘 지켜야 하는 당직이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