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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묘염 Dec 14. 2022

직원에게 알고 싶은 것

알아야 할 것과 몰라도 되는 것 좀 구분합시다. 

 감정 기복이 크지 않은 편인데,  며칠 전에 단 한 장의 문서로 화가 머리끝까지 나는 경험을 했다.  ‘직원 알 기제도 이행 기록부’라는 거였는데 모두 작성해달라고 준 그 서류에는 무려  

[재산사항 –자가, 전세, 월세 (    만원), 부동상(    만원),  동산(   만원) ]이라고 본인의 재산을 구체적으로 기재하라고 요구하는 서류였고 그 아래는 무려 [결혼 여부 , 채무 사항(   만원)] 항목도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그러니까 바야흐로 한 삼십 년 전에 작성했던 가정조사 문에 부모의 학벌과 직업, 집의 자가 전세 월세 여부 몇 평인지까지 세세히 기록하던 바로 그때 그 풍경이 떠올랐다. 

나는 그 서류에 –개인정보 침해, 재산권 침해, 사생활 침해-라고 적어서 제출했다.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느냐고 물었다.  직원들 횡령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했다. 요즘 금융에서 돈을 다루는 직원들의 횡령사건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지 않느냐고, 그걸 예방하기 위해 미리미리 직원들의 상황을 파악하는 거라는 거다.       


재산의 소유 정도가 한 사람의 정직성과 청렴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인 공무원이 가져야 할 올바른 신념인가? 오늘 나에게 오신 고객님의 재산사항에 따라 내가 그 고객님의 인격을 판단해도 되는 건가?  

경제사범 중 실제로 많이 가진 자들의 비율이 높다는 점을 차치하고라도 고만고만한 말단 직원들의 재정상태를 전시하는 것이 횡령을 막는 효율적인 방법인가? 돈이 부족해서 그런 일을 저지른다 생각한다면 월급을 올릴 일이다. 국민을 위한 봉사라는 명목 하에 박봉을 정당화하는 조직에서 재산이 많아야 인간 구실을 할 수 있다는 문서를 들이밀다니 대체 뭘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금융을 다루는 직원들은 이미 자리에 앉기 전에 신용을 조회한다. 재정적으로 절박한 사람들의 충동을 못 미더워하는 조직의 우려를 구성원들이 이미 수용하고 존중했다면 ,  조직 또한 구성원들의 사생활과 개인정보를 존중해줘야 한다. 

자가인지 전세인지 월세인지의 여부가 그 사람의 인격에 대해 무엇을 알려줄 수 있나. 그런 식으로 구성원들을 분류하는 조직이 개인에게 애사심과 소속감을 기대하며 충성하길 바라는 것은 뻔뻔한 일이다. 

그러면서 그 종이 위에 제목이 ‘직원 알기 제도’라는 사실은  정말 코웃음이 난다. 직원에게 알고 싶은 것이 고작 네 집이 자 간지 전센지 월센지, 대출은 얼만지 결혼은 했는지 안 했는지의 여부라니. 

이토록 시대에 뒤처지고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무딘 조직이  국가기관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한, 우리의 미래는 아직 조금 어두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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