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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묘염 Jan 01. 2023

2023 , 관성으로 쓰는 새해 첫 일기

다짐할게 뭐가 있다고

밤에 알쓸인잡을 보다 문득 시계를 보니 새해가 되어 있었다. 그것도 새벽 한 시 반. 한 시 반까지 티비를 보다 새벽 두 시에 잠이 들었다.  오늘 아침에 눈을 떠보니 오전 아홉 시가 넘었다.  눈을 뜨며 생각했다.새해란 무엇인가.   


핸드폰을 열어봤더니 카톡이 몇 개 와있었다.  새벽부터 나가 해돋이를 찍은 사진들이었다.  사진 속의 바다에는 사람들이 많기도 했다. 저 많은 사람들이 새벽부터 해를 보기 위해 일어나 집을 나서고,  차가운 새벽바람을 맞으며 손을 호호 불어가며 하늘을 바라볼 때, 모두의 마음속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어떤 소원과 기대가 그들을 깊은 잠에서 일으켜 겨울의 밤바다로 인도하는 걸까.  

아이와 함께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생각했다. 정말이지 새해란 무엇인가.  


​한 해의 끝에서 혹은 새로운 한해의 시작에서 늘 일기를 썼었다.  

나태했던 지난날을 돌이켜보고, 새해에는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이를테면 살을 빼거나 운동을 하거나, 영어공부를 하는 것.  말하자면 시간낭비하지 말고 좀 더 부지런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해보겠다는 내용의 일기였다. 그리고 이 보잘것없는 생의 의미 있는 일이란 고작, 언제나, 늘, 항상, 변함없이, 살을 빼고 운동을 하고 영어공부를 하는 것 말고는 특별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좀 더 어렸을 땐 열두 시가 되는 것을 카운트 다운했고,   한 해 동안 열심히 산 유명인들이 개인적 성취를 이루고 상을 받는 것을  지켜봤고,  그보다 어렸을 땐 그래서 누가 더 한해를 열심히 살았고 누가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혼자 평가하고 이번 상이 맞네 틀리네 판단하곤 했다.

언젠가부터 카운트 다운도 하지 않고, 보신각에서 종을 치는 유명인들도, 예쁘게 꾸미고 나와 상을 받고 기뻐하고  울고 뿌듯해하는 유명인들도 보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종을 치는 일이, 누군가가 상을 받는 일이, 나의 삶에 아무 의미도 기쁨도 어떤 울림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그런 것에서 나를 멀어지게 만든 것 같다.   


그렇다면, 십 년 전에는 혹은 이십 년 전에는  그 사실을 몰랐던 걸까?  그들의 개인적 성취, 한 해가 간다는 느낌.  그저 새해가 왔다는 사실만으로 뭔가가 바뀔 것 같은 어렴풋한 희망의 무상함을 몰랐을 리 없다. 어차피 인생은 나와 무관한 것들을 위해 환호하고 좌절하는 시간들로 점철되어 있다는 사실 또한 막연하게나마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월드컵에서 누군가 골을 넣을 때 나와 무관한 그 골이 나의 삶을 고양시키고 행복감과 환희를 느끼는 것처럼.  어차피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삶의 질량을 채우는 것이 타인에 대한 대리만족일 수도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무엇이 달라진 걸까.  


​새해 첫날 나는 오늘도 관성적으로 일기를 쓴다.  내 일기에는 어떤 다짐도 결심도 없다.  

나는 다이어트를 하지 않을 거고, 운동도 뭐 특별히 열심히 할 것 같지 않다. 영어는 당연히 목록에 없다.  그저 나는 하루하루를 지금처럼 닥치는 대로 살 생각이다. 아이를 돌보고 키우고 ,  회사를 가고 주어진 일을 하고 월급을 받고, 그저 예측하지 못한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요행처럼 혹은 행운처럼 하루를 유지해 나갈 것이다. 시간이 나는 틈틈이 책을 읽을 거고, (내 삶을 지탱하는 유일한 의미다.) 생각이 나는 틈틈이 기록할 거고 (이 또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창조다.) 그 외에 모든 순간 내 아이를 바르게 키우는 일에 집중할 생각이다(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사회공헌이다. ).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집중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의미를 찾을 수 없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사랑하는 것들은 점점 줄어든다.  얼마 되지도 않는 소소한 몇 명의 사람들, 유일한 나의 취미생활인 자리에 널브러져 앉아 읽고 쓰는 일,  그것 말고 생에 중요한 일이 더 무엇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저 모든 것들이 지금처럼 소소하게 유지되고,  어느 날 갑자기 큰 사건사고로 무너지지 않는다면, 새해도 올해처럼 그저 잘 버티고 근근이 유지하고 때때로 즐기며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내 소박하지만 어려운 새해 유일한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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