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어머님이 누구신가.
마스가 성일까 이름일까.
처음으로 아이와 떨어져서 온전히 이틀을 보냈다.
아이가 잘 지낼 수 있을까. 울거나 엄마아빠를 찾거나 심하게 예민해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었다.
아이를 맡기고 돌아서서 차를 타는 순간은 정말이지..
너무 신났다!!!
그 해방감이라니.. 나조차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순수한 행복이었다.
우리는 완전 신났다. 출발 전부터 너무 들떠서, 푹푹 찌는 날씨마저 사랑했다.
달리는 ktx 안에서, 책을 읽었다. 기분 좋은 진동 속에서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고 책을 읽는 시간은 다시 생각해도 꿈인 것 같다.
아주 가끔씩 지금은 아이가 뭐 하나 궁금할 때 (너무 좋아서 죄책감이 느껴질 때 )만 한 번씩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타코를 먹었다. 음식에서 은은한 겨드랑이 냄새가 나는 것 같았지만, 입으로 들어가는 겨드랑이조차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며 기분 좋게 식당을 나왔다. 만원인 지하철을 환승해서 가면서도 힘들지 않았다. 평소에 5000 보도 걷지 않게 아끼고 아끼는 소중한 몸뚱이가 20000보를 움직였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지하철을 타고 땡볕아래를 걸어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부지런히 준비하고 다시 숙소를 나왔다. 또다시 지하철을 타고 땡볕 아래로 나갔다. 수많은 인파 속에 섞여 휩쓸리듯 걷고, 덩어리 져 움직였다. 성지순례 같기도 하고 피난민 같기도 했다.
겨우 엉덩이가 들어갈만한 좁은 의자에 다닥다닥 붙어 앉았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옆사람의 어깨와 나의 어깨가 부딪쳐서, 단전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긴장한 상태로 최대한 몸을 안 움직이고 부딪침을 최소화하며 작은 내 공간을 사수하려고 노력했다. 오만 명이 만들어낸 열기로 땀이 삐질삐질 새어 나왔다.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가만히 있으니 바람이 느껴졌다. 어둑어둑해지는 하늘과, 뚫려있는 천장의 곡선,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울림 같은 소리, 그 소리 사이를 스쳐가는 바람. 잊지 못할 여름밤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집에 두고 온 어린 아들을 단 한순간도 생각하지 않았다.
나와 다른 언어를 쓰는 , 국적도 인종도 나와 다른 사람의 공연을 보면서, 왜 내가 이 사람의 공연에 이렇게까지 행복해질 수 있는지 의아했다. 가사도 정확히 모르는 노래를 들으면서 감동을 받고, 낯선 사람의 춤과 웃음을 보면서 난생처음으로 무대로 난입해서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어머님이 누구시니. 누가 이런 아들을 낳았니!)))) 다른 공연들을 보면서 좋았다. 신난다. 너무 즐겁다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엔 행복하다고 느꼈다. 공연의 중간에 그 팀의 크루 중 한 명이 악기를 연주하는데 눈물이 찔끔 날 뻔했다. 호르몬이 미쳐 날뛰는 게 객년기가 벌써 왔나 싶었지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어쩌면 해방감과 교차되는 지점의 감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불쑥 비집고 올라오는 미묘한 죄책감을 상쇄하기 위한 과장된 행복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게 뭐였 건 간에, 빈약한 일상을 지탱하기 위해, 종종 그런 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