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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묘염 May 07. 2023

아직도 5월  

이제 한 주 지났다고?


아이는 어린이날이 정확하게 뭔지는 모르지만 뭔가 자기에게 유리한 날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유치원에서 어린이날 선물로 들려 보낸 과자상자와,  부지런한 학부모들이 준비한 깨알 같은 간식들, 부모님과 재미있게 놀다 오고 어린이날 잘 보내고 오라는 선생님의 맨트를 종합해 본 결과 어린이날이란 자신에게 유리하며 선물을 요구할 수 있는 날이다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 같다.  인간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깨달아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호모 사피엔스-슬기로운 인간 (5세, 만 3세)은 휴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엄마 일어나 봐.  오늘 나 선물 사주는 날이야. 나는 카봇 아이누크랑 아이언트 갖고 싶어"라며 나를 깨웠다.

나는 고등생물의  비애를  느끼며 휴일 아침을 맞이했다.


비가 많이 내려서 어디 갈 데도 없고 하니, 갖고 싶다는 장난감을 대충 버무려준  후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늘 텅텅 비어있는 동네 장난감 가게로 갔다.  주차장에 진입하기조차 어려웠다. 장난감을 계산한 후 평일이면 너무 한산해서  곧 망할 거라 생각했던 영화관으로 갔다. 같은 생각을 했을 나랑 비슷한 성향의 안일한 부모들과 , 그런 부모 아래서 자라 시끄럽지만 태평한 아이들이  바글거렸다.



 어린이날을 넘기고 나니 어버이날이다.  

양가 부모님과 한 끼 식사라도 하기 위해선, 모두가 가능한 날로, 어버이날에서 너무 멀지 않은 날로, 양쪽과 날짜가 겹치지 않게 일정을 잡아야 한다.  어린이날은 하루 종일 뭘 할지 고민해야 하지만, 어버이날은 그저 밥을 먹고 준비한 선물만 드린다. 그러면서도 어린이날을 챙기는 것보다 어버이날을 챙기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검은 머리 짐승이다.  아이와 나들이를 가면서 수십만 원 깨지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어버이날에 양쪽 어버이에게 용돈을 드리는 건 큰 마음을 먹어야 하는 지출이 된다.  사랑하는 마음에도 경중이 있는 것을 보면 이 세상에 공평한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그 미세한 사랑의 무게는 말하지 않지만 모두가 알고 있어서, 어버이날은 오히려 어린이날보다 신중해야 한다.  어린이날처럼 안일하게 대처했다가는 성의 없음이 부각되는 서운함의 날로 돌변할 수 있다.

저녁 일곱 시에 식당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잡았는데 웨이팅이 1시간이 넘었다.  저녁 내내 차를 타고 여기저기 식당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 동네에 있는 고깃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자식이 어버이날이라고 사준다고 하니까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한 시간 동안 묵묵히 차를 타고 따라가서 그깟 고기를 불평 없이 먹어준 엄마아빠의 마음과, 어디로 갈지 몰라 자꾸 엄마아빠에게 뭐 먹을 거냐고 타박하며 책임을 나누려 했던 자식의 마음과,  놀지도 못하고 한 시간 동안 끌려 다녔는데, 결국 놀이방이 없는 식당에 가서 화가 난 5세 아이의 마음이 얽혀 차 안의 공기가 무거운 밤이었다.  

거의 날마다 보는 사이에, 굳이 오늘이 아니어도 언제든지 날 잡아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하기 위해 의무감에 사로잡혀 각자의 역할극에 유난히 충실한 이런 날들을 맞을 때마다 생각한다.

그래 가족이란 무엇인가.

아마 이런 날에 빠지지 않고 챙겨야 할 누군가가 아직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5월이 되면 어쩔 수 없이 생각하게 된다.

어린이날에 설레어 일어났던 아이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부담스러워하는 어른으로 자라고, 시간이 지나면 부모를 잃고, 부모가 없는 어버이날들을 보내다  본인이 어버이가 되어 자식이 대접하는 한 끼 식사를 먹기 위해 하염없이 기다리는 생의 순환을.

다양한 가족의 형태와 역사만큼이나 제각각의 감정으로 맞게 될 날들의 무게를 생각한다면 어떤 날을 만들어 뭔가를 기념하게 한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결핍과 상실이 순환의 원동력이라면 그 순환 속에서 어떤 사람들은 더 큰 상처를 받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상실을 두려워하는 것이고,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사랑을 기념하는 모든 날이 두려울 것이라는 것이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이런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아마 두려운 것이 많아져서 그런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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