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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묘염 Jul 01. 2024

우리의 시간이 흐르는 방식

오랜만에 친구 집에 다녀왔다. 아침 열한시부터 오후 여섯시까지 대화를 나눴는데 무슨 얘기를 했는지 잘 모르겠다. 한 가지 주제의 이야기가 끝나기 전에 엄마 소리를 몇 번 들었는지 셀 수 없고, 이야기를 하는 내내 손은 다른 것을 하고 있었다. 결국 일곱 시간 동안 식탁을 벗어나지 못했다. 아이들은 둘이서 같이 또 따로 놀면서 쉴 새 없이 엄마 주변을 맴돌았다. 우리는 오늘도 역시 많은 대화를 나눴고 서로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문득 우리의 중학교 시절, 우리의 고등학교 시절, 우리의 대학교 시절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모든 시절이 떠오른다.

우리는 학교에서 하루 종일 얘기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인도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또 얘기하고, 밤길을 걸으며 얘기하고, 어떤 때는 돌아오는 길에 문화 예술 회관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얘기했다. 우리는 대부분 웃었지만 때론 울었고, 서로의 역사를 나눴다.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에도 성인이 된 후에도 함께 했고, 매 시절 우리에게 중요한 무언가를 공유하고, 중요한 결정을 하는 순간에 함께 머리를 맞대었다. 무등경기장 근처의 길을 함께 걸으면서 올려다봤던 짙은 주황색의 하늘도 기억나고, 새벽 빛깔이 나는 촉촉한 밤에 전대 주변을 걸으며 했던 이야기했던 장면도 떠오른다. 우리는 많은 순간 서로의 이야기였고, 잊히지 않는 한 컷 한 컷의 장면들이 전리품처럼 기억 속에 남아있다. 상대적으로 쉬워 보이건 쉬워 보이지 않건 삶은 각자가 수행하는 전쟁이라는 점에서 결국 남는 것은 타인에겐 아무 쓸모도 없어 보일 감상적인 전리품 뿐일 지도 모른다.



infp의 문제는 자꾸만 삶에 의미를 묻는 것이라고 한다. 그것이 인프피의 문제인 지는 몰라도 나의 문제는 아니다. 의미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고???


예기치 못한 사고 한 번이면 우리가 부여한 모든 의미와 삶의 가치는 어처구니없게 없던 것이 된다. 삶이 누군가의 계획일 리 없고, 운명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 의지와는 무관한 일이다. 우리는 그저 살아간다. 나는 삶이 가치 있다고도 혹은 의미가 있다고도, 어떤 중요한 존재론적인 목적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염세주의자나 허무주의자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생의 본질적인 무의미에 맞서 우리가 이 멈출 수 없는 삶에 어떤 자세로 대처해 나가야 하는지를 고민할 뿐이다. 중요한 것은 태도다. 오직 혼자 감내해 내야 하는 각자의 삶에 맞서는 어떤 일관적인 태도. 그 태도를 확립하는 기준이 각개의 삶을 결정한다. 교육은 통치를 수월하게 하기 위한 수단이고, 도덕은 그 필요에 의해 도입되었고, 제도는 지배를 확고히 하기 위한 억압 기제다. 하지만 교육을 인간화의 바탕이 되고 도덕과 제도는 문명의 기반이다. 이 안에서 균형을 잡고 찌그러지지 않으려면 나는 어떤 가치를 지켜야 하고 어떤 가치를 내던져야 할까. 내가 받아들여야 할 도덕은 무엇이고 내던져야 할 제도는 어떤 걸까. 나는 무엇 안에서 살고 무엇 안에서 죽어가고 있을까. 나의 일부분은 여전히 살아있는데 어떤 부분은 처참하게 죽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대화를 시작하려 하자마자 대화가 끝난 것 같다. 시간이 지나가고 식탁 옆을 맴돌며 엄마를 찾던 아이들이 엄마를 등지고 서로를 찾게 되면 아쉬움 없는 온전한 우리의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한 사람에게 온전한 시간이라는 주어지는 때가 있긴 있나? 무덤 속 말고...


한 인간에게 온전한 자유가 흔치 않은 것처럼, 한 인간에게 붙은 수식어가 '온전한'이 될 일이 결코 없는 것은 아닐까. 사람에게 어떤 충족할 만한 만족할 만한 일생의 한때가 주어질까? 생에 복병처럼 치고 들어오는 의문의 순간들과, 의외의 사건들에 대한 해답은 그때 구해봐야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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