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아름다운 해변이 몰려있는 코스타 델 솔의 첫 번째 관문인 말라가에서는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은희경 님 소설제목처럼 살기로 했다. 고작 삼일이지만 빽빽한 스페인 여행스케줄에서 가장 빈 곳이 많은 말라가다. 유럽의 발코니, 네르하와 스페인의 산토리니라는 프리힐리아나, 그리고 론다를 여러 방향에서 즐기기 위하여 긴장의 한 방식으로 비워낼 참인 거지.
말라가 숙소는 최신식 아파트여서 모처럼 밀린 빨래할 생각에 신이 났다. 그동안 이런저런 고생까지 말끔히 씻어낼 참인데 세탁기는 두 시간이 지나도 멈출 줄 모르고, 휴지가 하나도 없어? 안방 창문은 고장이 나서 잠기지 않고, 게다가 공휴일이라 슈퍼마켓도 문을 닫았다. 돌틈에 이리저리 해어진 신발도 아우성이다. 끄적거리던 내 메모장도 마지막 장이 넘어갔으며 볼펜도 머잖아 사망할 듯 나날이 가늘어지고 있다. 설상에 가상이다.
거듭된 불운이란없다고 믿는 마음에 굳이 생채기 내겠냐고, 걱정덩어리들끼리 해결하라 내버려두고집밖을 나선다. 숙소 앞 케이에프씨에서 익숙하여 더 감동적인 치킨으로 허기를 채우고 나니 드디어마음이 한가로워진다. 햇빛 샤워하며 동네를 이리저리 걷다가숙소에 들어서니 손빨래한 옷가지들이 뽀송뽀송하게 말라서 팔랑 인다.
모든 게 마음이 시키는 일이지. 없으면 안 하면 되고, 한 번쯤은 운에 맡겨도 될 일이며 한 끼쯤 굶는다고 죽을 일 아니니 야단스러울 일 없고. 그러고 보니 세상보다는 나 자신과 타협하며 사는 일이야말로 삶의 디톡스 아니겠어.
여행을 했지만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했다는 어느 여행가에게 소크라테스가 말한다. "그야 당연하지. 자네의 자아를 데리고 갔으니 그럴 수밖에"
여유로운 마음의 리듬을 찾은 말라가다. 마음 어지럽고 길도 잃은 어느 날, 마음의 고갱이를 잡고 다른 네가 돼야 한다고 일깨워 줄 말라가란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