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컵들

by hui

1. 집에서 커피나 차 마실 때 주로 사용하는 컵들.

유리컵은 다루기 조심스러워 영롱한 빛깔을 보며 기분내고 싶을때 사용하고 편하게 마시거나 따뜻하게 마실때는 자기 컵을 사용한다. 패턴이 화려해서 내 스타일은 아닌데 큰 용량의 형태로 고르다보니 선택의 폭이 좁아 며칠동안 고민해도 더 나은 선택지가 없었다. 특히 저 빨간색 컵은 받자마자 당혹스러운 색깔과 현란함에 후회가 밀려왔으나 청록색의 컵보다 곡선이 덜해 약간 슬림하여 그 나름대로 필요에 맞게 잘 사용하고 있다. 없는 물욕중에 그나마 있는 물욕이라면 컵을 사는 것인데, 비싼 컵들은 아니지만, 필요에 따라 기분에 따라 형태와 기능이 주는 만족감이 먹고 마시는 즐거움을 더 풍요롭게 해준다.


2. 왼쪽에서 두번째 분홍색 하트가 그려진 컵은 내가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던 곳에서부터 사용하던 것인데 이직한 이후 현재까지 출근하면 항상 함께하는 컵이다. 8-9년정도 사용한 것 같은데 내 직장생활의 역사를 함께한 애정가는 컵이다. 그 오른쪽은 길쭉하게 빠진 곡선과 배트맨 로고가 예뻤던 유리컵인데 설거지하다가 깨트려 버려서 매우 안타까워하며 보냈던 컵이다. 제일 오른쪽의 귀여운 고양이가 그려진 컵은 몇년간 힘들었던 지방에서의 근무를 마치고 서울로 발령받은 후 어느날 서울역 안에서 일정 기간동안 열리는 마켓에서 우연히 구경하다가 구매하게된 컵이다. 컵 두개와 사케잔 두개를 구매했었는데 컵 두개 중 하나는 파란색 고양이 그림이 다른 하나보다 흐릿하고 사케잔은 컵보다 더 예쁜데 사용해본적이 없네.


3. 예전에 빌레로이앤보흐 고블렛잔을 세트로 4잔 사서 필요한 2잔만 꺼내 쓰고 나머지 2잔은 이사갈 때 함께 가져가려고 상자 안에 보관해 둔적이 있었다. 어느날 집에 온 동생네 부부와 저녁과 함께 술을 마신적이 있는데 술자리가 마무리 되자 술이 알딸딸하게 오른 엄마가 나에게 어떠한 언질도 없이 갑자기 동생에게 나머지 2잔을 줘버렸다. 엄마는 종종 주변 사람의 존재는 잊은듯 일방통행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직도 적응이 안된다.


4. 며칠전엔 남자친구가 글랜케런 잔을 세트로 6잔을 샀다. 술 한모금 안 마시는 사람이 위스키 잔은 왜 샀냐고 물으니 예뻐서라고 한다. 나야 어쩌다 마신다쳐도 술도 안 먹는 사람이 위스키 잔을 무려 6개나 사다니 그렇다고 굳이 저 잔에 다른 음료를 담아 마실 것도 아니면서. 아니면 내가 위스키 잔이 사고싶었던걸 기억한건가 내심 반가운 느낌도 들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미루고 미루던 와일드터키 한병을 구매했고 퇴근하고 배고픈 채로 댕댕이를 산책시키던 어느날 양꼬치가 생각나 그 날 저녁 양꼬치와 함께 새 잔에 얼음 넣어 시원하게 마셨다. 그게 벌써 일주일 전이다. 서른 중반이 되어서 위스키에 입문해 혼자서 홀짝여본다. 어느정도 이해도가 쌓이면 나중에 나가서도 마셔봐야지라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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