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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약 Oct 01. 2021

편두통 진단을 위한 뇌 MRI 검사

강남 신경과 3 - MRI 후기

앞선 글에서 편두통으로 신경과 내원 시 시행한 여러 검사들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번 글에서는 MRI 영상 촬영을 하면서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두통 관련 검사에 대해서는 이전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brunch.co.kr/@d688cc96ca81425/22












MRI 촬영 전



의사의 진료 후, 뇌영상촬영을 위해 아래층에 있는 검사실로 내려갔다. MRI 검사실에는 이미 촬영 중인 환자가 있어서 예약 없이 온 나는 30분 정도 기다려야 했다.

엄마와 둘이 나란히 의자에 앉아 기다렸는데, 울음을 그치고 머쓱해진 나는 괜히 엄마한테 말 몇 마디를 걸어보다가 제 풀에 지쳐 엄마 무릎을 베고 누워 버렸다. 토요일 낮의 병원은 사람이 없고 조용했는데, 햇빛이 비치는데도 (내 마음이 그래서인지) 어딘지 모르게 음울한 구석이 있었다.


내 차례가 되자 액세서리를 빼고, 검사복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가방을 엄마에게 맡기고 가벼운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MRI 기계 안에서



MRI를 찍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방사선사 선생님이 30~40분 정도 걸린다고 미리 알려주었다. 또 기계 소리가 매우 크다고 말하며 좋아하는 노래를 말해주면 틀어주신다고 했다. 나는,




매우 상냥하신 분이네.





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기계 소리가 시끄러운데 과연 노래가 잘 들릴까 싶었다. 그래도 제의하신 데는 이유가 있겠거니 싶어 당시 내가 매우 좋아했던 가수의 노래를 틀어달라고 말했다.


머리를 기계 안쪽으로 향하게 눕고 이상한 헬멧 같은 걸 썼다. 헬멧은 머리를 고정하기 위해서였는데, 머리를 감싸는 형태의 딱딱한 골조 구조였다. 투박한 모양새의 볼품없는 헬멧 위로 커다란 헤드폰을 얹었다. 검사실에서 음악이라니. 다시금 생각해도 꽤나 이질적인 조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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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검사를 위해 움직이지 말라고 해서 나는 반듯하게 누운 채로 원통형의 커다란 기계 안으로 들어갔다. 원통 안에 들어가 혼자가 되자, 뇌에 이상이 있다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거라는 걸 (오히려 그럴 확률이 매우 낮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만약에 라는 생각에 겁이 났다. 혹시 정말 또 모를 일이었다.












노래가 주는 위안



기계소리는 생각보다 컸고 불쾌했으며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나는 혼자였고, 시끄러운 소리를 계속 듣고 있자니 덜컥 겁이 났다. 꼼짝 못 하고 갇혀있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또다시 눈물이 났다. 무서운 와중에도 너무 아프고, 아픈 게 화가 났다. 도대체 내가 무슨 죄를 지어 이렇게 아픈 것일까?

열이 받았다. 이때껏 꾹꾹 참아온 게 후회됐다. 누군들 그러겠냐마는 나는, 나도 정말 아프고 싶지 않았다.

치밀어 오른 화가 두려움을 점차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래가 들렸다. 이 상황에서 좋아하는 가수를 물어본다고 콕 집어서 말한 스스로가 좀 웃기고 황당한데, 그렇게 들은 노래가 또 좋았다. 떨리던 마음이 신기하게도 점차 가라앉았다.

이런 연유로, 환자가 조금이라도 안심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주는 걸까. 정말 상냥하고 친절한 분이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진심으로 감사했다.












예상치 못한 반가움



기계가 내는 커다란 소음을 뒤로하고 마주한 노래는 놀라울 정도로 반가웠다. 우주선처럼 매끈한 외피 속 고립된 내부에서 떠오른 건 바로 노래를 들었던 순간이었다. 낯선 공간에 몸은 꼼짝없이 매여 있었지만, 정신은 자유로웠다.


출퇴근 길 수많은 사람이 끝없이 들어찬 꽉 막힌 9호선에서 몸이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인파에 몸을 맡긴 채 나는 두 눈을 감고 이 노래를 들었었다. 당시 나는 몇몇 노래들만 주구장창 반복재생했는데, 가끔은 티브이로 또 가끔은 유튜브를 통해 나오는 음악에 몸을 흔들면서 그렇게 마음도 같이 흔들리면서 들었던 노래였다. 너무나 일상적인 순간, 가장 익숙한 내 생활권 안에서.


부메랑, 에너제틱, 약속해요, 뷰티풀. 이어지는 곡을 손으로 하나하나 꼽으며, 다음 곡으로 어떤 노래가 나올지 은근한 기대를 품었다. 과연 어떤 순서로 곡이 재생되는 걸까 하는 궁금해하며, 근래 발매된 곡이 많은 걸 보면 음원 차트 순위이지 않을까 점쳐보기도 했다.

노래는 나를 편안하게 했고, 그렇게 예기치 못한 방향에서 현실감이 찾아들었다. 두려움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 건 음악, 그리고 일상성이었다.


귀를 기울이며 열 번째 노래 we are을 듣던 중 검사가 끝이 났다. 심각한 상황에도 숨을 틔울 무언가가 있다는 것. 맥락에 맞지 않은 일을 가능하게 하는 특정한 상황과 독립된 무엇. 비일상 중 일상을 느끼게 하는 존재. 그렇게 나를 환기시켜주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래. 검진은 무사히 끝날 테고, 며칠 뒤면 나는 집에 돌아가 있을 것이다. 언제나처럼.











편두통 중첩 상태



당시 나는 '편두통 중첩 상태'였는데, 이를 더 쉬운 단어로 말하면 '편두통 지속 상태'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편두통 발작 시간은 72시간 내인데, 72시간 넘게 계속되는 심한 편두통 발작 G43.2 편두통 지속 상태라 한다.

나는 72시간 넘게 두통이 잦아들지 않았으니 당시 나의 상태를 가장 간단히 표현한다면 바로 이 단어가 될 것이다.



진단서에도 적혀있다.




편두통의 특성상, 발작과 발작 사이에는 통증이 없다. 편두통 발작 사이에 내가 끊임없이 겪은 연속된 통증은 편두통이 아닌 다른 요인에 의한 두통일 것이다.

예를 들면 목과 어깨도 아파서 생긴 긴장성 두통과 편두통을 같이 가지고 있다면, 두통이 계속 지속되는 '편두통 중첩 상태'를 일으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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