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문지 작성하고 의사를 만난 후 여러 가지 검사를 했다. 무슨 검산 지도 모르고, 생전 처음 보는 이상한 기계 앞에 여러 차례 몸을 내밀었던 것 같다. 검사는 정신없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안진검사 : 회당 4만 원 (2회 시행)
카메라가 부착된 고글을 쓰고 시행하는 검사로, 눈동자의 움직임을 볼 수 있다. 나도 무거운 고글을 쓰고 검사를 받았는데, 바로 옆에서 지켜보던 엄마가 말하기를 내 눈동자가 가만히 있다가 자꾸 한 방향으로 휙 돌아간다고 했다.
저장된 영상을 통해 나도 내 눈동자의 움직임을 볼 수 있었는데, 나는 한 곳을 계속 바라본다고 생각했는데 눈동자는 한자리에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눈동자가 한 방향으로 저절로 흐른다고 해야 하나. 눈동자가 떨리면서 스르륵 한쪽으로 흘러내리다가, 훌쩍 튀어서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이렇게 눈이 흔들려서 그동안 초점을 잡는 게 힘들었던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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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진검사는 안구 운동 확인하는 검사이다. 특정 부분을 주시하고 있음에도 눈이 원하는 위치에 머무르지 못하고 한쪽으로 이동할 때, 원위치로 돌아가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눈을 빠르게 옮기게 된다. 이런 현상은 규칙적으로 반복되는데 이를 '안진'이라 하며, 안진이 있으면 눈이 떨리는 것처럼 보인다.
안진검사는 전정기능검사 중 하나로 어지럼증의 원인과 추적관찰에 사용되며, 귀의 전정기관에서 발생한 말초성 어지러움인지, 중추신경계 이상이 있는 중추성 어지러움인지 알 수 있다.
전정유발 근전위 검사 : 5~6만 원
어지럼증 검사 중 하나로, 우리 몸의 평형과 위치감각을 담당하는 전정기관의 기능을 평가한다. (전정기관 중 구형낭의 기능을 검사한다)
청각자극을 주면 이 소리가 구형낭을 자극하고, 그 결과로 목이나 눈 근육이 움직이는지 여부를 확인한다. 소리를 주고 근육의 변화를 통해 전정기관의 기능을 평가할 수 있다.전정신경염, 메니에르병, 이석증, 돌발성 난청 등의 질환을 평가하기 위한 검사이다.
뇌혈류초음파 : 20만 원 (비급여)
초음파를 이용해 뇌혈류의 속도와 방향을 확인할 수 있다. 초음파는 두개골 너머 뇌혈관(주로 뇌동맥)의 혈류 속도를 측정하게 된다. (동맥경화, 협착, 폐쇄 등으로) 혈관이 좁아지게 되면 혈류의 속도가 빨라지므로 간접적으로 뇌혈관의 상태를 알 수 있다.
의사는 환자의 뇌혈류 상태를 평가하여 뇌혈관질환을 진단할 수 있다. 뇌졸중의 위험요인을 확인하고 예방하는데 유용한 검사로 두통, 어지럼증 등의 진단에도 사용된다. 심한 두통, 어지럼증, 실신 등의 경우 뇌혈류의 부족으로 생기는 증상인지 확인하기 위해 시행한다.
나도 뇌혈류속도가 높게 나왔는데, 편두통 환자의 경우 뇌혈류속도가 증가되어 있다고 한다. 편두통 환자는 뇌혈관이 정상 상태보다 수축되어 있어서 뇌혈류속도가 높게 나타난다.
적외선 체열 검사 (DITI) : 15만 원 (비급여)
몸에서 발생하는 체열을 감지하여 질병 부위를 찾는 검사이다. 정상인의 경우 몸의 체열 분포가 좌우대칭을 이루는데, 통증이 있으면 체열이 높아지거나 낮아진다.체열 변화를 적외선 촬영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질병 부위를 판별할 수 있다.
병원을 찾았을 때 나는 몸에 열이 오르고 머리로 열이 뻗치는 증상이 있었다. 아래 적외선 촬영 사진을 보면 머리를 포함한 상반신의 온도가 전체적으로 높은 걸 확인할 수 있다.
왼쪽이 정상, 오른쪽이 내 사진이다
X-ray : 약 3만 원
목디스크, 경추성 두통을 확인하기 위해 엑스레이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경추 3매, 요추 2매, 전척추 2매로 총 7매를 찍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정상적인 사람은 목이 C자 형태인데, 나는 거북목까지는 아니지만 일자목이었다. 일자목이 계속 진행되면 거북목까지 갈 수 있다고 한다. 일자목으로 인해 두통이 올 수도 있지만, 현 상태의 잦아들지 않는 매우 심한 두통의 원인으로 보이진 않았다.
왼쪽이 정상, 오른쪽의 곧은 목뼈가 내 사진이다
뇌 영상검사 : 90만 원(비급여)
뇌 MRI는 뇌 실질의 병변(뇌졸중, 뇌종양, 뇌출혈 등)을 진단하는 데 이용한다. 대부분의 뇌질환은 두통을 동반하여 뇌 MRI 검사를 하게 되는 가장 흔한 사유가 두통이다. 그 외 어지럼증, 이명, 난청 시에도 MRI 검사를 한다.
두통환자가 MRI 정상 소견을 받으면, (다른 뇌질환으로 인해 발생하는 2차성 두통이 아님을 확인하고) 안심하고 두통치료를 할 수 있다. MRI 결과 이상이 없으면 1차성 두통, 이상이 있으면 2차성 두통이다. 편두통은 두통 자체가 증상이자 질환인 1차성 두통으로, MRI 정상 소견을 받는 대표적인 질환이다.
MRA는 뇌혈관을 자세하게 보기 위한 검사로, MRI에서 판단이 어려운 혈관을 영상화해 혈관협착, 혈관기형, 혈관수축 등을 진단한다. 혈관의 막힌 부위와 막힌 정도까지 확인할 수 있다. MRI와 MRA는 함께 검사하고 판독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나는 뇌 MRI, MRA 결과 정상 소견이었다.
검사에 대한 내 생각
편두통의 진단에 뇌영상검사(CT나 MRI)로 뇌를 확인하여 다른 어떤 질병이 없음을 밝히는 것 외에 어떤 검사도 필수적이진 않은 것 같다. 대학병원에서는 뇌 CT만 예약했을 뿐 다른 검사는 하지 않았고, 나중에 영상 결과를 가져가니 MRI만 찍어도 되는데 MRA까지 찍었냐고 말했다.
강남 신경과에서 참 여러 가지 검사를 했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다른 신경과에서도 이런 검사들을 많이 시행하고 있었다. 나는 이번 기회를 빌어서야 그때 어떤 검사를 받았는지 대략적으로 알게 되었는데, 솔직히 이런 검사들이 편두통을 진단하는데 그렇게 의미 있는 검사인지 의문이 들었다.
예를 들어 뇌혈류속도가 증가되어 있다면 편두통의 근거가 하나 더 생길 수 있지만, 모든 편두통 환자에게서 뇌혈류속도가 증가되어 있진 않다. 또한 뇌혈류속도의 증가 여부와 상관없이 두통치료는 변하지 않는다. 적외선 체열검사도 마찬가지인데 내 몸의 온도가 어디가 높은지 알면 그뿐, 머리가 뜨겁다는 걸 알게 되어도 (설사 안 뜨겁더라도) 치료방향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위의 검사 중 편두통에는 필수적이지 않더라도 다른 질병을 배제하기 위한 조치로는 합당한 검사도 있다고 생각된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나는 어지러움, 두통, 눈의 이상, 머리로 열이 뻗치는 증상이 있었는데, 적어도 어지러움이 (이석증이나 메니에르 등) 편두통이 아닌 다른 원인으로 인한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2차병원에서 편두통 진단
신경과에서 편두통을 다루는 방식은 일반 병원에서 두통을 다루는 것과 다르다. 두통을 증상이 아닌 ‘질병’으로 다루며, 질병으로 인식하는 만큼 보다 더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그 결과, 나는 이 강남 신경과에서 처음으로 편두통 진단을 받게 되었다. (이전에 먼저 방문했던 대학병원에서는 편두통 진단을 받지 못했었다. 아직 나는 질변분류기호 R51 '두통'이었다)
이렇게 빠르게 진행되는 부분이 2차병원의 장점이라 생각한다. 속전속결로 검사하고 결과를 볼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신속함은 장점이지만, 비싼 가격은 단점이다. 필수적이지 않은 비급여검사를 포함하여 당일 검사비용만 100만 원이 넘게 나왔다.
또한 검사에 대한 설명이 선행되지 않아서 환자에겐 (필수적이지 않은) 특정 검사를 할지 안 할지 선택할 여지가 없다. 눈 뜨고 코 베이는 느낌이랄까. '돈이 없으면 아프지도 못하겠구나. 병원도 못 오겠구나' 새삼스레 체감했다. (무서워서 검사도 못 받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