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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약 Sep 30. 2021

강남의 한 신경과 - 갑작스런 입원

강남 신경과 1 - 신경과 후기

다른 병원에 가다



4월 중순, 처음으로 3차 병원의 신경과를 방문하고부터 나는 매일 센시발을 1알씩 복용했다. 다음 진료일은 2주 후로 잡혀있었고, 그 사이 뇌 CT 촬영이 예약되어 있었다. 이대로 순조롭게 시간이 흘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다음 검진일까지 버틸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당장 미칠 거 같아서, 더는 하루도 견디기 힘들어서 단 며칠이라도 빨리 의사를 만나야 할 것 같았다. 


3차 병원의 진료는 앞당길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다른 신경과에 가기로 했다.











그 병원을 선택한 이유



병원은 인터넷으로 찾아봤는데, 가장 큰 이유는 집 근처 신경과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였다. 그러나 결국 집에서 퍽이나 먼 신경과를 택하게 됐는데, 결과론적인 말이지만 다른 곳도 아닌 병원을 인터넷으로 알아보고 간다는 게 얼마나 무모하고 무가치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딱히 없었으니, 지금 그 시절로 돌아간다 해도 다른 뾰족한 수가 있었을까 싶다.



병원은 서울 서쪽에 위치한 우리 집에서 꽤나 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에 간다는 걸 감안하면 굳이 왜 여기까지 갔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지만, 굳이 이 병원을 택한 이유는 이 병원에서 올린 편두통 관련 글을 읽어서였다. 온라인으로 신경과를 찾다가 우연히 찾은 블로그였는데, 신경과 전문의가 편두통에 대해 쓴 글이 여럿 올라와 있었다.


그동안 많은 안과의사들이 간과했던 얼굴의 통증과 초점이 잘 잡히지 않는 등의 안과적 증상, 그리고 어지럼증을 가진 환자에 대해 작성한 글도 볼 수 있었다. 나와 유사한 증상을 가진 환자가 내원했던 걸 알게 되니, 문제의 답이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것 같고 나도 빨리 완쾌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다른 신경과는 정보를 찾기가 힘들어서 (원래 병원은 홍보를 잘하지 않으니) 검색이 잘 되고, 내가 겪고 있는 증상을 많이 기술해둔 이 병원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눈에 어렴풋이 보이는 실마리에 나는 미약한 희망을 품게 되었다.











기다림



실제로 내가 신경과를 방문했을 땐 4일 내내 두통이 지속되고 있었다. 내가 가진 진통제로는 효과가 없어서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전까지 한 순간도 두통이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무슨 생각인지 월차도 내지 않고 꾸역꾸역 토요일만 기다렸다. 


지난한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하루하루 시간이 어찌나 느리게 가던지 모른다. 머리가 찌를 듯이 아파왔다. 하루 몇 차례 미친 듯이 아픈 구간이 있는가 하면, 한 고비 넘기고 잔잔한 두통이 찾아들기도 했다. 잔잔하다 해도 앞선 강렬한 통증과 비교해서이지 가만히 있는 걸로도 무척 고통스러웠다.

일상생활은 어떻게 했는지, 직장은 어떻게 다녔는지 모르겠다. 일은 어떻게 했는지 무슨 생각으로 버티고 있었는지. 그냥 무식하게 참았다. 


너무 아프면 사람은 제대로 된 생각을 못하나 보다. 내가 바보 같고, 정말 너무 아프고, 두통이 너무 끔찍해서, 그냥 견디는 것 외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두통이 너무 오래되어서 누구에게도 말할 자신이 없었다. (지금 와선 뭔 자신이 필요한 건지 모르겠다) 어디서 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안 나왔다. 그냥 너무 아프고 힘들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센시발 한 알로 버티기엔 끔찍한 시간이었다. 관성처럼 참고 참다가 드디어 돌아온 토요일, 나는 강남에 있는 한 신경과에 방문했다. 내 평생 두 번째로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구구절절 썼던 그때의 증상



주말이 오길 간절히 기다리며 찾은 병원은 예약 없이 방문했기에 예약환자의 진료가 다 끝나길 기다려야 했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2차 병원이었고, 입원환자들도 속속 아래층으로 내려와 진료를 받았다. 


나는 신경과에 내원한 이유와 증상, 가장 힘든 부분 등을 작성하는 종이를 한 장 받았다. 내가 기억하는 설문지는 주관식 질문 3~4가지 정도로 간단했는데, (시간이 오래 지난 데다가 솔직히 그땐 제정신이 아니라서 내 기억과 다를 수도 있다) 나는 구구절절 답변을 다느라 기다리는 시간이 꽤 길었음에도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이 설문지를 의사가 그리 눈여겨보지 않았음에도, 의사를 만나기 전에 하나씩 하나씩 기술해보는 것만으로 나는 해방감과 비슷한 쾌감을 느꼈다. 큰 병원에 갈수록 환자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고 오는 경우가 많은데, 글의 형식을 빌려서라도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다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내 증상을 직접 쓰는 것만으로도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고, 실제로 내가 얼마나 아프고 가장 힘든 게 무엇인지도 알 수 있었다. 불과 며칠 전에 대학병원 신경과에 방문했다가 참지 못하고 내원했다는 것, 그리고 시도해본 약과 현재 복용하고 있는 약에 대해서도 기술했다.



의사는 그리 심도 있거나 정성스럽게 또는 의미 있게 내 글을 읽는 것 같진 않았다. 휙 보고 말았는데 아무리 빨리 읽어도(정독이 아니라 훑어 읽더라도) 그 속도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 세상사 누가 타인의 고통에 당사자만큼 깊은 관심을 보이겠는가. 설사 그 의사 또한 미약한 두통을 앓고 있는 편두통 환자라 할지라도 말이다.











진료실에서 울고 말았다



당황스럽게도 나는 의사를 만나자마자 울고 말았다. 너무 아파서. 또 너무 답답하고 힘이 들어서 순간 북받치는 감정에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말 몇 마디도 채 나누지 않았는데 말이다. 나도 내가 울 줄 몰랐다. 아파서 혼자는 운 적은 있어도 다른 사람 앞에서 운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진료를 기다리며 설문지를 작성하느라 감정이 격해져 있었던 걸까. 내 구구절절한 사연을 알아줄 사람을 만나서였을까. 의사를 보자 안도와 그동안의 힘듦과 서러움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의사의 말을 아무 의심 없이 믿었던 것은. 머리 한 구석에서조차 의심 한 자락 하지 못했던 건 다른 누구보다 내가 믿고 싶었기 때문이다.











단절



그날은 신경과를 간다고 주말 아침부터 부산스레 움직였다. 한참 잘 시간에 움직이는 내가 걱정이 되었는지 엄마가 나를 따라나섰다. 병원까지 꽤나 먼 길을 같이 이동하면서도 우리는 별다른 대화를 하지 않았다. 


내가 의사를 만나고 말 몇 마디 나누지도 않았는데 울음을 터뜨리자, 엄마는 매우 당황했다. 울고 있는 와중에도 뒤에 앉은 엄마가 당황하는 게 느껴졌다. 멀쩡하던 애가 대뜸 울어버리니, 놀라고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도 내가 아픈지,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마음의 문을 완전히 닫고 있었다. 깨질 듯한 두통이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왔고, 나머지 시간이라고 아프지 않았던 게 아니었다. 어두운 방 안에 몸을 둥글게 말고 누워 있으면 조금은 견딜만했다. 

문 밖으로는 TV 소리가 들렸다. TV를 보고 웃고 있는 가족들에게 나의 아픔을 전할 힘이 그때의 내게는 없었다.












낫게 해 주겠다는 확신, 말 뿐인 그 말



의사의 말은 믿음직스러웠다. 의사가 다른 여러 가지 말을 했겠거니 싶은데 솔직히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두통을 참느라 또 우느라 바쁘지 않았을까. 내 말을 잘 들어줬던 것 같기도 한데, 뭔가 말을 제대로 했을 리 만무하니 의사가 알아서 판단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의사는 대망의 그 대사를 내뱉는다.






하루만 입원해요.

내가 낫게 해 줄게요.




의사의 단언에 가족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나도 이런 의사는 처음이었다. 이렇게 확신하고 확답하는 의사는. 그러나 가족이 보내는 의심에 찬 눈초리와 상반되게 나는 기뻤다. 이 고통 속에 나를 꺼내 줄 수 있다면 그게 누구인들 어떠하리. 오히려 지금 이 순간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가족들이 미웠다.


지금 이 순간 그 말을 꼭 해야 할까. 다른 대안을 찾아줄 것도 아니면서. 지금 다른 병원에 다른 의사와 다른 무언가를 제공해줄 것도, 내 고통을 어떤 수를 써서라도 멈춰줄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이건 아닌 것 같다는 말만 하다니. 

난 당장 너무 아픈데 어쩌라고 하는 마음이었다. 밑져야 본전, 아니 그보단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고 싶은 기분이었다. 서러움이 밀려들었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모르면서. 알려고 하지도 않았으면서. 나도 말한 적 없었지만 알려고 한 적 없는 건 마찬가지잖아.




결과적으로 나는 하루 만에 낫지 않았고, 병원비는 엄청 많이 나왔고, 2차 병원에서 굳이 할 필요 없는 처치를 많이 받았지만, 그때 그 말이 의사로서 무책임하다 못해 배신감마저 드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말 같지 않은 말이다), 지금까지도 여러 가지 의미로 그 말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그날 바로 입원했다.

2차 병원에서의 검사와 진단, 그리고 입원까지 모든 게 참으로 신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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