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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약 Sep 27. 2021

첫 신경과 방문 : 우울증약을 처방받다

(센시발)

처음 만난 신경과 선생님



4월 초, 2주 가까이 기다린 끝에 드디어 신경과 선생님을 만났다. 신경과 문턱이 높았던 것에 비해 진료는 싱거웠다. 나는 매일매일 두통이 있어서 힘들다고 말했고, 진통제로는 잦아들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내 증상에 대해 진지하게 설명했는데, 이 증상이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의 심각성을 잘 표현해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핸드폰을 보기가 어려웠다. 핸드폰 빛이 눈부시기도 했지만, 손에 든 핸드폰을 보려면 고개를 숙이거나 시야를 내릴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면 어지러움이 너무 심해졌던 것이다. 단 몇 초도 화면을 보고 있을 수 없어서 짧은 순간 휙 내용만 확인하는 게 고작이었다.


잠시도 끊이지 않는 두통과 심한 어지럼증에 대해 나는 이만하면 (어느 정도) 필요한 말을 잘 전달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생각과 달리 아프다는 어필을 영 잘하지 못했나 보다. 절절한 감정이 부족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 현 상황을 표현하는 것에 그리 의욕적이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신경과 선생님과 만난 후 나는 편두통 예방약 하나를 처방받았다.










믿음이랄까



나는 내 증상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표현해야 할지 잘 몰랐던 것 같다. 입으로 어떻게 어떻게 설명을 하기는 했는데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사실 어떻게 설명해도 부족했을 것이다. 병원을 너무 늦게 찾아갔으니까.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의사의 전능함을 믿고 있지 않았나 싶다. 내 고통을 알아줄 거라고, 내가 얼마나 아픈지, 내가 얼마나 힘든지 의사는 알 수 있을 거라고. 그리하여 나에게 맞는 약을 처방해 줄 거라고 말이다.



센시발정 10mg




나는 핑크색 약 한 알을 처방받았는데, 이 약이 젊은 여성의 편두통에 잘 듣는다고 했다. 그러나 귀엽게마저 보이는 동그란 알약을 쳐다보고 있자니, 내가 너무 간결히 말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내 증상을 다 말하지 못한 거 같고, 내 상황의 심각성을 의사 선생님이 미처 알아채지 못한 건 아닌가 하는 당혹감이 일었다. 그러니까 고작 약 1알 가지고 효과를 보기란 영 힘들어 보였던 거다. 진짜 심각했으니까.


결과적으로 이 약은 두통에 의미 있는 효과를 보지 못했다. 만약 효과가 있었다면, 내가 다음 진료일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다른 신경과를 찾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증상은 분명 나아짐을 느꼈는데, 지금 와서 곰곰이 생각해봐도 어떤 증상이 어떻게 나아졌는지는 모르겠다. 도통 떠오르지 않는다. 어지러움이 좀 나아졌는지, 시야가 흔들리는 증상이 나아졌는지, 도대체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건지.


너무 아프고 정신이 없어서 그랬던 걸까. 지난 몇 년간 몸에 너무 많은 변화가 있어서, 혹 의미 있는 변화라기엔 영 만족스럽지 않아서 기억하지 못하는 걸 수도 있다. 어쨌든 내 머릿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역시나라 해야 할까 두통은 잦아들지 않았지만, 두통의 양상이 변하고 있었다.










처음 처방받은 약, 센시발



내가 신경과에서 처방받은 편두통약은 센시발이다. 편두통 발작이 월 2~3차례 이상 일어나면 예방약물을 복용하게 되는데, 내가 처음으로 복용한 편두통 예방약이 바로 센시발이었다. 


상품명 센시발, 성분명은 노르트립틸린(Nortriptyline)으로 용량은 10mg, 25mg  두 가지가 있다. 저용량부터 시작해서 점차 증량하는 약이라서 나는 10mg을 처방받았다.


센시발의 효능, 효과와 용법, 용량은 다음 표와 같다.











항우울제 센시발



센시발은 항우울제이다. 신경전달물질의 재흡수를 차단하는 효과가 있어서 (뇌 내 신경전달물질의 농도를 높게 유지하여) 우울증이나 우울 상태를 치료하는 데 사용된다.




센시발의 분류 및 성분과 작용기전에 대해 아래 표로 정리해두었다.










센시발 특징



센시발은 항우울제 중 TCA 계열(삼환계 항우울제)에 속하는데, TCA는 약효가 나타나려면 몇 주의 시간이 필요하다. 통증이 경감되는 사람도 있지만, 효과가 없는 사람도 있다.


TCA 약물 복용 시 내가 전달받았던 주의사항은 입마름 증상이었다. 입마름은 계속 복용하다 보면 완화되며, 입 안이 건조하면 얼음조각을 물고 있거나, 껌, 사탕을 먹는 것도 도움이 된다.

 어지럽거나 졸음이 올 수 있어서 저녁에 복용하는 게 좋다. 변비가 나타날 수도 있으며, 녹내장 환자는 복용하지 않는다. 뇌에 작용하는 약이니 만큼 정신상태나 행동에 변화가 나타나는지 살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첫 진료가 끝나고 센시발을 20정을 들고, 뇌 CT를 예약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CT 검사도 대기가 길어서 2주 후로 잡혔다. 집에 오는 길에 작고 소중한 핑크색 약을 바라보니 (우선 신경과를 갔다 왔으니) 한시름 놓은 것과 동시에 그동안 이 쉬운 걸 안 해서 지금 내가 이렇게 힘든 건가 싶었다.


나는 센시발 10mg를 1일 1회 저녁에 복용하였다. 예방약의 목표대로 라면 두통의 빈도, 강도, 지속시간이 줄어들어야 하는데, 난 그렇지 못해서 다음번 병원을 내원했을 때 다른 성분으로 예방약을 변경하였다.










나 우울증 환자야?



편두통으로 병원에 갔는데 항우울제를 처방받았다. 나 이제 우울증 환자인 건가, 내가 아픈 건 머린데 왜 우울증 약을 처방받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심란했다.


사실 편두통 예방약으로 편두통만을 위한 특별한 성분이 따로 있지가 않다. 실제로는 우울증약, 뇌전증약, 혈압약 등으로 알려져 있는 여러 성분이 편두통약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처방받은 항우울제도 편두통 예방약으로 쓰이고 있는 성분이었다. 그러니 내가 항우울제를 처방받은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하필이면 싶었던 것이다. 다른 약도 많은데 왜 하필 항우울제인가. 내가 세로토닌이 부족해 보이나, 나 우울해 보이는 건가 하는 생각과 함께 미묘한 반발감이 들었다. 두통이 와서 우울한 사람이 아니라, 우울해서 두통이 생긴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약사인 친구에게 편두통약으로 항우울제를 먹게 되어 기분 나쁘다는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통증이 심해지면 우울감이 동반되기 마련이니 우울 증상을 조절해서 좋고, 항우울제가 임상적으로 만성통증에 효과가 좋으니 잘 복용해보라고 위로해줬다. 나도 불편한 마음을 접어두고 (당연히) 잘 챙겨 먹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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