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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약 Sep 26. 2021

신경과를 가기 전, 그때 그 상황

아슬아슬했던 그때



녹내장을 의심하고, 안심한 뒤로 한동안 나는 안과를 찾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증상이 있어도 그랬다) 안과는 갈 만큼 가고, 할 만큼 했다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겪는 안과적 증상이 심해짐과 동시에 머리가 심각할 정도로 아파와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안과를 방문하고 신경과를 가보기로 했다. (그때도 나는 신경과보다 안과를 우선했다)

 

그즈음엔 안구 통증과 더불어 어지러움도 상당했다. 안구 통증이 먼저 오면, 곧 두통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뭐라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오른쪽이 안 좋았다. 오른쪽 눈동자가 뭔가 달랐다. 비교대상이 왼쪽 눈 밖에 없어서 어느 쪽이 이상한지 모를 법도 한데, 오른쪽이 이상하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진통제를 복용해도 통증이 전혀 잦아들지 않아 하루 내내 두통을 달고 살아야 했다. 두통이 너무 심하게 계속되니 덜컥 겁이 났다. 뭔가 큰 병이 있는 게 아닐까. 아니라면 이렇게 아플 수 없을 것 같았다.

평일이 지나 주말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병원에 가기 위해서였다. 월차를 낼 수 있었는데도, 월차를 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외로움



지금 보면 좀 답답하게 보이는데, 그땐 다른 생각을 할 여력이 없었다. 눈이 반쯤 가려져 있었던 것 같다. 직장은 어떻게 어떻게 겨우 다니고 집에 와선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보냈다.


외부 약속은 잡지 못했다. 밖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서였다. 2시간이 한계였는데, 편두통 진단 시 확인하는 '중등도 또는 심한 통증강도 : 일상생활을 못하거나 어렵게 함'을 하루하루 뼈저리게 느꼈다. 계획보다 일찍 돌아오는 일이 빈번해지자 약속은 자연스레 잡지 않게 되었다. 출퇴근 외의 외출은 산책으로 한정됐는데, 그마저도 소리에 예민해져서 시끄러운 곳을 견딜 수가 없었다.


집에서 들리는 생활소음도 힘이 들었다. TV 소리는 물론이요 가족들의 대화 소리도 듣기 싫었다. 나한테 말을 거는 건 더 싫었다. 혼자 있고 싶었다.

여느 때와 같이 머리가 아프다는 말로 이유 없이 신경질을 부리는 내가 가족들이 보기엔 이상해 보였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집 근처 공원만 뱅글뱅글 돈 적이 있다. 내가 뭐 하고 있나 싶다가도 차가운 공기를 맞으면 조금 나아지는 것 같기도 했다.

손님 하나 없는 식당에 들어가서 혼자 저녁을 먹었다. 머리는 그렇게 아픈데 배는 또 고팠다. 그나마 사람이 없어서 조용해서 살 것 같았는데 아무도 없으니 또 외로웠다. 밥을 먹는데 눈물이 찔끔찔끔 났다. 또다시 내가 뭐 하고 있나 하는 생각과 함께 혼자 청승 떠는 게 웃기기도 했다. (누가 나를 때리기라도 했나. 참 내. 누가 나에게 해코지라도 했나)

그 기분을 떨쳐내려 얼른 집에 들어갔다.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불을 껐다. 소음과 외부로부터 나를 차단했다. 혼자가 편했다.


아프고 힘들고 서러웠다. 모든 게 힘이 들었다. 통증을 견디는 것만으로 힘에 부쳐서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없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누구에게도 무언가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이렇게 아픈 걸 아무도 몰랐다.







평소 두통을 앓던 사람이 급격히 짜증이 늘고 신경질적으로 변한다면, 외출이 현저히 줄고 자꾸 혼자가 되려 한다면 이는 병원을 찾아야 할 강력한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이런 행동변화가 두통의 강도와 빈도를 나타내는 간접적인 지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안과를 방문하고



집 근처 큰 안과병원에 갔다. 혼자 터덜터덜 걸어갔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애써 무시하며, 뭐라도 알아오겠다고 다짐하며 힘든 몸을 이끌고 걸어갔다. 햇빛이 눈이 부셔 손으로 그늘을 만들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때 나는 아픈 것도 아픈 건데 외로웠던 것 같다. 이렇게 아픈 걸 나 밖에 모르니까. 그리고 서러웠다. 도대체 내가 왜 아픈 거지?


병원에서는 이번에도 별다른 말이 없었다. 내가 만난 의사는 30-40대 정도 되는 여자 선생님이었다. 눈에는 별 문제없어 보인다 말했고, 나는 안과적 증상과 함께 두통이 심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젊은 여성의 경우 눈에 오는 문제가 두통 때문일 수도 있으니 신경과에 가보길 권유했다. 여타 다른 의사들처럼 눈에 아무 문제없다고 그냥 내보내도 됐을 텐데 이렇게 말해줘서 너무 고마웠다. 정처 없이 헤매고 있는 와중 이정표를 찾은 기분이었다.  


그리하여 드디어 나는 신경과를 가기로 마음먹었다. 매일매일 두통으로 힘들고, 진통제는 더 이상 듣지 않았을 때였다.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진 상황이 되어서야 신경과를 찾게 되었다. 참 안타깝고도 긴 시간이었다.











신경과



길을 가다 보면 여러 병원이 보이는데, 신경과를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주변에서 찾기 힘들고, 실제로 그렇게 많지도 않은 것 같다. 신경과는 여타 병원들에 비해 접근성이 떨어졌다. 

또한 다른 병원과 달리 어떤 질병을 다루는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살면서 신경과를 가본 적이 없어서(주변에도 신경과를 가본 사람이 없어서) 어디가 아파야 신경과를 찾는지, 어떤 사람이 신경과를 가는지 몰랐었다. 마지막으로 간 안과에서 신경과를 가라는 말을 듣고서야 드디어 신경과로 길을 잡았으니, 신경과를 찾은 건 결국 자력이 아닌 안과의사의 권유 덕분이었다.


돌아온 월요일, 몇 군데 대학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신경과라고 해도 막상 가려니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서 우선 3차 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가능한 한 빨리 예약을 잡고 싶었는데, 신경과 선생님을 만나는데 보통 한 달은 기다려야 했다. 길게는 두 달 넘게 기다려야 하는 곳도 있었다. 제일 빠른 예약도 최소 열흘은 기다려야 했는데, 교수도 부교수도 아닌 그보다 더 아랫년차의 선생님이라 그나마 가능한 거였다.


선택의 여지가 없던 나는 가장 빨리 선생님을 만날 수 있는 병원으로 예약을 했다. 운이 좋게도 집에서 가까운 병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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