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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약 Oct 01. 2021

편두통 환자의 입원생활

강남 신경과 4 - 입원 후기

신경과 병동



나는 신경과 병동에서 2박 3일을 보냈다.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베드는 다 차 있었다. 환자들은 50~70대로 나이대가 있으신 분들이었다. 최소 아줌마, 대다수 할머니였는데 내 나이대 근처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그럴 만도 했다. 젊은 사람들이야 크게 아플 일이 없으니까. (확률적으로 말이다)


방은 생각보다 넓었다. 베드가 한 방향에 4~6개씩 양쪽 벽에 나란히 있었던 걸 보면, 일반적인 6인실보다 넓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었는데, 정확히 잘 기억은 안 나지만 8~12명 정도 있지 않았나 싶다. 


내 자리는 문에 열자마자 바로 보이는 가장 문과 가까운 자리였다. 문 밖 복도로 사람이 지나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번잡스러웠지만, 한쪽 면은 벽이라서 마음에 들었다. 양 옆에 사람이 있지 않아서 (한쪽에만 있어서) 그나마 독립된 공간에 있는 기분이었다.



3면이 커튼인 나만의 공간











나만의 영역



병실에 들어와 내 자리를 인도받고 난 후 나는 커튼을 쳐서 분리된 내 영역을 만들었다. 익숙한 집에서도 몸이 힘든데, 병원까지 와서 사람들과 얽히고픈 생각은 없었다. (금방 퇴원하기도 했고) 아주머니들은 커튼을 활짝 다 열고 계셨는데, 등 뒤의 벽을 제외하고는 삼면이 전부 다 뚫린 공간이었다. 


나는 내 행동 하나하나가 다 노출된다는 게 불편했다. 딱히 특별한 행동을 하지 않아도 그랬다. 반대로 내가 다른 사람들을 지켜보고 싶지도 않았는데, 친밀하지 않은 누군가의 일상 속에 들어가는 건 비록 배경의 일부 일지언정 나에겐 편치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커튼을 치지 않으면, 원치 않아도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다. 그냥 정면에 고개를 두기만 해도 한눈에 방 안의 정경이 다 들어찼다. 딱히 시선을 두지 않아도 모든 게 눈에 들어오는 공간에서 상호 간의 프라이버시를 찾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나보다 먼저 입원해 있던 환자 몇몇은 20대의 젊은이가 어떤 사연으로 입원했는지 퍽 궁금한 눈치였다. 그러나 나는 알면서도 못 들은 척했다. 은근슬쩍 관심을 드러냈을 뿐, 나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걸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슬쩍 넘어갈 수 있었다. 

어떤 분은 우유를 또 다른 어떤 분은 빵을 나눠주셨는데, 이걸 또 나는 '감사합니다' 거절 않고 받았다. 배가 고픈 것도 아니고, 교류할 마음도 없으면서 주는 건 또 덥석 받게 되더라.



같은 병동 아주머니가 나눠주신 우유와 빵












불행 배틀



같은 공간에 있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들리는 말이 있다.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동병상련을 느끼며 참 힘드셨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본인이 언제부터 아팠는지, 어떻게 아픈지, 병원을 어디를 갔다 왔다느니, 이 병원 의사선생님은 어떻다더니 열정적으로 떠들고 계시는 걸 보면, 아프긴 한데 그래도 살만 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두통과 어지럼증 등 신경과를 찾는 사람들은 겉보기엔 영 멀쩡해 보이는 터라 진짜 저렇게 말하는 만큼 힘든 게 맞는지 미심쩍어 보이기도 했다. (물론 입원을 결정할 만큼 힘드셨을 것이다) 

그 열정적인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냥 한탄을 하고 싶은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래. 이렇게 오래, 그렇게 많이 힘들었어도 알아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은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러다 한 번은 정말 심각하게 목숨에 치명적인 뇌질환으로 판명 나신 분도 한 말씀 얹으셨는데, 이 병원에선 처치가 힘들어서 다음날 더 큰 병원으로 옮길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서로서로 더 아프다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말하던 분들이 점점 말을 흐리시곤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앞선 사람의 말까지 자르고, 내가 더 아프다는 종류의 말을 줄줄 풀어놓던 분들이었는데. 

사실 할 말이 있겠는가. 내가 아무리 불편하고 힘들어도 죽을병은 아닌 것을. 정말 죽을병인 사람 앞에서 할 말은 없었을 것이다. 










내가 더 아프다는 말 대신



대체로 병동생활은 '내가 더 아프네, 내가 더 어지럽네' 하는 불행배틀이었지만, 그러다 상태가 안 좋아지시면 곧잘 대화가 수그러들곤 했다. 아픈 와중에 좀 나아졌을 때, 그나마 컨디션이 괜찮을 때 한다는 게 '내가 아마 여기서 제일 아플 것이다'라는 요지의 말이라니. 


나는 참 듣기가 싫었다. 아픈 게 죄는 아니지만 자랑도 아닐 텐데, 내가 이만큼 아파봤다 자랑하는 것 같았다. 많이 아픈 게 자랑스러운가? 많이 아픈 게 자랑이 되는 이 공간이, 고통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다가왔다.

아니, 세상에 아프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으며, 내가 더 많이 아프다고 무슨 권위가 생기는 것도 아닐진대, (솔직히 가장 불쌍한 사람 아닌가) 남의 고통과 견주어 이기려 드는가. 좀 웃기고, 또 하잘 쓸데없는 짓 같았다. 


내가 더 아프다고 주장하느니 차라리 '이렇게 해보면 좋더라, 이렇게 해봐라'와 같이 경험을 토대로 서로가 가진 나름의 노하우를 나누면 더 좋지 않을까. (한 병을 오래 앓으면 생활 전반의 여러 방면으로 노하우가 생긴다... 원치 않더라도...)

그 공간에 있는 모두가 다 아픈 사람일진대, 남의 고통에 얼마나 큰 관심이 있겠는가. 그러니 다들 자기 얘기만 하는 게 아니겠는가.




나는 기필코 내 증상을 자랑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 이만큼 아파봤다 자랑스레 말하지 않겠다. 고통을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단지 낫기 위해 더 나은 방법을 찾기 위한 일환일 뿐일 것이다. 

그래, 나는 낫기 위해 노력하겠다. 완전히 다 낫진 못하더라도, 예전처럼 돌아가진 못하더라도 처음부터 포기하고 병을 내 한 몸처럼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나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나는 좀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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