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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약 Oct 07. 2021

편두통 환자의 입원생활 2

강남 신경과 8 - 신경과 입원 후기

친구의 면회



일요일, 근처에 살던 친구가 면회를 왔다. 굳이 안 와줘도 됐는데 (토, 일, 월) 주말을 낀 2박 3일의 짧은 입원기간 동안 병원을 찾아줘서 고마웠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준 고마움이 제일 컸음에도, 고작 며칠 되지 않은 입원이라 의외롭기도 했다. 나중에 더 좋은 곳에서 봐도 될 텐데 하는 마음이었달까. 


나는 병원에 있은지 얼마나 됐다고 (1박 했다고 좀 익숙해졌나 보다) 집주인 마냥 익숙하게 다용도실로 척척 길을 안내했다. 통로 끝 작게 마련된 공간에는 탁자 몇 개와 의자 몇 개, 정수기가 있었고 간단한 설거지도 할 수 있었다. 

다용도실은 병원에 상주 중인 보호자가 한 숨 돌릴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친구가 나를 만나러 왔을 때도 한 보호자가 피곤한 몰골로 앉아 홀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는 그 대각선에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보호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났고, 인기척이 없어지자 좀 더 편하게 말할 수 있었다.


병원에서 만난 친구는 약간은 낯설고 또 멀게 느껴졌다. 큰 창을 통해 해질녘의 잔잔한 햇살이 내 앞의 사람에게 내려앉았다. 언제나와 같은 내가 알고 있는 그 사람이 맞는데, 색을 잃은 공간에서 친구는 유달리 빛이 났다. 환자는 환자복을 입고, 일하는 사람은 역할에 맞는 유니폼을 입은 이곳에서 친구만 유달리 색채를 띄고 있었다. 이질적인 바깥의 냄새가 났다. 


병원 생활은 꽤나 무료해서(비록 짧았지만) 누군가 나를 찾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단순한 일정이 그저 하루의 작은 일부가 아닌 그날 전체를 차지하는 주된 사건이 되었다. 그 하나만이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게 했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어쩌다 입원했는지, 병원은 집 근처에도 많을 텐데 왜 이 멀리까지 온 건지, 퇴원은 언제 할 건지 등 내 근황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을까. 

나는 생각보다 멀쩡했다. 멀쩡한 척하기도 했고, 그러기를 성공한 것 같았다. 그맘때는 항상 아팠아서 당장 미치도록 아프지 않다면 참을 수 있었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지경에 다다랐을 때 입원을 했고, 입원을 한다고 해서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충분히 좋아진다거나 몸이 편해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입원 전 상황, 그러니까 내가 참을 수 있는 선으로 되돌아갔으니 입원이 영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기대를 내려놓으니 어차피 내내 아프고, 참는 게 익숙해서 그렇게 또 견딜만했던 것 같다.











가족의 면회



토요일, 가족도 면회를 왔다. 입원 당일인 토요일 이미 부모님은 병원에 나를 데려다줄 때 같이 온 터라 하루에 2번이나 병원을 방문한 꼴이 되었다. 

나는 2박 3일 입원을 했지만, 처음에는 입원기간이 1박 2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고작 하루라면 (진심으로) 면회를 오지 않아도 된다 생각했다. 그러나 가족들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나도 가족 중 한 명이 병원에 입원한다면, 얼마나 머무르던지 간에 (하루나 이틀이나 상관없이) 병원을 찾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를 만났을 때와는 달리 가족을 볼 때는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그냥 환자복을 입은 내가 조금 어색하고 부끄러웠던 것 같다.  


언니가 몰래 살짝 사진을 찍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그때 내가 매우 불쌍해 보였다는 말과 함께 언니는 시간이 지나서야 그때 찍은 사진을 슬쩍 보여주었다. 나는 뭐 불쌍할 거까지 있나 싶었다. 그냥 평범한 난데. 그래서 사진을 굳이 왜 찍었나 싶기도 했다. 좋은 모습도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언니가 찍은 사진 덕분에 나는 그때의 나를 다시 볼 수 있었다. 관찰자의 시점으로 본 나는 환자복을 입었고, 헐렁한 바지 아래로 맨 발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한 손은 링거 때문에 잘 움직일 수 없어서 두 손으로 핸드폰을 꼭 붙잡은 채였다. 당시 귀를 쫑긋거리며 가족 간 대화에 잘 참여했던 것 같은데, 기억의 왜곡인지 사진 속의 나는 가족이 왔는데도 뚱한 얼굴로 핸드폰만 하고 있었다. (정말 안 좋았나 보다) 


좀 더 시간이 지나서 다시 그 사진을 보게 됐는데, 좀 더 객관적이 되어서 그런지 내가 봐도 희멀건한 환자복을 입고, 웃음기 없이 초췌한 얼굴로 앉아 있는 내가 좀 불쌍해 보였다. 그리고 알았다. 언니가 말한 불쌍해 보였다는 그 말이 (내가 아무렇지 않게 넘겼던 그 말이) 정말 불쌍해 보이기도 했겠지만, 실은 나를 향한 애정이라는 걸. 걱정과 애정을 담아 언니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시간이 흐르고 여유가 생긴 후에야 나는 알 수 있었다. 











입원 생활 



갑작스럽게 결정된 입원이었고, 나는 입원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먼저 집에 돌아가서 씻고, 짐을 챙기고 다시 병원에 가서 입원절차를 밟았다. 

입원하기 바로 직전에 씻고 왔는데도 병원에서 이틀 밤을 보내자 머리가 가려워졌다. 머리를 감고 싶었는데, 손에는 링거를 맞고 있어서 직접 감을 수가 없었다. 옆에 머리를 감겨줄 사람도 없으니 그냥 참아야 했다. 다음 날이면 퇴원이라 그러려니 했다. 


참아야지 뭐. 웬만한 장기 입원이 아닌 이상에야 멀쩡한 성인이 (미성년자도 아니고) 사지 멀쩡하고 이동에 불편함이 없는데, 딱히 보호자가 필요한 일은 없었다. 

할 게 없어서 심심했지만, 나한테 먼저 말을 거는 사람이 없어서 편하기도 했다. 그때는 (내가 이렇게 아픈데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주변 사람에게 온당하지 않은 섭섭함과 외로움과 그리고 화가 혼재해 있어서 혼자 있는 게 딱히 나쁘지 않았다. 떨어져 있는 시간이 있어서 오히려 좋았던 것도 같다. 











비급여 치료 



하루 자고 난 다음 날인 일요일 오전, 내가 미리 고지받지 못한 일정이 있었다. 나는 간호사의 부름을 받고 병원의 다른 층으로 가게 됐다. 정확히 뭐 때문에 날 부르는지도 몰랐지만, 필요한 일이겠거니 싶어 오라면 오라는 데로 쫄래쫄래 따라갔다. (물리치료인지, 도수치료인지 간호사가 어떤 말로 나를 움직였는지 잘 모르겠다. 너무 당연하다는 듯 말해서 아무 의심 없었던 것 같다)


간호사의 뒤를 졸졸 따라 도착한 위 층은 깔끔하고 넓었다. 사람이 정말 한 명도 없었고, 왠지 모를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에 프라이버시 보호는 끝장나게 잘 되겠네 싶었다. 

환자보다 근무하는 사람이 더 많은 이곳은 조용하고, 편안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나는 재활/물리치료를 했다. 다른 말로 도수치료 혹은 운동치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뭘 한 건지 정확한 정체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요즘 정형외과에 가면 많이들 하는 그런 것들이었다)


좋긴 좋았다. 좁은 병실에 하는 거 없이 누워있다가 넓은 공간에서 몸을 움직이니 시원했다. 일하시는 분들이 다들 조용조용하고 나긋해서 심리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절로 편안해졌던 것 같다.


나는 한 번에 한 명 씩 총 두 분을 봤는데, 모두 일대일로 나에게 붙어 있었다. 한 명은 재활치료사로 보였는데, 나에게 도움이 되는 생활운동에 대해 알려주었다. 

또 다른 한 명은 의사인지 한의사인지 잘 모르겠는데, (둘 다 아닐 수도 있다) 전날 찍은 내 X-ray 사진을 보면서 지금 내 목 상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도수치료를 받았다. 





운동치료


개인 PT 비슷하게 한 명의 재활치료사가 온전히 나한테 붙어서 어떤 운동을 해야 할지 알려줬다. 맨 몸 운동, 혹은 매트에 누워서, 폼롤러를 사용하는 식의 힘들지 않은 운동이었다. 옆에 아령과 같은 좀 더 전문적인 헬스용 기구도 여럿 있었는데 나는 사용하지 않았다. 

어떤 자세를 했는지 하나하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근력을 만드는 무산소 운동보다) 대체로 필라테스나 요가와 비슷했다. 완전히 같지는 않아도 나도 해 본 적 있는 꽤나 익숙한 종류가 많았다. 그래서 이걸 굳이 지금 병원에서 일대일로 전담마크 받으면서 해야 하나 싶었다. 


짧은 운동을 끝내고 다시 병동으로 돌아갈 때는 어떤 운동을 하면 좋은지 그림이 그려진 안내문도 받았다. 목 운동, 허리 운동 등 집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었다. 






도수치료


차분하고 조곤조곤 설명을 잘해주는 선생님이었다. 내 X-ray 사진을 보면서 이것저것 말씀해주셨다. 그러나 내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아서인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 마냥 내용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하고 편안한 목소리와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그 공간의 분위기가 기억에 남는다.


를 만져주고, 머리 빗을 때 좋은 자극 주는 법을 알려주었다. 뭐 이런 걸로 좋겠어 싶었는데, 의외로 작은 행동으로 큰 기쁨을 얻을 수 있었다. 

빗질도 제대로 하는 법이 있고, 귀도 조물조물 만져주면 그동안 있는지도 몰랐던 (평소에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있던) 부위가 자신이 여기 있다고 소리쳤다. 귀를 당기는데 그렇게 시원하더라. 머리를 만져주고, 누워 있으면 안마 비슷하게 마사지해주고, 도수치료를 받으니 시간이 술술 잘만 갔다. 


그러나 머리가 떡져서 한참 신경 쓰이는데, 치료 목적이라 할 지라도 타인이 내 머리와 그 근처를 계속 만지작거려서 당황스러웠다. 만져줘서 좋은데, 육안으로 보기에도 기름져 있어서 나도 찝찝하고, 치료해 주는 사람도 말은 안 했지만 찝찝하지 않았을까? 내가 나가고 나서 손을 싹싹 두세 번은 씻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간지러운 머리로 나는 하루를 더 버텨야 했다.












의문



안 움직이던 몸을 움직이니까 시원했다. 그러나 그뿐, 가장 중요한 두통은 여전해서 몽롱한 머리로 굳이 이걸 지금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몸은 하라는 대로 따라 하면서도 문득문득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하는 생각과 이게 지금 내 상태에 도움이 될까 하는 의문도 있었다. 머리도 못 감은 찝찝한 상태로 빗질이나 하고, 도수치료하고, 재활운동을 하고 있으니, 허 참 이거 해야 하나 싶었던 거다. 


당연히 안 하는 것보단 하는 게 좋은데, 내가 지금 이거 하고 있을 군번인가. 물론 도움이 될 수 있지. 그러나 이는 도움이 될 수도 있는 부차적인 치료이지, 당장 나에게 도움이 되는 적극적인 치료가 아니었다. 

입원할 정도로 시급한 환자에게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고, 효과가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를 치료를 한다는 건... 글쎄 나는 동의하기 힘들었다. 나에게 제대로 된 선택권을 줬다면, 그리고 그때 내 몸 상태를 고려해 본다면 나는 도수치료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한 번은 모르고 당했지만, 두 번은 당할 수 없지. 그래도 설마 했는데, 다음 날인 월요일 아침 비슷한 시각에 간호사가 또다시 나를 불렀다. 

이번에도 어제처럼 마치 당연히 해야 하는 치료를 하러 가는 것처럼 말했다. 환자에게 전혀 선택권이 없는 문제로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바로 따라가지 않고, 어제 했던 도수치료를 하러 가는 거냐고 물었다. 




맞다. 





간호사는 '맞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내친김에 금액도 물어봤다. 그리고 금액을 듣자마자 나는 지금 받는 치료가 비급여 치료라는 걸 알았다. 비쌌던 것이다. 


그러나 도수치료는 원래 가격이 비싼 편이다. 다른 병원에 가도 도수치료 시세가 대충 이 정도라는 건 익히 알고 있던 부분이었다. 내가 화난 부분은 따로 있었다. 

바로 선택적 치료를 필수적인 사항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충분히 환자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선택을 할 만한 정보를 주지 않고, 무지한 상태에서 은근히 푸시하여 선택을 유도한 것으로 느껴졌다.


금액을 들은 이후 나는 '하지 않아도 되냐'고 되물었고, 그러자 바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 않아도 된다.





월요일, 퇴원 예정일 아침마저 이런 권유를 한다는 게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또 내가 거절한다고 두 번은 권유하지 않을 그런 치료가 자연스레 행해졌다는 것도 기분이 나빴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는데, 정말 환자를 돈으로 보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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