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

글쓰기의 꿈 8

by 김약

빅 피처



'빅 피처'라는 소설을 읽었다. 예술가의 이름값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 글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난 후 내 글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물론 슬프겠지만) 나 스스로만 제대로 알아준다면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훗날 이 책을 읽을 사람의 재미를 앗아가고 싶진 않기에 책의 모든 줄거리는 말하진 않을 것이다. 다만 이 글을 통해 작가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 외에 부차적으로 내가 주목한 부분이 있는데, 그 주제 외의 잔 가지가 유독 내게 인상이 깊어 이에 대해 말하려 한다.




소설 중반부에서 주인공은 우연히 찍은 사진 한 장으로 전국에서 유명세를 얻게 된다. 한번 인지도가 생긴 이후로는 찍는 족족 값비싸게 사진을 팔아치우며 짧은 시간 내에 업계 유명한 셀럽으로 자리 잡는다. 승승장구하여 꿈같은 시간을 보내지만, 오래지 않아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자신의 신분을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렇게 사진작가는 기껏 얻은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기존의 커리어를 포기한다.


이후 새로운 신분으로 살아가지만, 사진에 대한 열망은 여전하여 새로 얻은 신분으로 사진 작품을 여럿 기고한다. 그러나 이전 작가에게 사진 작품을 꼭 좀 달라고 애타게 부탁하던 잡지나 신문사 등에서는 이 사진작가의 결과물에 더는 관심이 없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인데, 같은 사람임을 알아보기는커녕 사진작가의 탁월함조차 인정받을 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이전과 똑같이 사진을 찍지만, 새로운 삶에서 주인공은 그저 이름 없는 사진작가로 근근이 먹고사는 것에 그치게 된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이름만 다를 뿐 이전과 같은 인물이다. 한결같이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으며, 비슷하게 잘 찍은 사진임에도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진 것이 나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동일인이 찍은 사진이라 해도 세상에 나올 그럴듯한 이름표가 붙어 있지 않다면 세상에 통용되지 않는 것이다.













불확실성



능력에 걸맞은 보상은 저절로 따라온다 의심치 않았고, 그러하기에 사람이든 작품이든 유명하다면 유명할만해서 유명하겠지 싶었다. (설사 동의할 수 없을지라도 나는 모를 이유가 있겠거니 했다) 세상만사 항상 일관된 기준을 적용할 순 없더라도 적어도 능력과 결과가 정비례하게 나아간다는 그 방향성은 유지된다 믿었다.

그러나 반드시 꼭 그러한 것만은 아니며, 하나의 결과가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우연이 개입했나 셈하기 시작하자 삶이 내 손을 떠난 까마득히 먼 무언가 운명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어떤 분야이든지 간에 하나의 작품이 세상에 알려지는 데는 여러 요인들이 영향을 미칠 것이다. 작품 그 자체라는 하나의 요소에 오롯이 달린 것이 아닌 개인의 운, 작품의 노출 시기, 시대 흐름, 적절한 주제 선택, 출판사의 홍보전략 등 여러 가지에 작품의 흥망성쇠가 달려있다.

대중이 당대에 알아보지 못해 사후에야 인정받은 예술가 중 인상파의 대표적인 화가인 고흐가 포함돼 있는 걸 보면, 객관적 측정이 어려운 예술의 영역에서 시대를 잘못 만나거나 운이 없는 등의 이유로 안타깝게 묻히는 작가와 작품도 왕왕 있으리라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빅 피처'라는 책이 예술의 일관적이지 못하고 불확실한 단면을 확연히 조명했기에 나는 어느 정도 과장이 있을지언정, 이 책의 작가가 어떤 생각과 논리로 이런 결론에 다다랐는지 이해했다. 빠르게 전개되는 한 편의 잘 짜인 소설을 통해,



작품의 흥행에 영향을 끼치는 건 단순히 작품 그 자체만은 아니다




'작품의 성공이 반드시 그 작품의 뛰어남과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라는 생각해 보지 않은 주제에 순식간에 설득되었고, 그럴듯하다 생각했으며 끝내 동감했다. 반드시는 아니어도 이런 경우도 있을 수 있겠다고 말이다.

동시에 예술계에서 한 작가의 이름값과 커리어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나만 하더라도 신작이 나오면 구매하기 위해 좋아하는 작가의 이름을 기억해 두지 않는가. 젊은 사진작가가 자신의 이름과 경력만 유지했다면 계속 잘 나갔을 거라 생각하니 괜히 내가 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진인사 대천명



내 생각과 선택으로 삶을 완벽히 통제하진 못해도 많은 걸 조절하고 바꿀 수 있다 믿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하나의 결과가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우연이 개입하는지 손꼽다 보면, 그동안의 내 생각과 달리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건 의외로 되게 별로 없는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뭘 안 하겠다는 건 아니고, (개인이 노력할 만큼 했다는 전제하에) 그저 내가 원하는 결과가 안 나온다고 해서 과도하게 본인 탓을 하거나 좌절할 필요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같은 1이라는 인풋이 있어도 사람에 따라 그리고 상황에 따라 2가 나오기도 하고, 3이 나오기도 할 것이다. 2가 나오냐, 3이 나오냐 아니면 또 다른 어떤 수가 나오냐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우연과 환경적인 여러 요소 때문이라 생각한다.

만약 2를 바라는 내게 원치 않았던 3이라는 결과가 나온다면 물론 속상하겠지만, 1을 하지 않았다면 애시당초 어떤 결과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에서 나는 1을 하느냐 안 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키포인트라 본다. 인풋이 있어야 어떤 형태로든 아웃풋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실력과 노력은 한 요소일 뿐 전부가 될 수 없다는 걸 느낀다. 운, 환경, 그날의 기분, 작은 선택, 타인의 존재 등 그 외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은 가늠할 수 없을 만치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결과가 내 손에 달려있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란 결코 쉽지 않다.




진인사 대천명
(盡人事 待天命)





진인사 대천명. 인간의 일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뜻의 한자성어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후 결과는 운명에 따른다는 게 인간의 가능성을 다소 무시한 처사로 여겨지는 사람도 있을 테고, 어떤 커다란 운명론적인 궤도 안에서 부득부득 애쓴다는 생각에 되려 무력감에 잠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 의욕을 잃은 나머지 처음부터 아예 손을 놓아버리는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노력해도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고, 이미 운명이 정해져 있다면 대체 무얼 위해 노력해야 하는가? 힘이 빠질 만도 하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답할 수 없는 질문이며, '내가 무엇을 해도 결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고 그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내가 노력해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라는 사실에 압도돼 지나치게 부정적인 방향으로 과대 해석한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2가 아닌 3 혹은 4라는 원치 않는 결과가 나올 가능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회피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동은 2를 얻기 위해 필수적으로 선제되어야 할 1을 '하지 않는 선택'을 한 것이다. 본인이 인지하지 못한다 해도, 시간을 무감이 흘려보내는 것 또한 자신의 선택이다.


모두가 이미 아는 사항이지만, 1을 하지 않는다면 2는 오지 않는다. 원하는 결과가 나올 가능성을 점쳐볼 새도 없이 곧장 불가능이라는 결론에 도장을 쾅쾅 내리찍으니, 어찌 보면 1이라는 행동은 곧장 원하는 결과로 이어진다기보다 그 길로 가기 위해 가장 먼저 끼워야 할 첫 단추에 가깝지 않나 싶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일'로 변모하는 최초의 요인으로서 말이다. 이토록 인풋이 중요하건만, 그럼에도 우직하게 1을 하기 힘든 것이 사람이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지



작가 중에서도 이름난 사람은 소수이며, 극소수의 성공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오직 글만으로 밥 벌어먹기는 참 힘들다고 한다. 현실적으로 나는 이제 막 발을 떼기 시작한 취미생활로 생계를 책임질 수 있다 생각하지 않았고, 솔직한 말로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내 글이 널리 읽히고 유명해지길 바라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거짓일 것이다. 나도 한때는 내가 쓴 글로 먹고사는 상상을 했다.

글을 쓸 때의 내가 진정한 나라는 생각에 얼마를 벌어도 상관없으니 내가 쓴 글로 먹고 살 생각 만만이었다. 참된 내가 되어 생업에 종사한다 생각하니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되면 좋겠지. 되면 좋을 거야.' 아닌 척 굴며 나는 남몰래 행복한 공상의 나래를 펼쳐나갔다.


상상은 상상의 영역에 남겨두고, 살짝궁 일상의 자극을 즐기는 수준에 그쳤으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 속에 발을 디딘 나는 끊임없이 내 원과 현실과의 거리를 재며 스스로를 괴롭히곤 했다.



된다. 안된다.
가능한가. 불가능한가.
가진 것을 버려야 하는가. 마는가.

하는 확률 게임 같은 것





일견 고요해 보이는 수면 아래 홀로 고민하고, 재단하고, 예견했다. 글은 취미의 영역에 두고 내 생계로 끌어오지 않으려 했지만, 마음 한 편에서 혹시나 하는 희망이 자꾸만 속살거리는 통에 마냥 내 현실과 동떨어진 일로 깔끔히 배제해 버릴 수 없었다. 도무지 무시가 되지 않는 그 작은 가능성을 부여잡고 수많은 생각을 했다.


하늘의 뜻이 정녕 내 뜻과 다르다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이 넘어가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른 대안이 있지도 않으면서 시간만 죽이거나 패배주의에 찌들어 세상을 원망하며 사느니 어쩔 수 없다 깨끗이 받아들이는 쪽이 더 나은 선택이며, 더 현실적인 판단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유의 일이 대부분 그렇듯 막상 상황이 닥치면 이때껏 생각했던 바나 말해왔던 대로 행하기란 꽤 어려운 일이 돼버리고 만다. 나에겐 글이 그랬다. 안타깝고, 아깝고, 아쉬워서 도저히 가볍게 넘겨버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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