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꿈 7
내보이지 않는 글은 영원히 평가를 벗어난 영역에 머물기에 밖으로 보이기를 저어했다. 누군들 평가를 좋아하겠냐만 스스로를 괴롭히며 자기 검열과 자기혐오를 드나들었던 나에게 글은 드물게 자유로운 무엇이었다.
밖으로 선보인다는 것은 맞닿아있는 현실 속 평가의 대상이 된다는 말이었고, 이는 마치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결코 떼놓을 수 없는 한 몸으로 여겨졌다. 타인에게 보이는 순간 평가받을 것이 자명했고, 인정을 원하는 나는 어떤 반응을 요구할 것이었다.
총체적으로 나는 내가 원하는 반응을 얻지 못할 거 같아 외면했다. '그렇게 느꼈구나. 너는 그럴 수 있겠구나' 하는 고작 그 정도의 존중조차 받지 못할까 봐 겁이 났고, 내 글을 보고 보일 부정적인 반응과 모순적이게도 아무도 내 글에 관심을 보이지 않을까 봐 무서웠다. 들어주는 이 하나 없는 소음으로 전락할까 미리 비참했다.
평가받고 싶지 않았으나, 무의식 속 나는 가능한 최악의 상상에 닿아있었다.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이지 못한 채 어떤 망상에 가까운 이야기의 절정에서 머물렀다. 작은 점이 되어 그대로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지금 보면 무얼 그리 숨기고자 했고 비밀이라 생각했던 건지 모르겠지만,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을 끝내 들키고 말 거라는 두려움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나는 집단의 통일성을 깨뜨리는 불순분자였을지도 모른다. 고의로 엇나가고자 함이 아닌 순수한 내 선호를 따라 움직일 뿐인데 대다수와 다른 선택을 했고, 모두가 '예'라 할 때 내심 '아니오'를 원했으며 다른 사람과 굳이 같이 움직이기를 원치 않는 사람이기도 했다. 나는 다수가 아닌 소수에 속할 때가 많았는데, 필연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처하는 경우가 잦았다.
나의 비밀은 별거 아니었다. 지금 와선 애써 숨기려 하지 않는다면 비밀이라 할 것까지 있나 싶을 정도로 사소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옆 사람과 생각이 다르고, 내 기분과 생각을 우선하며, 나와 내 선호를 가장 중요시하는 것. 그래서 가끔은 이기적이라는 소리를 듣고 가끔은 선 밖으로 밀쳐졌다. 간단명료하지 않은가.
왜 굳이 분란을 만들고 그래.
가만히 있는 게 제일 빨리 끝나.
괜히 일 복잡하게 만들지 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니.
왜 이렇게 유난스럽니.
다른 사람들은 괜찮은데, 너는 왜 괜찮지 않니.
정말, 누군가에게 나는 통일성을 벗어나 획일화를 그르치는 이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나를 드러냈을 때 돌아 올 반응이 두려웠다.
대세를 따르지 않으면 공감 능력 떨어지는 사람 취급받기 십상이지만, 나는 억울하면 억울했지 내가 이상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딱히 잘못한 일도 아니거니와 누군가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도 않지 않았는가? (간접적인 피해까진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잖아)
어떤 한 집단이 각자 이기적인 이유(빠른 의사결정 혹은 이미 정해진 답으로 유도하기 위한 목적)로 통일성을 선호하고 요구한다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렇게 생각됐다.
나는 '나'의 문제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내가 '집단'과 만날 때, 혹은 속할 때 발생하는 문제였다.
큰 집단에 소속될 때 느끼는 심리적 안정감을 이해한다. 혼자가 좋다지만, 그런 나도 다른 사람과 함께 할 때 얻는 안정감은 다른 것과 대체할 수 없다 느낀다.
그러나 본인이 집단에서 이탈할 때 불안하다 해서 그러지 않은 사람에게 비난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은 또 다른 일이었다. 어찌 보면 (저도 모르는 사이) 자신의 활동 범위를 좁히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결국 제 살 파먹는 행동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다른 게 잘못은 아닐진대, 자세히 보면 그렇게 또 많이 다르지도 않은데 동일 집단 내에서 구태여 다른 것을 찾고, 그렇게 걸러진 안에서 또 이질적인 무엇을 기꺼이 찾아낸다. (뭘 저리 가르고 나눠서 머리 아프게 사나 싶지만) 나와 비슷한 것을 찾고 동질감을 쫓는 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인가 싶기도 하다.
사정이 이러하니, 뭘 하나 하더라도 소수의 입장에서 세상살이란 퍽 불리한 듯싶다. 이에 좋을 바 있겠냐만, 세상사 이미 그러한 것을 옳고 그름을 따지고 불리와 유리를 말해 무엇하겠는가.
점점 나를 드러내지 않게 된 것은 기어이 나를 내보여 소수를 부정하는 따가운 눈초리를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대화나 명확한 지시가 아닌 막연한 눈치만 왔다 갔다 하는 고로) 소리 없이 뒤쫓는 말을 따라야 할 당위는 없다. 그러나 이질적인 무엇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나를 괴롭게 했다.
'너는 우리와 다르다'는 낙인이 찍어지면, 배타성을 띠는 행동으로 이어지기 쉽다. 작은 행동이라도 이런 내쳐짐을 재차 겪게 되면, 잘못한 게 없어도 뭔가 잘못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설혹 내가 소속되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집단이라 할지라도 이른 배척에 단순한 불쾌함을 넘어 주눅이 든다. 없던 눈치가 어중간하게 생기니 더 골이 아팠다.
그동안 내가 느낀 '답답함'의 본질은 배척받고 싶지 않아 나를 드러내지 않은 것에 있었다. 나는 나를 드러내지 않고, 나를 드러내고 싶었는데 (언뜻 보면 가능한가 싶은) 이런 비합리적인 염원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글을 쓰며, 숨죽였던 나를 드러내고자 했다.
심저의 두려움을 인식했다. 해뜨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두운 것처럼 무서움도 그 실체를 드러내기 직전 가장 덩치를 키우나 보다. 하나씩 단계를 차근히 밟아가며 마침내 외면하던 것을 맞닥뜨렸을 땐, 무서움 너머 더 무서운 게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끝도 없이 커질 것 같은 풍선도 끝내 뻥 터지고 말 듯 크기를 키울 만큼 키운 두려움도 펑 터져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빈자리를 대신 채운 것은 놀라울 정도의 무관심이었다.
나는 내 생각과 말과 행동을 표현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나를 드러냈을 때 올 반응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소의 멀쩡한 머리라면 한 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각자 삶이 바빠 그 정도의 여력이 없음을 말이다.
관심도 열정도 나에게 쏟지 않는다. 모두 내 몫이 아니며, 그럴 이유 또한 없다. 그러게. 내가 뭐라고 그러겠는가. 고작 내가 뭐라고. 설사 내가 제아무리 유명한 사람이라 해도 어떻게 내리 그러겠는가. 왜 나는 비이성적인 환대를 기대했던 것과 같이 눈에 뭐가 씐 것처럼 맹목적으로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는가.
현실적이라 생각했던 나에게 이토록 비상식적인 구석이 있었다. 잊었던 현실감각이 찾아들며, 근거 없는 믿음으로 만들어진 내 안의 잘못된 인지체계 하나가 부서져 내렸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몰랐던 건 아니다. 그러나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넌지시 기대했던 꿈결 같은 환호성도, 막연한 상상 속의 난데없는 비난도 아닌 무관심한 반응을 맞닥뜨리자 내 기대와 예상을 많이 벗어난 까닭에 잠시간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알을 깨지 않는 이상에야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을지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막상 겪은 무관심이 마냥 좋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대중없는 상상에 시달렸던 것에 비하자니 뭐 그런가 보다 싶었다. 각본이 짜인 세상도 아닌데, 언제나 원하는 반응을 탁탁 얻어내는 것도 억지스러운 일이었다. 마비됐던 이성이 제 활동을 시작하자 무관심이 그래 뭐 어떤가 싶기도 했다. 딱히 비참하지도 슬플 일도 아니었다.
무관심을 두려워했으나 놀라울 정도로 상처받지 않았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무관심 이후 찾아든 감정이 안도감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걸 체감하자 나는 안심하다 못해 당당해졌는데, 더 나를 막 드러내도 상관없겠구나 싶고, 더 편안한 자연 상태의 나로 있어도 되겠다 싶었다. 글의 세계에서 느꼈던 자유로움을 현실에 적용해도, 나를 드러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체험의 끝은 무력감이 아닌 해방감과 맞닿아있었다.
나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몸소 겪자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나를 향한 비난을 과대 해석했다는 오류.
어쩌면 실제와 내 인지 사이에 간극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
과거 몇 번의 경험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있었다는 아쉬움.
지레 겁먹어 내가 나를 가뒀구나 하는 후회.
그리고 나와 비슷한 사람이 모두 나와 같이 자신을 가두는 길을 택하진 않았으리라 생각하자 잠깐 마음이 울적해졌다. (성격이 팔자라더니 내가 나를 괴롭혔구나!)
글을 쓰는 데에서 더 나아가 내 글을 보이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어졌다. 글에서와 같이 글 밖에서도 자유로워지자 이때껏 느껴보지 못한 차원이 다른 해방감이 나를 감쌌다. 마음이 보다 편안해지고, 여유가 찾아왔다.
누구도 나를 부정하지 않는다. 더 정확한 말로 특별한 하나가 아닌 평범한 여럿 중 하나인 나를 부정하는 덴 그만한 시간을 쏟을 가치가 없다. 스치는 눈빛 한번, 흘리는 말 한마디쯤은 나도 같이 흘려 넘기면 그만이다. 나는 잘못되지 않았다. 설사 그렇다 해서 어쩔 건가. 내가 굳건히 버티고 있는 한 아무도 나에게 그렇게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글 속에서 나는 진정 자유로웠다. 그러나 글에서만이 아닌 현실에서도 이미 그러했음이다. 내가 무엇을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에 도리어 나는 무엇을 해도 되는 자유를 얻었다. 그동안 나는 내 존재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해서 힘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