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라는 이름의 족쇄

글쓰기의 꿈 11

by 김약

늦게 생긴 꿈



나이가 들어서 새로 생기는 꿈이 있을까? 나는 있다고 본다. 어릴 적부터 한결같이 바라던 것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꿈이 생기기도 한다고 말이다. 아이가 자라 자신만의 생각을 갖게 되면서 새로운 꿈이 자라나기도 한다. 글을 쓰겠다는 꿈을 뒤늦게 가지며 내 안에 몇 갈래 상념이 속속 자리 잡았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다들 늦었다고 하는 걸까? 열 살이고 스무 살이고, 삼십이고 사십이고 모두에게 시작은 다 똑같이 힘든 시작일 진대, 어째서 나이 들어하는 시작은 반대할 이유를 찾느라 (주변이 더) 혈안인 것인지. 다른 누구보다 본인이 제일 고심하고, 고민 끝에 도달한 변곡점에서 심사숙고하여 내린 결정일 텐데 말이다. 사뭇 무례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물러설 곳이 없다는 위기감에 보다 힘껏 달려 나갈 것이 틀림없었다. 하물며 꼭 이 길이어야 하는 이유마저 있는 유리한 시작이지 않은가? 다들 실패를 예상하며 반대하는 걸 텐데 내 눈엔 간절한 만큼 성공 확률이 더 높아 보였다. 지나온 시간과 비례하여 쌓인 경험과 식견을 고려한다면 더 그렇게 여겨졌다.












평균적의 시간



특출한 재능과 연이 없는 보통의 사람을 기준으로 볼 때, 낯선 일을 터득하는 데 걸리는 기간에 그리 큰 차이가 있지 않을 것이다. 똑같은 백지상태에서 출발한다는 가정 하에 (3년이라면 3년, 5년이라면 5년) 적정 수준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시간은 나이와 상관없이 일정 기간이 소요될 거라 생각한다.


어떤 분야의 어떤 일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같은 산을 목표로 한다면 앞선 사람들의 경험과 통계로 (3시간이면 3시간. 5시간이면 5시간) 정상에 오르기까지 대략적으로 얼마의 시간이 소요될지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간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산을 오르는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필요한 시간이다. 신체적 능력에 따라 더 단축되거나 늘어날 수도 있지만, '보통의 사람'이 같은 산을 목표로 한다면 그 시간은 평균에서 크게 멀어지지 않을 것이다.













예외사항도 있겠지만,



물론 나이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스포츠 같은 특정 분야도 있다. 또 예술 영역처럼 적성과 재능에 따라 결과가 두드러지게 차이 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외의 분야에서 평범한 사람이 (최고가 아닌) 어떤 기준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다.


어릴 적 피아노를 같이 배우기 시작한 친구들이 체르니 30번까지 치는데 (보통 2년) 얼추 비슷한 시간이 걸렸던 것처럼 커리큘럼에 맞춰 진도를 따라가다 보면 그럭저럭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 (빠르면 1년, 늦으면 3년이 걸릴 수도 있지만) 대부분 1-3년이라는 예상되는 기간 내에 체르니 30번을 끝마치지 않았던가.


생각해 보면 대학 입학 후, 유급을 하거나 학사경고를 받아 제때 졸업하지 못한 학생은 몇 되지 않았다. 학점은 천차만별이겠지만, 어쨌든 다 같이 졸업은 한다는 말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일찍 적성을 찾은 사람이 열다섯에 시작하여 5년 후인 열아홉에 유의미한 성과를 얻었다고 가정해 보자. 다른 한편엔 그보다 늦게 스무 살에 첫 발을 내민 사람이 있다.

열아홉의 아이보다 고작 한 살 더 먹은 스무 살의 청년은 (열아홉에 이미 결실을 본) 또래와 비교하여 현재 자신이 그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음에 속상해하고 좌절해야 할까?


당연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산에 발을 딛자마자 정상에 오르길 바라는 것은 허무맹랑하기까지 한 이루어질 수 없는 욕심이다. 더군다나 산을 이제 막 오르는 사람이 이미 정상에 도달한 다른 사람의 존재를 의식한들 무슨 의미가 있는가.

입산 시각이 다르면 처음부터 비교할 거리도 되지 못한다. 본인의 등반에 타인의 행적은 중요치 않으니, 5년 후 스물다섯의 자신을 그리며 내 몫의 산을 오르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어찌하여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걱정이라는 명목 하에) 시작부터 방해받고, 무시당하며 가능성을 짓밟혀야 하는가. 처음부터 앞이 명확히 보이는 길이 몇이나 되며, 어릴 적부터 일찍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시도한 사람은 또 얼마나 되겠는가.

늦게라도 해보겠다며 어렵게 발을 뗀 사람에게 하지 마라 할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가? (어디 도움 하나 주지 않으면서 말만 얹지 말란 말이다) 실제 누구도 이리 대응하지 않았으나, 나는 대상 없는 상대를 향한 무용한 화가 끓어오르곤 했다.












잘할 자신 있어요



심한 두통으로 예기치 않게 직장을 그만둔 어느 날, 짧게나마 진지하게 작가의 길을 고려한 적 있다. 10년을 내다보고 그 시간 동안 꾸준히 글을 쓴다면 잘할 수밖에 없겠다 생각했다. 어림잡아 이미 5년은 홀로 지속한 바, 글을 쓰겠다는 욕망이 적어도 10년은 걱정 없이 이어질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여기서 '잘'이란 엄밀히 말해 내 마음에 드는 글을 쓴다는 것이지, 대중적이고 널리 읽힐만한 글을 쓸 자신이 있다는 말은 아니었다. 더욱이 그 글이 돈이 될지, 누군가 내 글을 얼마나 읽어줄지, 좋아할지, 과정과 결과가 시간 대비 효율적 일지 등과는 전혀 관련 없는 사항이었다.

오로지 나 하나만 고려했을 때 나는 내 눈에 차는 글을 쓰기까지 10년이면 충분하다 생각했다. 뭐가 돼도 되겠거니 하는 마음이었다.


내가 쓰려는 글은 폭이 좁고, 하고자 하는 말은 명료하다 못해 단출했기에 내 취향의 글을 완성하고 읽을 만한 수준에 이르기까지는 단지 나아갈 시간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 내가 만족하는 글을 완성한다는 좁은 범위의 목표에 한해 나는 자신 있었다. 내가 건드릴 수 없는 다른 환경적 요인과 그로 인한 결과를 제하고 적어도 '내 마음에 드는 글을 완성한다'는 하나는 확신했기에 걱정 없이 노력했고, 길이 보이는 것 같았다.













돈 벌 자신 없어요



그러나 내 마음에 차는 글이 곧 생계를 꾸려갈 만큼 충분한 수입을 벌어들일 수 있을 거라는 말과 일맥상통하진 않는다.

좀 다른 예로 '잘 쓴 글'과 '취향인 글'만 해도 곧잘 다르다 생각하는데, 1 회독을 넘어 몇 번이고 다시 읽는 책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 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 아무리 '잘 쓴 글'이라도 개인의 취향에 맞지 않다면 두 번 읽기란 꽤 버거운 일이 되고 마는 것이다.


하물며 '돈이 되는 글'은 어떻겠는가? 생계를 유지할 정도로 대중적으로 성공한 글과 그 정도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수입을 발생시킬 수 있는 글은 일반적으로 '잘 쓴 글', 그리고 내 '취향의 글'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글쓰기에 있어 또 다른 기준이 필요함은 자명한 일이었다.


나는 타인이 보기에 '잘 쓴 글'도, '돈이 될 글'도 쓸 자신이 없었다. 솔직한 마음으로 둘 다 자신이 없으니, 내 마음에 드는 내 취향에 맞춘 글이 우연히 그냥 남이 보기에도 좋아서 돈도 벌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별다른 노력 없이 말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생업을 그만두고 온전히 글만 쓰겠다 마음먹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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