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다는 말

글쓰기의 꿈 12

by 김약

돈 때문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 '늦었다'라는 말은 '목표한 지점에 도달하는데 적절한 시기를 놓쳤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전적인 의미와 달리 어떤 일을 새로이 시작하는데 절대적으로 늦은 경우는 없는 것 같다.


그냥 하면 된다.



마음만 먹는다면 시작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늦었다 말하는 걸까? 답은 쉽게 나온다. 바로 돈 때문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 늦었다'라는 문장에 생략된 부분이 있다면, 아마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제아무리 열과 성을 쏟아도 이 일로 돈을 벌기에 시작이 너무 늦었다는 뜻일 테니 말이다.













시간이 부족해



나이 들어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면, 늦었다는 이유로 많이들 만류하곤 한다. 단지 나이가 듦에 따라 개인이 가진 잠재력과 기량이 쇠했기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정말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나는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는 이미 지나온 세월 딱 그 정도만큼 앞으로 남은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돈을 벌기 위해 지나쳐야 할 관문은 많다. 어느 분야라도 돈을 벌기까지 물질적, 시간적 자원을 오랫동안 꾸준히 투자해야 한다. 보통의 대한민국 아이들이 대학을 가기 전 (초6, 중3, 고3) 총 12년의 정규 교육을 받는 현실을 생각한다면 한결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대학을 입학하는데만 해도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육십이 넘어서 의사가 되겠다 마음먹었다 가정해 보자. 좋게 봐줘서 의대에 입학한 시점을 '시작'으로 상정한다 해도(준비만 하고 입학도 못할 수 있다), 6년의 대학생활과 3~4년의 수련과정을 거쳐 칠십은 되어야 비로소 의사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처럼 새롭게 일을 배우는 데는 시간이 걸리며, 배우고 익숙해져 사회에서 활용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그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몫을 하여 돈을 벌기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인적, 물적, 시간적 자원이 들어간다.









능력을 쌓는 데 걸리는 시간



새로운 일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는 시기가 뒤로 미뤄진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심지어 어떤 경우는 돈을 버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늦을 수 있다. 안타깝지만 나이가 과도하게 많거나, 운이 없으면 돈을 벌 수 있게 되기도 전에 유명을 달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준비 기간 동안 피치 못할 이유로 경로를 이탈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건강 상의 이유로 수련을 지속하지 못할 수 있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건강을 잃을 확률이 높다는 건 모두들 경험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십 대, 이십 대 혈기왕성한 시기에 겪지 않은 증상이 삼십 대부터 슬슬 나타나기 시작하며, 중장년이 되면 확연히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한 분야에서 돈을 벌기까지 점점 더 긴 교육기간이 요구되는 만큼 (당장 돈을 벌기 위해 하는 단기 알바는 예외로 둔다) 위 생각은 더욱 타당하게 여겨진다. 평균수명이 증가하고 그에 따라 중장년층의 은퇴시기가 늦춰지고 있지만, 이와 동시에 산업이 발전하고 각 분야가 점점 세분화, 전문화됨에 따라 교육기간 또한 길어지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돈을 벌 만큼 전문적인 소양을 쌓는데 요구되는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그 시간 동안 불상사가 생길 확률 또한 높아지게 된다. 준비 기간 내 본인의 뜻이 아닌 외부 요인에 의해 중단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하는 시작이라면, 건강 면에서 더더욱 그렇다.











돈을 벌 수 있는 기간



10년 가까운 시간 수련기간 동안 돈을 벌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요, 칠십 이후 의사로서 돈을 벌게 된다 하더라도 기대수익은 제한적이다. 시작이 늦은 만큼 의사 생활을 할 수 있는 기간은 길어야 10년 정도일 테니 말이다.


차근차근 땅을 다지며 이때껏 일궈놓은 길에 비하면야 더더욱 허울뿐인 비교가 된다. 같은 10년이라는 시간이지만 한쪽은 초기 투자가 일찌감치 끝나 과실을 따먹는 수확의 기쁨을 누리는 10년인 반면, 다른 한쪽은 이제 막 씨를 뿌리는 고단한 10년의 세월이 될 것이다.


새로운 일에 뛰어들면 당장 돈을 못 버는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 돈을 벌기까지 시간이 더 소요된다. 이런 이유로, 나이가 들어 새 직업을 얻는다는 건 불가능하진 않지만 그리 효율적인 선택으로 보이지 않는다.

투자 기간이 길어질수록 새롭게 뛰어든 사람이 감당해야 할 위험 또한 커지게 된다. 성공적으로 수련을 마치더라도 피치 못할 사정으로 고작 몇 년 후 은퇴할 확률도 무시할 수 없다. 이처럼 고생은 고생대로 실컷 하고 과실은 조금밖에 못 따먹는 경우도 생길 것이다.


새로운 선택에 대한 기회비용과 그사이 혹 생길지 모를 불상사까지 고려한다면, 금전적인 면에서 굳이 안정된 길을 버리고 새로운 선택을 할 이유는 없다.













늦었다는 말



현재의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면, 수입 없이 오랜 기간 버텨야 하므로 책임져야 할 것(가족, 생계 등)이 있는 사람은 섣불리 새로운 일을 도전하기 힘들 것이다. 극단적인 예로 긴 수련 기간을 가진 의사를 예시로 들었지만, 어떤 일을 하더라도 한 분야에서 진지하게 일할 마음으로 심도 있게 배우려면 최소 몇 년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가진 것이 없으면 잃을 것도 없다지만,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이미 손에 쥔 것이 있다면 판단을 잘해야 한다. 왜 꿈은 어릴 적에 가져야 하고, 그래야만 이룰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지 생각해본다면 아마 이런 이유 때문 일 거라 생각한다.



돈을 벌어야 하고,

현재 손에 쥔 게 있으며 (잃을 게 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적다.




내가 글을 쓰니 마니 고민하며 헤맨 이유도 별다를 바 없는데, 결국 돈이 문제였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나는 글을 쓰겠지만, 당장의 수입이 없다면 글만 쓰고 살진 못하는 것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늦었다'는 말은 새로운 꿈이 주체가 아닌 그 기저에 있는에 포커싱 되어 있기에 나올 수 있는 말이라 생각한다. (내포된 의미를 파악한다면) 다른 방향에서 보면, 돈을 벌고자 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을 하더라도 늦은 일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떤 일을 새로이 시작하는데 절대적으로 늦은 경우는 없다. 그냥 하면 된다. 마음만 먹는다면 시작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썩 힘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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