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의욕과 달리 손이 느린 초심자가 글을 쓰는 데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글을 쓸 시간이 한정돼 있는 고로, 나는 시간을 확보하는데 집착하게 됐다.
그리고 그런 나날이 지속되자, 현실과 점점 멀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현실의 내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글을 쓰는데 집중한 나머지 지금을 사는 시간이 무의미하게 다가왔다. 극단적일 정도로 글쓰기 외의 활동이 내게 어떤 의미도 되지 못해서, 먹고 자고 씻는 일상적인 시간을 포함하여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곳을 가고 즐기는 (지금 보면 매우 감사한) 나날이 시간을 허비하는 일로 여겨졌다.
하나에 온 신경을 쏟은 결과로, 현실에서 멀어지고 현실의 삶에 거리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결핍을 채우고자 하는 욕망
글을 쓰는 사람은결핍이 있는 사람이다. 글쓰기는 재밌는 동시에 지겨운 활동이기도 해서,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글을 쓸 지난한 과정을 견딜 동력을 지속적으로 얻어 낼 수 없다는 생각이다. 불편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불편함을 느껴야 변화를 모색한다) 결핍이 없는 사람은 글을 쓰지 않는다.
쓰는 행위에 살아있음을 느낀다. 글을 왜 쓰고자 했는지 돌이켜보면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는 말 한마디로 표현할 순 없을 것 같다. (분명 그런 이유도 있지만) 그런 근원적인 이유만이 아니더라도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이고, 내 의견을 가능한 잘 빠짐없이 설득력 있고 조리 있게 전달하고자 하는 까다롭고 쓸데없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여러 이유로 글을 찾은 나지만, 그렇다고 꿈속을 거닐듯 글 속에서만 살고 싶은 건 아니었다. 기실 결핍을 채우고자 하는 욕망은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고, 나는 현실 속 결핍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글을 택했을 뿐이었다.
나는 내 머릿속 가상의 세계가 아닌 현실 속에 살며, 현실 안에서 변하고 싶었다.
반대 방향
현실에서 멀어짐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으나, 글쓰기를 위한 치열한 노력이 현실을 등한시하고 결국 현실에서 괴리되는 결과로 돌아왔다. 현실에 영향을 끼칠 효과적인 도구로 글을 이용하려는데 되려 현실에서 멀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
이는 내 바람과 반대로 가는 것이었다. 나는 결핍을 채우고자 가는 길과 반대로 나아갈 생각은 없었다.
현실에서 점점 멀어지는 나를 발견하며 앞으로 어떤 행동을 취하는 게 좋을까 생각했다.
글 쓰는 시간을 줄여야 하나?
몸도 안 좋고 지치기도 하는데, 지금 쓰는 글만 다 쓰고 당분간 좀 쉬어볼까?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두서없이 떠올랐다.
그러나 고민할 시간은 길게 주어지지 않았으니, 익숙한 통증을 참으며 세 번째 글의 완성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진전된 두통 발작은 더는 내가 인내할 수준이 아니었다.
가능한 현실적으로
앞선 글에서 '과거로 돌아가서 선택할 수 있다면'이라는 만약을 가정하여 최상의 시나리오를 그려 보았다. (현실을 잘 인식하자 그토록 소리치면서 나는 좀처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나 보다)
이런 비현실적인 생각을 하는 것과 대비되게 (다행히) 나름 현실적인 구석이 있는 나는 앞서 와 같이
과거로 돌아가서 선택할 수 있다면
라는 동일한 전제에서 출발하되, 이번엔 최상의 시나리오가 아닌가능한 현실적인 그림을 그려 보기로 했다.
그래. 정말 어릴 적부터 원해서 이른 시작을 하고, 어떤 추가적인 부담도 없이 한 가지 일에 투자할 충분한 시간과 물질적 자원이 있다면 지금쯤 난 어떻게 살고 있지에 대해 말이다. (상상도 이 정도면 병인가 싶기도 한데, 이런 과정이 너무 자연스럽게 진행됐던 까닭에 나는 이 글을 쓰기까지 내가 굳이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애써 힘을 써가며 상상한다는 걸 인식하지 못했다)
평형 세계의 나
과거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진로를 택할 것인지,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에 대한 답은 '과거로 돌아가서 선택할 수 있다면'이라는 질문의 대답으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이 답을 가능한 현실적으로 되돌아보기 위해 '평형 세계의 또 다른 나'로 생각해 보기로 했다. 보다 높은 객관성과 정서적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현실과 깔끔하게 분리하여 내면적 혼란을 방지할 수 있을 터였다.
일찍이 글을 쓰고자 마음먹은 다른 세상의 어린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작가로 정식 등단하기 위해 공모전이니 출판이니 뭐니 좁은 길을 뚫는다고 시도하고 있을 것 같다. 불투명한 미래에 하루 종일 스트레스받을 텐데 어찌 잘하고 있으려나 싶기도 하다.
결과는 쉽게 드러나지 않고 절대적이지도 않다. 사람마다 보는 눈이 다르고, 어제는 좋았던 글이 다음 날엔 또 별로일 수 있다.
어린 내가 중심을 잘 잡고 있을까. 사람과 상황과 시점에 따라 오락가락 변하는 평가에 정신적 안정이 위협받진 않을지, 혹 대중없이 돌아가는 상황에 불안해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너무 나를 과소평가한 과도한 우려인가 싶기도 하지만, 나약한 내 정신에 그러다 몸도 마음도 망가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인다. (무시 못 할 확률로 일어날 법한 일이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굳이 사서 걱정하는 게 웃기지만, 스트레스에 못 이겨 비실비실 거릴 내가 꽤나 현실적으로 상상된다.
꾸준히 글을 쓰고자 마음먹은 것은 나를 위한 글을 썼기 때문이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었다. 기본적으로 내 만족을 위해 하는 활동이 나를 망친다 생각하니 본말 전도된 상황에 심히 당황스럽다.당면한 현실 생활이 망가진다생각하니 더럭 겁이 나기도 한다.
직업으로 진지하게 글을 쓰고 있는 나를 상상했다. '일찍이 글쓰기에 마음을 뒀다면'라는 내가 바랐던 이뤄질 수 없는 가정을 기반으로 평형 세계를 상상하는데도 불구하고, 직업으로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떠올리자 이전과 달리 썩 자신이 없어졌다. 막연한 희망에 가득 찼던 망상과 달리, 현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하자 아무리 봐도 내가 백 프로 만족하고 있진 않을 것 같아 보였다.
직업으로 글을 쓴다면 나는
무슨 일이든 돈을 벌기 쉬울까마는 글로 돈을 벌기 힘들다는 소리는 (출판계를 향해 한쪽 귀를 열어놔서 인지) 참 빠짐없이 들려온다. 출판시장은 더 커지기는커녕 좁아질 일만 남은 사양 산업이라는 말까지 들리는데, 대중의 수요가 지면에서 미디어로 이동하고, 영상 매체의 힘이 커지는 만큼 확실히 글은 근 시일 내에 더 발전하고 커질 첨단산업은 아닌 것 같다.
적지만 꾸준한 수요로 책이 사라지진 않겠지만, (책이 주는 신뢰성과 정제된 정보, 글로 전달되는 한 사람의 깊은 생각, 인식, 지식 등은 다른 매체로는 대체 불가한 장점일 것이다) 메타버스까지 넘보는 이 시대에 시각에 의존하는 글보다는 그 외 다른 감각 또한 같이 자극하는 방향으로 우리의 시선이 이동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런지 이전에도 이후에도 글로 큰 성공을 거둔 내 모습이 썩 잘 그려지지 않았는데, 업계에 관한 전반적인 내 관점은 그대로여서 인 듯하다. 정말 그랬다. 돈을 받고 글을 쓴다던가, 글로 돈을 많이 번다던가 하는 직업적 성취에 대해서는 실현 가능성이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다.
'일찍 글을 쓰기 시작했다면'라는 하나의 전제 위에 세워진 거침없는 상상 속에서도 돈을 많이 벌고 유명해지는 건 정말 내 손을 떠난 일이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이뤄지는 허무맹랑한 꿈을 꾸는데 아닌 이상 말이다.
지금과 뭐가 다른가
글을 계속 쓰긴 할 것 같다. 돈도 벌 수 있을 것이다. 칼럼이나 기사처럼 제의를 받고 글을 쓰는 단발성의 일도 있으니 돈을 벌 수야 있을 것이다. 그러니 보다 정확한 말로, 아예 안 될 것 같다기보다 어떻게 되긴 할 텐데 그리 잘 될 것 같지 않은 느낌이다.
쉬운 예로, 일이 규칙적이지 않고, 수입이 일정치 않으며, 돈을 받아도 쥐꼬리만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진짜 조금 벌어서 그 쥐꼬리만 한 돈을 아끼고 아껴서 살 것만 같다.
나를 위한 글이 아닌 타인의 요구에 응하는 글을 써야 할 수도 있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상반된 사항을 우선하는 글을 쓰며 내가 만족할 수 있을까? 관심 없는 글을 쓰며 보람을 느낄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먼저 내 입맛에만 맞는 글을 써서 돈을 벌 수 있는지부터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글이 정말 돈이 안 된다면 나는 어떻게 하나? 할 줄 아는 게 글 쓰는 것뿐인데, 나는 무슨 일을 하며 먹고살아야 하지? 평형 세계의 나도 언제까지 마냥 어린아이가 아닐 테고 흐르는 시간 따라 성장하여 또 한 사람의 성인이 될 텐데, 도통 글로 적정량의 돈을 벌어 생계유지할 각이 안 나오는 것이다.
그럼 결국 다른 일을 하게 되지 않을까? (그럼 지금과 뭐가 다르지?)
과거로 돌아가서 그래서 일찍 시작할 수 있다면,
잘 되겠지. 미리 준비하면 잘될 거야.
적어도 그럴 확률은 높잖아?
그리 생각했다. 그래서 어린 날로 돌아가면 서슴없이 글에 나를 바치겠다 생각했다. 어차피 실현 불가능한 일로 여겨질 땐 한층 희망적인 시각으로 좋은 면만 보이고, 그냥 다 잘 될 것만 같아 보이니까.
그러나 정말 내 일이 될 수 있다 생각하고, 현실감을 깨우니 쉽게 그런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런 고로 나는 시작은 다를지라도 똑같은 결론에 도달하고 만 것이다.
평형 세계의 나도 생계로 글을 선택할 자신이 100% 있진 않다는 슬픈 사실.
글에 대한 내 현실 인식이 변함이 없으니, (글로 일정 이상 수익을 얻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결론 또한 그대로일 수밖에 없으리라. 어찌 보면 당연한 결론이다.
이 결론이 지금의 내 상황과 같다는 사실에 이왕지사 잘 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상상 속에서도 이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나에게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나라는 사람
먹고사는 일이 그렇게 중요한가 묻는다면 나는 '그래, 중요하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내가 스스로 (어느 정도) 나를 책임진다 건 매우 중요한 일이고, 긴 시간 나를 괴롭혀 온 문제였다. 직접적으로 당면한 과제가 되기 이전 수면 아래의 일일 때부터 나는 이를 은근하게 지속적으로 의식하고 있었다.
취업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10대 때부터 나는 가끔 씩 과연 내가 돈을 벌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는데, 그동안 공부만 하느라 돈을 버는 일이 영 나와 관계없는 일로 느껴지기도 했지만, (겪어본 적 없는지라 아무리 생각해도 일하고 있는 내가 도통 상상이 되지 않았다) 아마 필연적으로 마주칠 낯선 사람과의 새로운관계 형성과 내 능력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약학대학에 진학하여 직업이 안정되지 않았더라면, 나는 더 긴 시간 힘들어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버릴 수가 없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뭔지 알기 때문에. 나는 글쓰기를 통해 나라는 사람을 느끼며, 할 수 있다면 평생 그렇게 살만큼 그 시간을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나라는 사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선해야 할 것이 있었다.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내가 아무리 글쓰기를 사랑한다 해도 사랑 이전에 내가 갖춰야 할 것이었고, 나라는 사람을 지키는 게 내 호오와 가치, 의미보다 더 절실한 문제였다.
나라는 사람 2
사랑에 눈이 멀어 어릴 적으로 다시 돌아가면 글을 쓸 거라 생각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불가능을 가정하여 내가 원하는 판을 깔아 두자, 나의 우선순위에서 결코 뒤로 넘겨버릴 수 없는 현실적인 고민이 따라왔다.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은 어린 날 시작했더라도 나는 고민이 많았을 테고, 소득을 얻기 위해 노력했을 테고, 좌절도 있었을 테고, 그 인생도 그저 쉽게 굴러갈 거 같지 않다. 그때라고 어려움이 없고, 내가 만족하기만 하겠는가.
이뤄지지 않은 가상의 현실을 그려보고 온 지금의 나라면 말이다, 그토록 바랐음에도 이를 이겨낼 야심은 없다. 언제나 글을 쓰는데 거리낌이 없었지만, 더는 선뜻 10살의 내가 작가를 꿈꾸리라 확언할 수 없어지고 말았다.
나는 현실이 더 중요했다. 내 꿈이 현실이 될 순 없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불투명한 미래에 희망을 찾기보다 불안을 느끼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