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e and get your swim

by 시에나

내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뭐일지 곰곰이 생각했다. 당시 나는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된 신생아를 키우기 위해 육아휴직 중이었고, 집을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가 절실했다. 역마살이 낀 듯 어떻게든 집 밖에 있는 걸 좋아하는 데, 집 안에서 아이만 돌보며 딸과 집콕시간(집에서 콕 틀어박혀있는 시간)이 펼쳐진 것이다.

그러다 생각난 건 '새벽 수영'이었다. 아이는 곤히 잠들어 있고, 남편은 출근하기 전인 새벽녘에 살금살금 몰래 나가서 한두 시간 있다가 돌아오는 정도가 젖먹이 엄마에게 주어진 최대한의 자유시간이었는데, 수영이 새벽 강습도 있어서 적당했다. 그렇게 집에서 버스 타면 꽤 가까운 시립수영장 강습반을 등록했다.

많고 많은 활동 중 수영을 택한 이유는 더욱 특별할 수 있는 순간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이다. 20대 초반에 지중해 연안으로 여행 간 적이 있다. 배로 조금 깊은 바다까지 갔는데, 선장님이 배를 갑자기 정박하시더니, 배에 탄 사람들을 편하게 쉬게끔 자유시간을 주셨다. 선상 투어를 해외에서 처음 하는지라, 그냥 배 안에서 바다를 구경하며 쉬는 건가보다 싶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갑자기 하나둘 배에서 바다로 다이빙해서 들어가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첨벙, 첨벙' 우후죽순 빠지더니 결국 한국인 셋만 배 위에 남고, 나머지 수십 명은 바다에 유유히 떠다녔다. 나를 포함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수영이 교과목에도 없어서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 그런지 마침 모두 다 수영을 못했다. 바다 위 사람들은 평온하고 즐거워 보였다. 온몸으로 지중해를 만끽하는 듯했다.

그중 호쾌하게 보이는 내또래 유럽 여자애가 나에게 내려오라며, 수영을 가르쳐주겠다고 하기도 했다. 나는 수영이라면 여름방학 특강으로 2주 배운 게 전부였던 지라, 시커먼 바다로 뛰어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까치발로도 발이 닿지 않는 바다는 5m 바로 밑에서 상어가 입을 벌리고 내가 가라앉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은 공간일 뿐이었다. 수영 하나 못해서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지중해를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나도 바다로 뛰어들고 싶었다고!


그렇게 시작한 새벽 6시 기상미션. 올빼미형 인간인 나는 늘 새벽 1시까지 이유식 숟가락이나 치발기 같은 육아용품들을 쿠팡 로켓배송 주문하고 잠들어 피곤했지만, 어떻게든 눈꺼풀을 밀어 올렸다. 막 동튼 아침, 수영장행 버스를 타러 가는 길 위 공기는 같은 날 다른 시간대보다 유난히 상쾌했다. 아파트 단지 내 작은 골목을 걷다가 앞뒤로 아무도 없어 보이면,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1'에 주인공 주제곡인 'Come and get your love' 같은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어깨와 엉덩이, 수영가방을 가볍게 흔들며 버스를 타러 갔다.

수영 새벽반은 자기 계발을 하고 산다고 자부하는 눈빛의 근면한 사람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강습받기 전에는 이 시간대에 회사 출근하기 전에 출석하는 남자들이 대다수일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막상 수업을 들어보니 열다섯 명 남짓 오면 여덟아홉은 여성으로, 여성 비율이 생각보다 꽤 높았다. 그녀들은 약국이나 교회로 출근하기 전의 직장인, 학교 가기 전에 들른 성악과 대학생, 나 같이 아이를 잠깐 애 아빠나 할머니한테 맡겨놓고 온 육아 중인 엄마들까지 다양했다. 나는 이들과 오가며 인사를 나누다 보니 급속도로 친해졌다. 우리는 서로 묘한 동질감, 그리고 서로의 처지를 가엾게 여기며 동병상련을 느꼈다.

강습 레인에 목까지 몸을 푹 담그고 자기 차례를 기다리면서 '고생하며 산다, 네가 더 부럽다, 내 처지 좀 봐라, 아니다, 내 처지가 더 안 좋다'는 둥 푸념과 응원을 나누는 게 일상이었다. 아직 옹알이도 못 하는 딸내미도 사랑스러웠지만 대화다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와 얼굴을 마주하며 대화를 나누니, 무슨 이야기를 해도 웃음이 깨알같이 쏟아졌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묘미였다. 나도 그들처럼 시간을 쪼개어 수영하고 있기에, 왠지 모르게 나도 무언가 해내며 살고 있는 것 같아서 형용할 수 없는 뿌듯함도 느꼈다.


수영하는 것도 즐거웠다. 손가락 사이사이에 물을 흘려보내고, 발등으로 수영장 아래쪽으로 물을 눌러서 내 몸을 조금씩 앞으로 보내다 보면 어느새 레인 끝에서 끝으로 도착했다. 매주 월요일, 오리발을 끼고 자유형을 4바퀴 돌았다. 열댓 명이 떼거지를 우르르 무아지경으로 헤엄을 치다 보면 바다 위 해류처럼 물에 흐름이 생긴다. 회원들이 힘을 합쳐 만들어진 흐름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노라면 물고기 떼가 된 것처럼 내가 크게 힘쓰지 않아도 휩쓸려간다. 오리발이 마치 내 꼬리지느러미가 되어 파닥거리는 듯하다. 분명 발차기하느라 발목이 버티기 힘든데도 자연스럽게 미끄러져 가는 리듬을 깨고 싶지 않아 멈출 수가 없었다.

시간을 거듭할수록 실력이 느는 것도 체감할 수 있었다. 마치 아이가 걸음마에 성공할 때까지 부모는 믿고 기다려주는 것처럼 영법 하나를 체득하려면 몸을 물에 맡기고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렇지만 대게는 묵묵하게 연습하며 익숙하기까지 기다리기 쉽지 않다. 나는 평형을 제대로 할 수 있기까지 한두 달 걸렸다. 평형은 손동작할 때 다리는 기다려야 하고, 발차기를 한 후에도 2초쯤 가만히 몸이 앞으로 나가는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내 몸에 맞는 타이밍을 익히기 위해 강습이 없는 날에도 연습하러 수영장에 가기도 했다. 얼추 평형다운 모습을 갖췄을 때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호텔이나 리조트 수영장에서는 보통 얼굴을 내밀고 평형을 하던데, 드디어 나도 호텔에서도 수영할 수 있겠다! 얏호!


솔직히 매번 가고 싶던 건 아니었다. 가끔은 좀 더 자고 싶었고, 춥거나 비가 내려 나가기 싫은 날도 있었고, 그냥 수영이 하기 싫을 때도 있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까지 하나 싶을 때도 분명히 있었다. 그렇지만 샤워하러 가기도 하고, 가서 양치라도 하자는 생각으로, 샤워 물값 아끼자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출석 도장을 찍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딸내미는 걸음마를 떼었고, 나도 물 안에서 걸음마를 뗀 수준인 4대 영법과 입수를 배운 상급반 회원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보통 영법을 자유형-배영-평형-접영을 배운 후 입수하는 방법을 배운다. 사실상 레슨의 마지막 단계이다.)

그러는 사이에, 나도 초급 엄마에서 중급 경력자로 진화하고 있었다. 엄마라는 역할을 처음하면서, 이유식을 어떻게 끓여야 할지도 몰라 밤새 검색하고, 조리한 이유식을 잘 먹지 않아 좌절했던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시간은 가고, 아이는 자라나 지금은 나에게 보석 같은 존재이다. 같은 기간에 어떻게든 꾸역꾸역 다닌 수영강습 덕분에 세계 곳곳에서 진주같이 고운 경험도 많이 쌓아 가슴속에 알알이 새겼다. 딸아이도 7살 때부터 4년째 수영을 배워, 이번 여름에는 딸아이와 이탈리아 시칠리아섬 지중해 연안에서 그림같이 멋진 바닷가에서 느긋하게 휴가를 즐겼다. 체팔루라는 해변 얕은 절벽에서 사람들이 너나없이 바다로 뛰어들길래, 이제는 어느 유럽 사람 부러워할 것 없이 나도 자신 있게 퐁당 빠졌다. 동양인 모녀가 신나게 노니까 현지 사람들이 신기해했다. 그들의 시선마저 즐기며, 다이빙으로 바다 깊숙이 들어갔다가 스르르 올라오면서 바다가 몸을 착 감으며 안락해지는 기분을 만끽했다.

회사에서 하루하루 하기 싫고, 어렵지만 잘하고 싶은 일을 해나가고 있다. 언젠가 돌이켜보면 또 이 시간이 주옥같은 밑거름이 되겠거려니 생각한다. 지금의 수영처럼 언젠가는 일도 즐길 수 있게 되길 희망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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