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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낭송 Jun 14. 2024

일기는 문학이 될 수 있을까

일상은 문학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느 이탈리안 식당에 갔다. 사실 그 전날 대중적인 이틸리안 프랜차이즈를 갔는데, 파스타 면이 퉁퉁 불어 나왔다. 내가 먹고 싶었던 건, 크림소스 없이 노른자와 치즈로 범벅이 된 까르보나라였단 말이야. 속상했다. 전화로 푸념하니 다음 날 엄마와 이탈리안 식당을 갔다. 이탈리안 남편과 한국인 아내 분이 운영하시는 식당이었다. 라자냐와 까르보나라를 먹었다. 까르보나라를 먹으러 갔지만 라자냐가 더 맛이 좋았다. 본래 먹고 싶었던 것도 맛있었는데, 덤으로 시킨 메뉴는 두 배로 맛있었다. 아주 운이 좋았던 거지.


식사 후 간단한 레몬향 술을 작은 잔에 주었다. 디제스티프, 식후주였다. 술을 공짜로 주는 식당? 좋은 식당.



그 전날 사실 퀴즈나잇에 다녀왔다. 말 그대로 Quiz-night이다. 매주 술집에서 진행하는 이벤트인데, 나는 술이 아닌 제로 콜라를 시켰다. 흥미로운 문제들이 출시되었다.




가령, 라오스의 환율 단위는 무엇인가? 정답은 KIP.

아쉽다, 스리랑카라면 알 텐데. 라고 생각했는데, 옆 테이블에서도 스리랑카를 떠올린 모양이다. Rupee를 적었더라. 굳이 인도가 아닌 스리랑카를 언급한 이유는, 옆 테이블에 스리랑카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승리의 여신 이름은? 정답은 NIKE. 니케 또는 나이키로 불린다.

FOMO의 뜻은? Fear of Missing Out. (일종의 소외증후군 SynDrome of Alienation).

Phubbing의 뜻은? 함께 있는 사람을 무시하고, 본인 휴대폰만 바라보는 행위에 대한 신조어란다. (이건 슬프게도, 당연히 틀렸다. 신조어를 내가 알 리가 있나.)


우리 팀이 퀴즈 나잇에서 우승했다. 적은 돈이지만 우승상품 만 원을 벌었다. 입장료가 2,500원이었으니 본전은 찾은 셈이다. 신난다.



그 다다음 날은 쌀국수 BÚN BÒ SƯỜN을 먹었다. 매콤한 소고기 쌀국수인데, 안에 선지도 들고 야들야들한 갈비찜도 들었다. 분짜는 슬프게도 맛있지 않았다. 무려 12만 동(6천 원) 짜리였는데. 왜 12만 동 분짜는 길거리 5만 5 천동 분짜보다 맛이 없어지는 걸까. 가격대와 비례하지 않는 맛의 본질을 생각했다. 나는 왜 한국에서는 늘 맛과 가격대가 비례한다고 생각했을까.


배수아 작가가 번역한 막스 피카르트의 『인간과 말』을 읽었다. 막스 피카르트는 시 속에 상승과 추락이 모두 내재되어 있다고 말했다. 언어는 상승과 추락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지점이고, 시인은 동작의 간극이 유발하는 기운을 넘어 노래한다고. 그러므로 인간의 언어는 광휘 아니면 곤궁, 둘 중 하나라고 했다.


언어가 선험적이라는 책을 읽으며 그날 나는 우리의 취향이란 선험적인가 또는 경험주의적인가 고민했는데, 취향이 단순히 선험적이라면 경험하지 않았기에 취향이 될 수 없던 모든 경험들을 과연 취향이라 부를 수 있는지를 가늠했다. 헤매지 않으면 내가 그 골목을 사랑하는지 알 수 없으니.



러시아 식당에 가서 Chebureki를 먹었다. 체부르키? 체부륵? 나는 아직 외지의 언어를 어떻게 한국어로 완벽히 표기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배움이 미진한 탓이다. 크림 타타르족이라는 터키의 어느 크림 반도족이 만든 요리인 모양이다. 식당에서 제공한 소스는 보르쉬에서 느꼈던 향이 얼핏 났다. 아마 비트로 만든 소스인 거겠지.


보르쉬 하니 생각난 일화지만, 예전에 어느 우크라이나인이 내게 "사람들이 보르쉬를 러시아 음식으로 착각하지만, 보르쉬는 우크라이나 음식이다."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Chebureki 안에는 치즈나 토마토, 고기 등이 들어있다. 나는 치즈가 든 것을 선택했다. 크기가 무척 컸다. 맛있었다. 우리는 다양한 얘기를 나누었다. 불어의 salut과 영어의 salute은 동일한 origin을 가졌다고 예측되는데, 어째서 하나는 굉장히 informal한 인사가 되고 다른 하나는 완벽히 formal한 느낌을 가지는지 흥미로워했다. 또는 러시아 아래에 몽골이 있어, 바이칼 호수 근처에는 러시아 소수 민족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Pandan은 베트남에서 흔히 맛볼 수 있는 풀떼기다. 주로 디저트에서 많이 맛볼 수 있다. 베트남 사람들이 자주 먹는 디저트 재료지만, 한국 사람에게는 약간의 호불호가 갈린다. 지독히도 달고 묘한 향이 있기 때문이다. 문득 한국 사람들은 꽃향이 나는 디저트에 거부감이 있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인도의 라스굴라나 베트남의 pandan처럼. 디저트에서 나는 꽃향을 섬유유연제 향으로 느끼는 것 같다.


그 말을 하니, 함께 볼로냐식 파니니를 먹던 이모께서 말씀하셨다. 아무래도 한국에선 꽃향으로 맛을 내는 디저트가 크게 발달하지 않은 모양이라고. 생각해 보니 꽃향이 나는 디저트를 한국에선 많이 못 본 것 같기도 하고. 실제로 꽃을 넣은 화전이나 꽃차는 있는데, 진짜 본격적으로 꽃향과 단맛이 섞인 디저트는 잘 못 본 것 같다.


수영을 하며 내가 까뮈를 좋아하는 이유를 뇌까렸다. 까뮈의 어쩌면 모두가 아는 첫 문장에 대하여.


Aujourd'hui maman est morte. Ou peut-être hier, je ne sais pas.


이윽고 헤밍웨이는 지나치게 전쟁을 사랑해요. 반전소설을 쓰는데도 동시에 전쟁을 사랑한다는 느낌을 받아요, 라고 말했고. 함께 볼로냐 파니니를 먹은 후 수영을 하던 이모는 당신께서 젊은 날 헤밍웨이 소설을 사랑했노라고 말씀하셨다. 당신 남편과 헤밍웨이가 사랑했던 모히또를 마시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고.


노인과 바다에서 종종 la mar와 같은 스페인어가 등장하는 이유는 그가 남미에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걸 알았고, 그가 스페인 내전에도 참전한 경험이 있는지 궁금해했다. 그렇겠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쓴 걸 보면 말이야.


단테는 제 작품을 두고 희곡commedia라고 불렀는데, 그러므로 신곡의 지옥은 La divina commedia라는 원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으며, 볼테르의 사상을 추종하는 나는 적어도 무신론자들이 갇히는 림보로 갈 것이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그곳에서는 까뮈를 만날 수 있겠지, 운이 좋다면. 그렇다면 이집트를 과거로, 로마를 미래의 방향으로 묘사한 단테와 유럽인만이 지성을 지니고 있다는 에세이를 쓴 헤세는 어느 지옥에 갇혀 있을지 궁금해졌다.


사마리아 여인을 짓밟는 신이 신일 리 없으니. 그것을 인간은 악마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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