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 Chi Minh City Museum of Fine Art
* 해당 글은 2022. 5. 28. 작성된 글입니다. 현재 호치민 시립 미술관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5월 초, 베트남 친구의 대학교 졸업식에 초대를 받아 호치민에 잠시 다녀왔습니다. 졸업식에 참여한 후 저녁 파티에 참여하기 전까지 약 3시간가량 시간이 남아서, 홀로 호치민 시립 미술관을 관람했습니다. 보통은 주로 가족들이나 친구들끼리 많이 오는 모양이에요. 저처럼 홀로 관광하는 외국인은 많이 없었던 것 같아요.
호치민에는 지하철이 없기 때문에, 저는 그랩을 이용해서 미술관까지 갔습니다. 주로 호치민 사람들은 버스를 많이 이용하는데요, 웬만하면 그랩을 이용하시길 추천드립니다. 한국에 비해 택시 비용이 그렇게까지 비싸지 않아요. (물론 바가지 쓰이지 않는다는 조건이지만, 돈 단위만 확실하게 계산하실 수 있다면 그랩 어플 이용하셔서 편하게 다니세요.) 아무리 멀어도 5천 원 내외로 다닐 수 있고, 저는 숙소가 시내에서 좀 먼 편이라 7천 원 정도 나왔습니다. 제가 이용한 숙소는 랜드마크 81인데, 사실 숙소가 호치민 시내와 좀 한적하게 떨어져 있기 때문에 어딜 가든 그랩을 타고 가야 했어요.
그랩을 타고 미술관에 내리면, 크림색 커다란 저택 모양의 건물이 저를 반겨줍니다.
건물이 꽤 우아하지 않나요? 아시다시피 베트남은 프랑스 식민지였던 전적이 있어서, 가끔 프랑스 풍의 건물을 볼 수 있습니다. 호치민 시청도 마치 동화 속 나라에 온 것처럼 건물 외양이 아름답고, 또 달랏에 가면 거리 자체에서 프랑스 느낌이 전반적으로 나기도 해요.
건물이 참 예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꽤 많았습니다. 종종 생각하는 거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사진을 찍는 걸 정말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이날 이곳에 오기 전에 졸업식 행사를 참여했는데, 사진을 거의 한 시간 내리 찍은 것 같아요.
당시 그곳에 계셨던 한 미국계 사진작가분께서 허락을 구하고 제 사진을 촬영해 가셨던 에피소드도 있고, 아무튼 가뜩이나 아침에 이미 사진을 어마하게 찍고 나왔는데, 이곳에서도 열심히 촬영하고 계신 분들을 보니까 정말 베트남 사람들은 사진 촬영을 좋아하는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가격은 인당 30, 000동. 한화로 바꾸면 1, 500원가량으로 저렴한 편입니다. 오후 다섯시 무렵에 닫으니 빠르게 움직이셔야 해요! 내부에 에어컨이 없어서 자칫하면 더울 수가 있으니 한낮에 가는 건 그다지 추천드리지는 않는데요, 오후 3시쯤 가면 그나마 살만해요.
건물 맞은편에 티켓 파는 곳이 있어요. 돈을 내면 동그란 분홍색 스티커 하나를 주셔요. 저는 손등에 붙인 채로 돌아다녔어요.
아, 호치민 시립 미술관은 실질적으로 현대 미술관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식민지 이전 시대의 작품보다는 근대~현대 시기의 미술 작품이 주로 담겨 있어요.
베트남 전쟁으로부터 현재의 베트남이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건 다들 아실 거예요. 하지만 호치민 시립 미술관을 가본다면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베트남 전쟁에 대해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어요.
베트남 전쟁의 시작은 프랑스-베트남 사이에 벌어진 베트남 제1 전쟁입니다. 일종의 독립 전쟁인데, 발발 시기를 보면 꽤 의아합니다. 한국에서 일어난 독립 전쟁은 대개 1945년 이전인데, 베트남의 독립 전쟁은 1946년 11월 하이퐁에서 발발되었거든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지난 이후에도 프랑스가 베트남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게릴라전에서 치열하게 버틴 베트남군은 끝내 승리하였고, 결국 이를 계기로 프랑스군은 철수하였습니다.
1954년 제네바 회담을 계기로 베트남은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으로 나뉩니다. 북베트남은 공산주의의 길로, 남베트남은 미국의 지지를 받아 자본주의 정부를 세웠습니다. 다만 남베트남의 대통령인 응오딘지엠은 독재자가 되길 바랐고, 남베트남 정부는 부패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냉전의 시대, 미국은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해 북베트남의 공산주의화를 막는 데 사력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1964년 8월, 그 유명한 통킹 만(Gulf of Tonkin) 사건을 계기로 베트남 제2 전쟁, 미국-베트남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베트남 전쟁이라고 하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이 전쟁을 미국 전쟁(American War)이라고 부릅니다. 6.25 전쟁을 외국에서는 한국 전쟁이라고 부르듯이요.
미술을 이해하기 위해 역사를 반드시 공부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베트남 미술은 역사를 공부하지 않고서는 관람하기가 조금 어렵습니다. 베트남 미술은 대개 베트남 전쟁 시절의 인민들의 아픔이나 고통, 공산주의 선전, 인민 우상화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전쟁에 대해 알면 그만큼 그들의 미술을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한국 전쟁이라는 비슷한 분단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국 사람의 시점에서도 꽤 생소한 일입니다. 우리나라 예술의 80%가 6.25 전쟁에 대해서만 다루고 있다고 한 번 가정해 보세요. 정말 신기한 기분이 들지 않나요?
처음 미술관에 들어가면 지금은 가동을 멈췄으나 꽤 오래전에는 사용되었을 것이 분명한 엘리베이터와 마주칠 수 있습니다. 이 미술관의 마스코트인 것 같았어요. 호치민에서 가장 최초로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곳이 바로 호치민 시립 미술관이라고 해요. 타거나 움직일 수는 없고, 다들 포토존처럼 사진을 찍고 들어가더라고요. 들어가자마자 1층에서 정면으로 바로 보여서 조금 당황했습니다..
2층 계단으로 올라가면 본격적으로 전시를 볼 수 있어요. 물론 2층 계단으로 가는 길에도 많은 분들이 사진을 찍고 계셨습니다. 제가 간 날이 졸업식 시즌이어서 다들 미술관에 들리셨던 걸까요? 꽤 복작복작했어요.
그중 저에게 꽤 인상 깊었던 몇 가지 작품들을 소개할게요.
작품 이름은 '국경(The Border, biên giới)', 작가 이름이 Nguyễn Phú Cường 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가장 위에 있는 굵은 글씨가 작가 이름, 그 밑에 작품 이름과 재료가 적혀 있어요. 사실 Nguyễn이 정확히 뭔지 아직도 모르지만, 베트남 친구들 중 흔히들 Nguyễn (녕)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어요. 우리나라로 치면 Lee 같은 느낌이라고 베트남 친구가 설명해 줬는데요. 이름이나 성으로 흔히 쓰이는 단어인 것 같아요.
군인으로 추정되는 인간이 무릎을 꿇은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한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아마도 방패처럼 보이네요. 국경을 지키는 군인의 모습을 도자기로 만든 작품으로 보입니다. 2층 메인 홀에 가면 단번에 처음으로 볼 수 있어요. 대강 전반적으로 이 미술관에서 이러한 주제를 많이 볼 수 있겠다, 감이 잡히지 않나요? 베트남에서 군인은 굉장히 명예로운 직업입니다. 베트남 지역명은 대부분 역사 속에서 활동한 군인이나 공산주의 활동가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어요.
이 작품은 '평화(peace, hòa bình)'라는 제목으로, Nancy Spero 라는 미국인 작가의 페이퍼 아트입니다. 이처럼 꼭 반드시 베트남 작가의 작품만 있는 것은 아니고, 베트남 전쟁에 대해 다룬 해외 작가의 작품도 종종 전시하고 있습니다.
'어린 소녀의 초상(Portrait of a young girl, chân dung bé gái)'라는 작품입니다. 작가의 이름은 'Lê Vượng'이에요. 의자에 앉아 정면을 보고 있는 어린 베트남 여자아이의 모습을 담은 오일 캔버스 그림이네요. 이런 작품은 이 여자아이는 무엇을 보고 있을까.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상상을 하게 만들어요. 1993년, 꽤 최근에 그려진 작품입니다. 이 그림처럼 베트남 사람들의 일상이나 시점이 담긴 그림도 볼 수 있습니다.
열심히 보다 보면 이렇게 한 번 쉬는 구간이 나타나 줍니다. 다들 열심히 또 이 구역에서 사진을 찍고 계셔요 ㅎㅎ 색깔이 쨍하니 배경이 무척 예뻐요. 저도 다른 친구와 함께 왔으면 더욱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정작 친구와 함께 왔다면 이렇게 유유자적하게 감상하지는 못했을 테지만요. 그래도 저 혼자 왔으니 셀카밖에 찍지 못하고, 셀카를 찍자니 배경은 거의 묻혀서 아쉽더라고요. 건물이 예쁘니 사진을 찍기 참 즐거운 곳이에요.
미국의 공화당 대통령인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 대통령이 미군 철수를 시작하면서 전쟁에도 끝이 보였습니다. 특히 베트남 전쟁의 시작점이었던 통킹만 사건이 미국 국방부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1973년 파리에서 평화 협정이 이루어졌습니다. 미국이 베트남에서 거의 손을 놓자 북베트남이 점차 남베트남을 점령하기 시작했고, 1975년 4월 30일 남베트남이 항복을 선언하면서 종전이 되었습니다.
4월 30일은 베트남의 종전 기념일입니다. 이 시기에 맞추어 베트남에 방문하시면, 연휴로 떠들썩한 베트남을 보실 수 있습니다. 호치민 광장에 종전 기념일 관련 기념물이 세워져 있어요. 광장 근처에서 별미로 드셔보면 좋을 음료수가 '쩨 브어이 (Che buổi)' 인데요. 식감이 콧물 느낌이라 처음 먹었을 땐 차마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을 느끼게 하지만, 녹두가 달달해서 중독성이 있습니다. 우유에 설탕과 녹두를 넣어 만든 음료수예요. 광장에 벤치가 꽤 많아서, 음료수를 먹으면서 경치 구경하면 딱 좋을 것 같아요.
호치민 광장은 미술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그랩 타고 움직이거나 도보로 20분 정도 걸으면 닿는 거리에 있어요. 미술관에서 나와 벤탄 시장으로 많이들 가시던데, 벤탄 시장이 바로 호치민 광장과 미술관 가는 길목에 있어요. 낮에는 너무 더워서 베트남 사람들도 주로 저녁이나 밤 무렵에 광장에 나와서 놉니다.
각설하고 다시 미술관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면, 베트남의 그림은 전쟁에서 맞서 싸운 사람들뿐 아니라 경제 성장을 위해 노동을 한 인민들을 신성화하는 장면이 꽤 많습니다. 전쟁 속에서 싸운 위대한 어머니들, 처참한 전쟁의 한 장면, 비극적인 슬픔과 경제 성장을 위해 부지런히 움직여 나라를 만든 노동자들에 대한 그림을 많이 보실 수 있어요.
'Bến Đá의 풍경(Landscape of Ben Da, Phong Cảnh Bên Đá)'이라는 작품입니다. Bến Đá는 베트남 남부에 있는 도시의 이름입니다. 캄보디아와 베트남 국경의 부근에 있는 도시로, 도시 자체에 강을 끼고 있습니다. 해당 그림도 강을 가운데 두고 살아가는 1970년대 베트남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보이네요.
이 그림은 1972년에 그려졌으니 캄보디아-베트남 전쟁과는 별 연관이 없지만, 1976년 베트남은 미국과의 전쟁이 끝난 이후 캄보디아와도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비교적 작은 전쟁을 치렀습니다. 작가 이름은 'Huyền Văn mười', 오일 캔버스 작품입니다.
3층으로 올라가시면 대부분 한 작가당 하나의 전시실을 배치하여 베트남에서 유명한 작가들을 소개하도록 공간이 조성되어 있어요. 또 온도에 각별히 주의해서 관람을 해야 하는 전시실에는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전시실에 들어서면 꽤 시원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복도를 쭉 걷다 보면 종종 닫힌 방문이 보이는데, 이 방 안에선 어떤 전시가 열렸을까 상상해 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었어요.
대부분의 작품 설명에 영어가 함께 적혀 있긴 하지만, 간혹가다 베트남어로만 해설이 서술되어 있는 작품이 있어요. 특히 베트남 예술가의 생전 친필 편지 같은 경우 영어로 된 설명이 거의 없기 때문에 베트남어를 할 줄 모르면 의미는 전혀 파악할 수 없고 "오… 이 작가 글씨체가 예쁘네…" 정도의 느낌만 보고 오는 수밖에 없어요. 이 부분은 조금 아쉬웠어요.
'Cà Mau 게릴라 (Ca Mau guerrillas, du kích áp mối Cà Mau)'라는 작품이에요. 1973년에 그려진 전쟁화로, 옻칠 판화입니다. Cà Mau 역시 베트남 남부에 있는 지방의 이름인데, 호치민보다 훨씬 아래에 있어요.
베트콩들이 게릴라 작전을 펼치고 있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보입니다. 숲속 한가운데 민간인처럼 보이는 군인들이 총을 진 채로 유유하게 배를 타고 있는 모습이 보이네요. 배를 탄 이들은 검은 강 한가운데에서 고요히 작전을 수행하는 반면, 정작 그 옆에 살고 있는 민가의 사람들은 일상을 보내고 있는 장면이 시야를 사로잡습니다.
작가 이름은 'Thái Hà'인데요, 옻칠 판화와 같은 전통 기법을 이용하여 베트남 전쟁의 장면을 담는 것이 꽤나 신선해요. 한국의 옻칠 판화와 베트남의 옻칠 판화는 각자 다른 기법과 다른 옻나무를 사용합니다. 베트남의 옻칠 판화는 동남아시아에 주로 분포하는 검양옻나무를 이용한 옻칠 공예입니다.
그림이 꽤 익숙하지요? 위에서 보았던 옻칠 판화 그림을 수채화로 그린 그림입니다. 'Cà Mau 게릴라' 작품과 동일한 작가의 그림이며, 작품명은 '최전방을 향해 전진하기(Moving to the front line, Tiến quần ra tiền tuyến)' 정도로 해석하면 될 듯 합니다.
옻칠 판화와 유사해 보이지만 곳곳에 사소하게 다른 부분이 눈에 띕니다. 주위에서 일상을 보내는 민가 사람들도 거의 보이지 않고, 판화 그림이 훨씬 섬세하다면 이 그림은 훨씬 거침없이 붓칠을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해당 그림이 1966년에 그려졌고, 옻칠 판화 그림이 1973년에 그려졌으니 위 판화 그림의 초안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네요. 수채화도, 판화도 각각의 매력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흥미로운 그림들이 정말로 많았는데요. 미술 관람은 직접 미술관에서 볼 때와 인터넷 구석에서 볼 때 와닿는 의미가 다르니 호치민에 들린다면 꼭 미술관에서 직접 다양한 그림들을 관람하길 추천드려요.
3층에 있는 전시관까지 모두 돌고 나서 1층으로 다시 내려오면, 전시관에 있던 미술품을 이용해 만든 기념품이나 소형 미술품 등을 파는 기념품점이 보입니다. 기념품을 사갈까 잠시나마 고민을 했는데요, 짐이 늘어나는 게 싫어서 아무것도 사지 않았습니다. 기념품 숍에 기념품 뿐만 아니라 잡지라던가 흥미로운 물건들을 배치해 두었으니 한 번 구경해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해요.
본관을 빠져나오면 바로 옆에 별관이 있습니다. 별관 바로 앞에 'Trần thảo hiền'이라는 베트남 여성 화가의 전시회 홍보지가 붙어 있었는데요, 아쉽게도 당시 전시회가 준비 중이었던 상태라 저는 들어가지 못했어요. 아마 제가 떠난 이후에 전시회가 열린 모양이에요. 시기가 맞았다면 구경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아요.
사실 커다란 기대를 안고 간 여행은 아니었는데, 개인적으로 미술관을 좋아했던 덕분에 정작 꽤 재미있게 여행을 했습니다. 미술관 여행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충분히 흥미를 가질 법한 미술관이라고 생각해요. 시립 미술관 맞은편에 아트 갤러리처럼 보이는 장소가 있었는데, 어떤 장소인지 몰라 차마 방문하지 못했는데요. 만약 다음에 호치민에 다시 방문한다면 사진 갤러리를 방문하고 싶어요. 참, 그리고 시립 미술관 근처에 뚜레쥬르가 있는데 한국 뚜레쥬르보다 맛있습니다 (. ❛ ᴗ ❛.) 한 번 꼭 들려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