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원 Sep 26. 2024

영알못 할머니의 미국 두 달 살기

4.‘트레이더조’ 가방이 뭐길래

미국의 흔한 빅사이즈 트조가방

지난 9월 19일 미국 여성들 사이에서 일대 소동이 있었다. ‘트레이더조’라는 마트에서 판매하는 시장가방(?)을 구입하기 위해 일대의 소비자들이 길게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진 것이다.


공교롭게도 트레이더조 미니토트백이 판매되기 하루 전 아들이 요즘 한국이나 미국에서 트레이더조 토트백을 들고 다니는 것이 유행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가쉽(풍문)처럼 했다.  


2.99달러짜리 면가방이 얼마나 예쁘길래 그렇게 인기가 있다는 건지 인터넷을 찾아보니 실망스럽게도 캔버스천으로 만든 흔하디 에코백이었다.


 크기도 작아서 장바구니로 쓰기에 적당해 보이지도 않는 가방이 미국 여성들은 물론 한국의 젊은 강남 아줌마들 사이에도 트렌드가 되어 쇼핑 갈 때 루이뷔통 백 대신 트조(트레이더조) 토트백을 들고 간다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라 웃어넘겼다.

집에서 가까운 트레이더조

“집에 굴러다니는 게 에코백, 시장가방인데. 트레이더조 가방이라고 특별히 다르지도 않구먼. 값이 싸도 그렇지. 나는 줘도 안 들것  같구먼. 요즘 유행은 참 알 수가 없어요.”


그리고 다음날. 바로 트조 가방이 출시된 19일이다. 운동도 할 겸 납작 복숭아를 좋아하는 손주를 주겠다고 집에서 15분 거리의 트레이더조를 걸어서 간 남편에게 급톡이 왔다.


‘여기 트레이더조인데. 뭔 일이 있나 보다. 여자들이 줄을 서 있어. 나는 그냥 납작 복숭아랑 주스만 사가지고 나왔는데 지금도 사람들이 계속 줄을 서고 주차장으로 차도  많이 들어오고. 오늘 무슨 한정세일이라도 하는 거니? 여기 분위기 장난 아니야.”


남편의 톡을 보고 며느리가 급하게 시애틀 맘카페를 들어가 보니 온통 트레이더조에 토트백을 사러 간다는 글뿐이란다. 오후 5시부터 판매가 된다는데 누구는 시간이 없어서 엄마를 대신 보낸다고 하고 누구는 친구에게 부탁했다고 하고 누구는 자기 동네는 줄이 너무 길어서 노인들이 많이 사는 다른 지역으로 간다는 등 트레이더조 가방을 사러 간다는 글이 쏟아져 올라왔다.

미국 언론도 트조가방 현상을 보도한다

“이거 장난이 아닌데요. 아버님께 줄 서서 사 오시라고 하면 싫어하시겠죠?”


“어딜 가든 기다리는 거 진짜 싫어하시는 양반이잖니. 그거 뭐라고 줄 서서 사 오시겠니.”


말을 마치기도 전에 남편이 들어왔다. 평소와 달리 트레이더조에 사람이 몰려서 얼른 장보기를 마치고 왔단다. 며느리가 트레이더조 가방이 출시됐고 그걸 사러 사람들이 몰려온 거라 말했더니 별일이 다 있다는 듯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짓는다.  


“한 30명 정도 줄을 서 있는데 뭘 사는 줄인 줄 알아야 말이지. 난 뭐 고기라도 싸게 파는 줄 알았지. 그런데 장가방이라고? 어쩐지 장은 안 보고 계산대에 줄을 서 있더라니. 나도  비닐 쇼핑봉지를 사려다 튼튼해 보이길래 트레이더조 가방을 사서 담아왔는데 이건 아니고 다른 건가 보네. 이 가방은 쌓여있던데.”

할로윈용 호박 판매가 한창인 트레이더조

“네 아버님, 그건 큰 거고요. 줄 선 사람들은 작은 거 사려고 줄을 선거예요.”


저녁에 아들이 퇴근해서 놀라운 이야기를 한다. 5시에 판매했던 토트백이 어느새 이베이라는 제판매사이트에서 100달러에 팔리고 있다는 것이다. 제일 놀란 건 남편이다.

“뭐라고? 그게 그렇게 비싸게 다시 팔린다고? 진즉에 알았더라면 줄을 서서라도 사 올걸 그랬지. 100불에 팔리는 물건인 줄 알았으면 당연히 사 왔겠지. 그땐 30명 밖에 없었는데….”


남편은 2.99 달러짜리 가방이 100불에 팔리고 있다는 말에 큰 충격을 받았는지 자못 후회하는 분위기다. 트레이더조 토트백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던 나도 슬그머니 욕심이 난다. 군중심리라는 게 이런 건가. 남이 장에 가면 나도 장에 간다고 필요하지 않아도 막 사고 싶어지는 이런 심리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집 근처 트레이더조

지난 3월에 판매하고 언제 다시 판매할지 예정도 모르다가 9월 19일에 다시 판매가 된 거라니 다시 판매하려면 적어도 6개월은 기다려야 하겠지. 역시 트렌트를 따라 잡기에 나는 너무 늙은 것인가.


“어머니 다음엔 제가 줄을 서서 구입할게요. 꼭 성공해서 어머니도 하나 드릴게요. 우리도 트민녀가 되야죠.”


“그래그래 네가 최고다. 하지만 그때 되면 유행이 또 바뀌지 않겠니? 집에 에코백이 서른 개도 넘게 있는데 그때 가서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자꾸나.”

작가의 이전글 영알못 할머니의 미국 두 달 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