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오니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매일매일 새로운 경험의 연속이다. 미국에 온 다음 날 공립 킨더가르텐(유치원)에 가기 시작한 손주도 아이를 킨더가르텐에 보내기 시작한 아들과 며느리도 매일매일이 새롭고 긴장되는 날들이다.
손주의 도시락
손주가 다니는 미국 유치원은 한국과 달리 점심 도시락을 싸가지고 간다. 등원시간이 8시라 간단히라도 아침을 먹이고 도시락을 싸려면 6시 반에는 일어나야 한다. 한국에서 직장맘이었던 며느리는 미국에 와서 전업맘이 되었고 전업맘 모드로 아이들의 모든 것을 열심히 챙기려고 한다. 하지만 도시락은 쉽지 않은 듯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나 역시 도시락은 오랜만이다. 한국은 이미 오래전에 급식이 일상화되어 소풍날이 아니라면 도시락을 싸가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고심 고심해서 짜낸 첫날 도시락은 햄과 계란을 넣고 딸기잼을 바른 샌드위치와 포도 몇 알 그리고 간식용 쿠키. 식빵 하나를 넷으로 잘라 네 조각을 싸 주었는데 세 조각을 먹었으니 그만하면 성공.
두 번째 도시락은 미니 주먹밥. 밥에 참기름과 김부스러기, 깨소금을 넣어서 잘 뭉쳐 보냈는데 예상외로 두세 알 먹고 모두 남겨왔다. 이유를 물어보니 자기에 반이 식당에 늦게 도착해서 시간이 없었단다. 천천히 식사하는 손주의 식사 습관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아침에 등원하면 간식을 먼저 먹고 수업에 들어간다
유부초밥과 쿠키, 머핀과 요거트, 꼬마김밥과 쥬스, 오므라이스와 과일 등등 화려한 인터넷을 뒤지고 옛 기억을 떠올려 최대한 예쁘고 맛있는 도시락을 싸보려고 애를 썼지만 정작 선생님은 점심을 먹는 것에 크게 신경 쓰지는 않는단다.
“한국 어린이집에서는 선생님이 싫어도 다 먹을고 해서 억지로 먹을 때도 있었는데 미국 선생님은 그러지 않아. 그래서 좋아.”
학교분위기가 그래서인지 다른 아이들도 점심 먹기는 대충 하고 운동장으로 뛰어 나가서 놀기 바쁘단다. 아침도 대충 먹고 도시락도 별로인데 어떻게 미국 아이들은 저렇게 키가 크고 발육이 좋은 건지 궁금할 다름이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면서 며느리와 나의 모든 신경은 도시락에 집중됐었다. 영어를 몰라 말도 통하지 않는 교실에서 친구도 없이 거의 혼자 밥을 먹을 텐데 밥마저 맛이 없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녀석이 좋아하는 것 위주로 도시락 싸기에 온 힘을 기울였지만 정작 문제는 다른 데서 터졌다. 먹는 것이 아닌 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자똥자닦 훈련 중
“서안이가 차에서 의자에 앉지를 않는 거예요. 벨트도 매고 앉아야 하는데 서 있으려고 해서 물어보니 학교에서 응가를 했는데 휴지로 뒤처리를 하지 못해서 팬티에 응가가 묻을 가봐 의자에 앉지 못하겠다는 거예요.”
아항~~
며느리가 아이의 상황을 보고 혹시 뭔가 실수를 한건 아닌지 당황해서 선생님에게 메일을 보냈더니 다음과 같은 답변이 왔다.
“킨더가르텐이나 더 어린아이들이 다니는 프리스쿨에서도 선생님이 배변 뒤처리를 도와주지 않아요. 에이든(손주의 미국 이름)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지 않기 위해 남자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고 그 도움도 바지를 올려주는 것이 전부입니다. 우리 유치원은 아이들이 스스로 하게 도와주고 있어요. 어머니도 스스로 할 수 있게 지도해 주시면 에이든의 자신감이 더욱 올라갈 거예요. 정 도움이 필요한 경우 보건실 선생님께 부탁드릴 수 있지만 에이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하원해서 돌아온 손주와 며느리는 당장 응가 뒤처리 교육에 돌입했다.
“자~ 이렇게 휴지를 세 번 접어서 엉덩이를 닦는 거야. 한 번 닦고 접어서 또 한 번 닦아. 그러면 깨끗해. 이제 휴지를 변기에 버리고 물을 내리면 끝나는 거야. 응가야 안녕~”
화장실 사용 프로토콜 안내및 동의서
아직까지는 한 번도 스스로 응가를 닦아본 적이 없는 손주이지만 단 한 번의 교육으로 스스로 뒤처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3살 된 동생도 오빠가 하는 것을 보고 금방 따라 했고 스스로 뒤처리를 하고 자랑한다.
일주일 3살 된 손녀가 지원한 프리스쿨(오빠가 다니는 킨더가튼과 같은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자리가 생겨서 등원해도 좋다는 메일이다. 프리스쿨 입학 첫날 몇 가지 안내 서류를 받았다. 갈아입을 옷가지와 양말 그리고 낮잠이불을 준비해 달라는 안내와 함께 학교에서 찍은 사진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부모님 동의서, bathroom protocol(화장실 사용)에 대한 안내와 동의가 그것이다.
스스로 배변 뒤처리가 어려울 경우 직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데 그때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사항들에 대한 안내와 동의가 대단히 세밀해서 놀랐다. 3살 유아에게도 이런 지도를 하는 것을 보니 5살에 입학하는 킨더가튼 아이들은 이미 응가 뒤처리 훈련이 끝난 상태가 분명하다.
이젠 혼자서도 잘 해요
“할머니 나도 응가 닦을 수 있어요. 나도 학교 갈 수 있어요.”
한국에서는 한 번도 스스로 응가 뒤처리를 해본 적 없고 어린이집에서도 스스로 하도록 지도해 달라는 안내를 받은 적이 없다. 두세 살 때 어린이집에서 배변 훈련을 시작했는데 그때도 기저귀를 떼고 변기에 쉬를 하거나 응가를 하도록 지도하는 것이 전부였다.
손주들을 하원시키러 가면 선생님이 “오늘은 스스로 변기에 쉬했어요. 오늘은 스스로 변기에 응가했어요. 칭찬해 주세요.”라고 말씀해 주셨다. 아이들의 응가를 닦아 주시는 어린이집 선생님께 늘 미안했지만 집에서 스스로 닦을 수 있도록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두둥~ 미국에 오니 3살 손녀도 5살 손자도 스스로 똥을 닦는 아이가 된 것이다.
이게 가능할 줄 알았으면 한국에서도 가르칠 것을. 공연히 선생님께 미안한 생각마져든다.
미국 선생님의 답신을 보면 미국 교육에서 스스로 똥을 닦는 것은 선생님께 미안한 차원을 넘어선다. 아이의 자존감과 성적존중, 자신감을 위한 교육의 한 가지인 것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 스스로를 위한 교육이라는 것이 남다르게 와닿는다.
손주들이 스스로 똥을 닦을 수 있게 된 것처럼 다른 것도 스스로 잘하는 아이로 자라겠지. 자똥자닦(자기 똥은 자기가 닦기) 파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