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와서 생활하다 보니 여러 가지 한국과 다른 점이 있는데 그중 제일 다른 것이 쓰레기처리의 문제다. 미국에 와 보니 한국인들이 얼마나 쓰레기 분리수거에 잘 훈련되어 있는지 실감할 수 있다.
미국에 온 지 사흘 만에 이삿짐이 도착하고 미국에서 구입한 가구며 이런저런 살림살이들이 들어오면서 당연히 쓰레기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밥을 해 먹으니 음식물 쓰레기도 늘어갔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했던 것처럼 착실하게 분리를 했다. 박스류는 테이프를 뜯고 잘 접어서 차곡차곡 모으고 물이나 음료 페트병은 잘 씻어서 라벨을 제거한 후 모았다. 투명비닐은 비닐대로 우유팩은 우유팩대로, 캔과 유리병도 따로, 스티로폼도 따로따로, 음식물 쓰레기는 물기를 제거한 후 비닐에 담아서. 계란 껍질과 닭뼈, 양파껍질, 마늘 껍질, 봉숭아 씨는 일반쓰레기로 누가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너무나 자동적으로 분리수거의 원칙을 지켜서 여러 박스에 나누어 담아 정갈하게 분류를 해 놓았다.
그런데 퇴근하고 돌아온 아들이 미국은 한국과 다르다며 새로운 분리수거 법을 알려준다.
박스도 가지런히 정리해서 분리했다
미국은 재활용(recycling), 퇴비(compost), 쓰레기(garbage) 이렇게 3개의 통 밖에 없다. 우리 집 같은 경우는 매주 목요일에 수거를 하러 오는데 수거하는 날이 아니라면 대부분 집 밖에 쓰레기통을 내어 놓지 않고 차고 안에 넣어 두거나 보이지 않는 곳에 둔다. 미국에서는 날씨가 좋아도 마당에 빨래를 널지 않는다. 미관상 보기 좋지 않기 때문이란다. 쓰레기통을 보이는 곳에 두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이지 싶다.
처음에는 쓰레기를 이해하는 것부터 힘들었다. 퇴비에 포함되는 것은 잔디를 깎은 뒤 나오는 잔해와 나뭇가지등과 썩는 음식물 쓰레기이며 여기에는 피자박스와 같은 종이류도 포함된다. 피자를 시켜 먹고 남은 피자와 박스를 그대로 버려도 상관없다니 음식물 쓰레기도 세밀하게 분류해서 버리던 우리 가족으로서는 용납이 안 되는 일이다.
따로 담아 놓지만 결국엔 한통에 들어 갈 신세다
들어보니 어떤 가정에서는 음식물쓰레기통을 아예 만들지 않는다고 한다. 정원이 없다면 음식물쓰레기들은 일반쓰레기에 넣어 버리거나 디스포저로 갈아버리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미국 가정에 대부분 달려있다는 디스포저가 영 마음에 불편함을 준다. 기계 고장을 유발하는 생선이나 고기 뼈, 복숭아씨나 파인애플 껍질처럼 아주 딱딱한 종류만 아니라면 물과 함께 갈아서 흘려보내면 된다는데 그렇게 흘러간 음식물 잔해들이 강과 바다를 오염시키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인구가 이렇게 많은 미국의 모든 가정에서 이렇게 디스포저로 음식을 갈아 흘려버리는데 작은 나라 한국에서 과일껍질이며 계란껍질이며 세밀하게 분리해서 버린 들 지구의 환경을 지키는데 무슨 득이 될까 싶기도 하다.
아들집의 경우 35갤런(1갤런=3.78리터) 짜리 용기를 쓰고 있는데 업체에서 매주 목요일에 수거를 하며 용기를 다 채우지 못해도 비용은 일정하게 분기당 92.55 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한 달 쓰레기 처리 비용이 4만 원가량 된다. 사용해 보니 일주일에 35갤런 쓰레기 통을 채우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쓰레기통이 크다 보니 쓰레기를 줄이려는 노력도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빈 쓰레기통을 수거하게 하고 돈을 주느니 뭐라도 채워서 버리는 게 이익일 것 같은 생각도 든다. 환경도 아끼지 못할 거 마음대로 버리면 그만이지? 이쯤 되면 의식의 혼란이 온다.
실제로 미국 보도를 보면 재활용으로 버려진 쓰레기의 재활용률이 15% 미만이라고 한다. 거의 대부분이 버려진다는 것이다. 재활용에 사용되는 인건비가 재활용비용을 훨씬 웃돌다 보니 넓은 땅에 그대로 매립하는 것이 경제적이라는 말도 있다. 그러고 보면 한국처럼 철저하게 분리수거를 지키는 나라도 드물지 않나 싶다.
일주일 쓰레기 수거용으로는 너무 큰 수거통
일회용품 사용도 엄청나다. YMCA 같은 공공 수영장에 가보면 샤워실에 달려 있는 샴푸를 마구 쓴다. 어떤 운동을 하든 개인 수건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고 핸드타월이라는 종이 수건을 몇 장씩 뜯어서 땀도 닦고 물도 닦는다. 마트에 가면 시식대에서 커다란 플라스틱 스푼을 마구 꽂아주고 야채과일 코너에 비닐도 편하게 쓴다. 플라스틱과 일회용 용기의 천국이고 이 모든 것들은 거의 분리되지 않고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한국에서 나는 수박 구입을 가장 힘들어했다. 남편이나 손주들이 먹고 싶어 해도 쓰레기 때문에 몇 번을 고심해서 구입하곤 했다. 수박을 먹고 나면 수박껍질을 엄지손톱 마디 크기로 잘라 음식물 봉지에 넣는데 웬만한 수박은 반통 먹고 껍질만 버려도 2리터 3리터 음쓰봉지가 가득 찬다.
수박껍질은 부패도 빠르고 냄새도 심해서 바로 버려야 하니 보통 신경 쓰이는 쓰레기가 아니다. 일반쓰레기도 마찬가지로 최대한 분리를 해서 쓰레기 양을 줄이고 혹시라도 쓰레기가 많아 봉지가 찢어지는 날이면 투명테이프로 보수를 해서 버리기도 했다. 쓰레기 봉지를 얼마나 아까워하는지 그 알뜰함에 눈물이 날 지경이다.
사실 그게 어디 쓰레기봉지의 가격 때문만이랴. 내가 버린 쓰레기가 환경을 오염시키고 지구를 아프게 하며 훗날 우리 손주들과 그 자손들이 사용해야 할 수많은 자원을 고갈시키는 일이기에 더욱 손 떨리게 쓰레기봉지를 아까워하지 않았겠는가.
쓰레기를 분리해서 버리는 미국 사람은 별로 없다
그렇게 신경 쓰던 나인데 미국 사람들은 이렇게 마구 버린다고? 그동안 나는 뭐 한 거야? 은근 화가 난다. 내가 언제부터 환경운동가였던가. 난 그저 한국의 아주 평범한 할머니일 뿐인데 남의 나라 미국에 와서 갑자기 환경을 걱정하게 되었다. 하지 않아도 된다는 쓰레기 분리를 나도 모르게 하는 나 자신이 문득 어리석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분류해 봤자 어차피 3개의 쓰레기통 중 하나로 들어가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고 미국에서는 미국법을 따르고 한국에서는 한국법을 따르는 게 맞겠지.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수박껍질을 조사서 버릴지언정 여기서는 마구 버리는 걸 참기로 했다. 그래도 내 손으로 음쓰와 일쓰를 섞어 버리는 짓은 할 수 없어서 쓰레기 분리와 버리기는 며느리에게 맡기기로 했다. 불편해하면서 마음 쓰기보다는 차라리 안 보는 게 낫기 때문이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편리하고 친절하고 뭐 다 좋은 줄로만 알았는데 은근 마음불편하게 하는 것들이 많다. 내사마 차라리 안 볼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