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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Aug 26. 2024

할모니 수영 무시하지 마

수력 54년, 한국의 나이에드를 꿈꾸다?

내가 처음 수영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1972년경. 초등학교 4학년 때쯤이다. 3살 연하 남동생이 있는데 귀한 종손이 몸이 약한 것을 보다 못한 아버지가 운동이라도 시키면 밥을 잘 먹지 않을까 하여 누나를 딸려 수영장에 보낸 것이 시작이었다. 정작 남동생은 수영도 늘지 않고 밥도 잘 먹지 않아서 부모님께 실망을 안겨 드렸지만 동생을 데리고 다니라는 미션을 받은 나는 수영이 쑥쑥 늘어서 자체 수영대회에서 메달도 따고 그랬던 것 같다.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 제주도 해녀체험

개그맨 노홍철이 방송에서 YMCA 어린이 체능단 출신이라며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보았다. 노홍철이 태어나기 전부터 동생과 나는 어린이 체능단이었으니 거의 조상급인 샘인가. ㅎㅎ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더 이상 YMCA 다니지 않았으니 수영을 배운 건 3~4년 정도인 것 같다.


당시 YMCA 수영장은 수영 영웅이던 조오련 선수의 훈련 모습도 볼 수 있었고 훗날 아시아의 인어로 큰 주목을 받게 될 어린 최윤희, 최윤정 자매도 볼 수 있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수영 거장들과 같은 물에서 놀아 봤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영광인가


린 시절 배운 수영은 잊어버려지지 않는다고 한다. 자전거도 마찬가지라는데 우리 몸에는 머슬메모리라는 게 있어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시 해도 근육이 기억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졸업 이후 수영을 할 일이 별로 없었다.


여름방학이나 휴가 때 잠깐 수영장에서 자유형 정도를 폼나게 해 보는 것이 고작이었고 결혼 후에는 아이들을 수영장에 보내는 것이 먼저였다. 그렇게 오랜 시간 수영장에 다닐 일이 없다가 분당으로 이사를 하면서 다시 수영장에 등록을 했다. 마흔 정도에 다시 시작했으니 거의 30년 만에 수영장으로 돌아온 것이다.

우리마을 수영대회에서 받은 금에달

그동안 운동을 쉬지는 않았지만 모두 땅 위에서 하는 운동이었고 30년 만에 다시 물에 들어가니 한 동안은 중급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발차기나 팔 돌리기 같은 동작은 따라가겠는데 호흡이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어려워도 조금씩 늘었고 얼마지 않아 상급반으로 올라갔다.


그러다가 막내 동생이 출산을 하게 되고 조카의 육아를 맡아하게 되면서 수영을 그만두게 된 것 같다. 그 후로 에어로빅, 헬스, 다이어트 복싱, 골프, 스쿼시, 요가 같은 운동을 드문드문했다. 살이 찌는 것 같으면 얼마간 스포츠센터에 나가고 어느 정도 회복되면 쉬고 하기를 거듭하다 보니 요요현상인지 오히려 살이 잘 빠지지 않는 이상한 몸이 되어버렸다.

할머니의 육아 수영

그렇게 한동안 운동하고 담을 쌓고 지내다가 25년 만에 수영장에 등록을 하게 된 것은 순전히 손주들 때문이다. 첫 손주 산후조리 때만 해도 체력에 별 부담이 없었는데 2년 차이로 손녀딸이 태어났고 손녀딸이 7kg 정도 나가던 어느 날 아기를 안고 일어서는데 무릎에서 ‘뚝'하는 소리가 들리며 통증이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이건 뭐지? 믿어지지 않는 통증에 다음날부터는 아기 안기를 조심하며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몸을 사리는 자신이 느껴졌다. 심한 자괴감이 들었다. 아직 젊다고 생각했는데 무릎통증이라니…


치열한 육아노동의 현장

육아는 노동이다. 체력이 필요한 노동. 아직 키워야 야 할 날들이 많은데 벌써 무릎이 아프면 곤란하지. 육아를 위해 체력을 키워야겠다고 마음먹고 당장 수영장에 등록을 했다. 다행히도 당시는 코로나 시국의 막바지였고 그동안 폐쇄 했던 수영장이 문을 열기 시작하던 시기라 새벽줄 서는 노력 없이도 공공수영장에 등록이 가능했다.  


처음 수영장에 등록하면 어디부터 해야 하는지가 늘 고민이다. 접영까지 가능하니 중급인데 중급을 따라가기엔 역시 호흡이 모자란다. 레인 한쪽에서 쉬어가며 따라가기 1년 만에 상급으로 승급, 다시 1년 만에 교정반으로 올라갔다. 우리 수영장에서는 교정반이 제일 마지막 단계다. 교정반의 경우 요일별로 다르지만 50분 수영에 자유형, 평형, 배형, 접영으로 1000m 정도를 도는 것 같다. 마치는 시간이 되면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게 달아오르고 물속에서도 등과 머리에 땀이 흐를 정도다.

오늘 수영 완료(오수완)

다이어트를 한다고 며칠 동안 식사양을 줄이고 수영장에 간 날은 수영을 마치고 탈의실에서 실신을 하기도 했다. 이런 걸 어려운 말로는 미주신경성실신이라고 하던데 귀가 멍해지고 눈앞이 흐려지며 잠깐 의식을 잃었는데 탈의실 바구니에 얼굴을 파묻고 엎어졌던 모양이다. 함께 운동하는 동료들이 물을 먹이고 팔다리를 주무르고 사탕도 주고 해서 금방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주섬주섬 옷을 입는데 함께 운동하는 나보다 어린 회원들이 큰 걱정을 하면서 말한다.


“언니 나이를 생각해야지. 왜 그렇게 열심히 해요. 그러다 죽어요~ 살살해요”


나이를 생각하라니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난다. 그러고 보니 적은 나이가 아닌 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수영장에는 70대 회원분들도 여러분 계시다. 교정반은 아니지만 초급, 중급, 상급반에서 최선을 다하시는 걸 보면 존경심 마저 느껴진다. 왜냐하면 해보니 운동은 스피드도 기술도 아닌 꾸준함이 최고더라. 잘하는 것보다 오래, 꾸준히, 열심히 하는 것이 더 어렵다. 그 어려운 것을 해내는 대단한 언니들을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수영을 시작한 손주와 고래상어를 보러가는 것이 꿈이다

수영을 다시 하면서 꿈이 생겼다. 손주들과 고래상어를 보러 가는 것이다. 올봄에는 제주도에서 해녀 체험을 했다. 일종의 프리다이빙인데 잠깐 동안 섭을 따면서 해녀분들의 고단함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재미를 위해 잠깐 들어가 노는 것도 이렇게 쉽지 않은데 물질로 먹고살아야 했던 그분들의 삶은 얼마나 고단했을까 저절로 존경심이 느껴지던 체험이었다.

얼마 전 ‘나이에드의 다섯 번째 파도'라는 영화를 봤다. 전직 수영선수였던 나이에드가 60세에 다시 수영을 시작해서 5번의 도전 끝에 64세에(바로 지금 내 나이에) 쿠바에서 플로리다까지 110마일(170km) 53시간의 장거리 수영에 성공한 감동적 실화이다. 비슷한 나이의 아네트베닝과 쥬디포스터가 주연과 조연을 맡아 현실성이 배가 된 영화다. 영화에서 종단을 성공한 나이에드가 한 말이 잊어지지 않는다.


“하나,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둘, 꿈을 좇기에 너무 늦은 나이란 없습니다. 셋, 수영은 고독한 스포츠입니다. 하지만 팀이 필요해요"


꿈을 좇기에 너무 늦은 나이란 없다. 나도 그렇다. 물론 장거리 수영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그 꿈이 무엇이든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나이는 아무런 장애물이 되지 않으니 말이다.


'오수완' 오늘도 수영을 완료했다. 오늘 또 하루 건강하게 즐겁게 늙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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