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원 Aug 19. 2024

할머니 노후자금 내놓아라 이 놈들아

주식, 펀드 27년 만에 이런 손해 처음이야

처음 주식을 시작한 건 1995년 경 남편의 직장을 따라 안산으로 이사를 했을 때다. 낯선 환경에 적응도 할 겸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다닐 때라 잠깐 동안 작은 가게를 운영했었다. 가게 운영은 얼마 하지 못했지만 거기서 나온 수익과 가게를 넘기면서 받은 보증금 등 생각지도 않은 약간의 목돈이 생겨서 뭘 할까 하다 당시 한창 유행(?)이었던 주식계좌를 개설했다. 남편은 '아줌마들이 장바구니 들고 객장에 나오면 시장이 끝나는 징조'라며 자기는 이제 주식을 정리해야겠다고 이죽거렸다.


여기저기 뿌려 둔 곳이 많다

당시만 해도 홈트레이드 시스템이 있기 했지만 객장에 방문하거나 전화로 주식을 매매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가끔 증권사 직원의 추천을 받아 사고 판 주식들이 수익을 내주기도 했고 경제의 흐름도 배울 겸 시작한 주식은 큰 손해를 보는 일 없이 소소한 일상의 재미를 안겨주기 충분했다.  


하지만 재미도 잠깐, IMF가 터졌다. 다행히 나는 큰 손해 보지 않고 주식을 정리했지만 남편은 달랐다. 얼마간의 손해를 본 남편의 타격은 컸던 모양이다. 이후 ‘주식시장은 쳐다보지도 말자’는 남편의 결심에 따라 나 역시 주식은 쳐다보지 않고 살았다.


 그러다가 2004년 경부터 <오마이뉴스>에 시민기자로 글을 쓰다 보니 낙숫물에 옷 젖는다고 원고료와 상금, 강의료 등이 심심치 않게 쌓이기 시작했다. 피 같은(?) 내 글 값을 함부로 써버리는 것이 아까워 매달 10만 원씩 넣는 적립식 펀드를 시작했다. 펀드는 주식이 아니니까.(아무렴)  원고료가 늘어가는 만큼 펀드 수익도 늘어 천만 원이 넘어가기도 했다.

주식으로 돈 벌기 쉽지 않다

펀드로도 잔잔한 재미를 맛봐서 그랬던가 주식계좌를 폐쇄하지 않은 것이 오늘의 비극의 시작이라면 시작일 것이다. 가위바위보를 포함 도박에는 늘 젬병인 내가 두세 번 맛본 투자 이익에 살금살금 중독되기 시작해 손실이 나면 안 되는 쌈짓돈(노후 자금)까지 털어 넣어버린 것이다.


지금이나 이 모양이지 2021년까지는 큰 손해 없이 순항 중이었다. 남들 한다는 코인투자도 하지 않고 해외주식도 하지 않고(몰라서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내가 아는 회사에 충성하듯 지고지순하게 매달렸다.


남들이 다 안다는 '그' 주식에 대부분을 넣었다. 삼성전자, 하이닉스가 그것이다. 전기, 전자, 건설주나 시멘트 등 옛날에 한 번씩 사고팔아봤던 주식들을 선호했는데 움직임이 적어서 로우 리스크 로우 리턴이지만 배당을 받고 하면 은행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고 주식과 결혼했다.

사랑한다. 카카오

그러다가 네이버, 카카오 같은 신세대(내입장에서는 신세대다) 주식으로 눈을 돌렸다. 왜냐하면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이 네이버나 카카오이기 때문이다. 주식 천재라는 선생님들이 그런 걸 사라고 내 귀에 속삭였다. 팔랑귀가 된 나는 수익이 좋은 전기 전자를 일부 정리해 천정 끝 모르게 올라간 네이버와 카카오를 잡았다. 오르면 또 사고 오르면 또 사고...


위험 경고도 들리지 않았고 마치 그걸 사지 못하면 큰 손실이 날 것 같은 위기 감에 공모주 신청까지 최선을 다해 한주라도 더 가져왔다. 물타기, 물에 물타기 그러다 보니 내 주식 자산의 80%가 네이버와 카카오가 되었다. 여보. 미안 ㅜㅜ. 이제 내 노후대책은   오로지 당신이야~

애정한다. 네이버

나의 특징은 사람이든 물건이든 주식이든 무엇이든 한번 인연을 맺으면 절대 변심하지 않는다는 것. 한번 결혼한 남편과 영원히 함께하듯 한번 산 주식과도 영원히 함께 한다. 매일매일 주식 시장의 변화를 살피는 버릇도 없고 한 번 사고 나면 당분간은 들여다보지 않는 스타일이다. 들려오는 불안한 풍문과 뉴스도 애써 외면하며 언젠가는 오르겠지. 언젠가는 회복되겠지. 기다리고 또 기다린 게 몇 년인지.


무자식이 상팔자가 아니라 무주식이 상팔자라던가.


손절의 타임도 놓친 지 오래 이제는 본전 생각에 팔 수도 없는 상태다. '공연한 욕심을 낸 내가 잘못이지 누구를 탓하겠는가. 이생에 못 팔면 손주에게 증여하면 되지' 위안하며 쓰린 상처에 연고를 바른다. 손주들은 할머니처럼 고민하지 말고 미련 없이 팔아서 데이트를 하든 여행을 하든 재미있게 쓰면 좋겠다.


기왕에 말을 꺼냈으니 듣거나 말거나 한마디만 더 하고 싶다.


“야 이 넘들아, 할머니 노후 자금 내놓아라.”  


지나친 투자와 투기는 노화를 촉진한다. 이마에 내 천자 그리며 손해를 묵상하면 잔 주름만 늘어날 것이니. 잊자. 잊고 살자. 어차피 내 돈이 아니었던 거다. 우하하하하!!! 웃다가도 눈물이 나는 건 기분 탓이겠지.

작가의 이전글 이자벨랑구의 전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