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내려 좁은 골목을 걷는다. 집 앞에 내놓은 꽃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화분마다 정성스럽게 꽃을 가꾸는 이의 미소를 떠올리니 입꼬리가 올라간다.
다세대 주택과 마당을 품은 시골 옛집들이 스쳐간다. 텃밭 울타리에 앙증맞은 꽃이 보여 다가서니 오이꽃이다. 울타리를 덩굴손으로 야무지게도 잡았다.
약간 비스듬한 길을 오르니 양쪽으로 오래된 팽나무 두 그루가 보인다. 부부 팽나무라는데 세월이 둘을 멀찍이 떨쳐놓았다.
옛날, 이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와서 저 팽나무에 배를 묶었다지. 세월이 쌓인 나무를 바라보니 잎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내 발길은 어느새 팽나무를 지나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내리쬐는 뙤약볕을 막으려 양산을 잡은 손에 땀이 맺힌다. “덥다.” 탄식하듯 내뱉으니 저 앞에 하늘거리는 오렌지빛 능소화가 보인다.
이제 내리막길이다. 농업생태원까지 포장도로가 이어져있고, 그 양쪽으로 초록 융단처럼 논들이 깔려 있었다.
“사람에겐 덥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햇볕이 강해야 벼들이 익는 거야.” 시골 출신인 남편이 말했었다. 벼를 마주하니 문득 남편의 그 말이 생각났다.
농업생태원까지 걸어가는 길, 덥다고만 투정했는데 그 말을 생각하니 더위가 참을만했다. 무겁던 발걸음이 거짓말처럼 가벼워진다.
뜨거운 햇살을 받아 건강해진 벼들을 “찰칵” 찍어 본다. 다른 마음으로 바라보니 저 멀리까지 펼쳐진 초록빛의 향연이 아름답게 보인다.
이제 며칠 후면 더위가 싹 가신다는 의미의 ‘처서'가 돌아온다. 폭염과 폭우로 힘든 여름이었지만 언젠가는 이 여름도 거짓말처럼 스쳐갈 것이다.
시민정원사 수업을 들으러 농업생태원 가는 길, 뜨거운 햇살을 받은 벼들이 살랑살랑 흔들거리며 여름의 마지막 장면을 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