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스쳐간 자리, 버스를 타고

by 소금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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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스쳐간 자리, 버스를 타고



꽃을 감추고 잎을 드리운 벚나무가 낯설게 다가온다. 간밤, 번개가 세상을 뒤흔들고 폭우가 쏟아졌다. 그렇게 내린 비는 먼지 낀 유리창을 닦아내듯 거리의 식물들을 씻어주었다.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오늘따라 선명하다. 눈꼽을 떼어낸 것처럼 세상과 나 사이에 낀 이물질이 사라지니 마음까지 개운해진다. 투명한 버스 창문으로 벼의 물결이 한들거린다.



변두리에서 도심으로, 도심에서 살짝 벗어나니 큰 잎을 단 칠엽수가 눈에 들어온다. 도시공해에 강해서 조경수, 가로수로 많이 심는 나무다.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니 나무들 윗가지가 머리를 깎인 듯 휑하다. 강한 나무도 여름 폭염 앞에서는 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하다.



버스에서 책을 꺼내 읽는다. 다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데 혼자 책이라니 조금 어색하다. 글을 읽어나가는 내 머릿속이 버스 리듬에 맞추어 흔들거린다.



도서관 가는 길, 아무렇게나 뒤덮인 잡초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장관이다. 예전에 TV에 방영되어 인기를 끌었던 <초원의 집>에서 네 딸들이 내달렸던 풀밭이 떠오른다. 둘째 딸 ‘조'는 내 우상이었는데 지구 어디쯤에서 잘 살고 있을까?



오늘도 나는 버스를 타고 집 밖으로 나간다. 낯선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어제보다 한 뼘쯤 더 성장할 것이다. 비가 스쳐간 세계, 그 속에서 맞이한 아침이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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