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구멍난 양말을 신었다. 양말을 꺼낼 때는 미처 확인하지 못했고, 시간에 쫓겨 양말을 신으면서 알았다. 그렇게 난 양말을 갈아신지도 못한 채 집을 나섰다.
급하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보니 발가락이 이상했다. 신발을 벗고 발을 쳐다보니 구멍 사이로 엄지발가락이 삐죽 나와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길을 걷다보니 구멍은 제 주인을 알아보듯 엄지발가락을 끌어당겼다. 신발을 벗고 양말을 끌어내렸다. 그 순간 구멍난 양말같은 하루가 될 것 같다는 불안감이 마음 속에 꽃불처럼 일었다.
버스를 기다리며 하늘을 쳐다보니 아낙네의 모시저고리처럼 파아랗고 가을을 머금은 바람이 피부를 스친다. 연한 옥빛 하늘 속에 구름이 유영하고 있었다. 가을인가 생각하니 떠도는 방랑객처럼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충동이 생긴다. 아파트 입구에 차단기를 통과하는 버스가 보였다.
버스가 아파트를 벗어나 달리기 시작한다. 버스가 달리는 한쪽으로 시원하게 뚫린 논이 보인다. 초록빛 풀들이 바람에 쓸리듯 하늘거리고, 벼는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버스가 다른 아파트 단지로 들어간다. 아파트 단지에 버스가 들어가는 곳에 산다고 하면 다들 신기해했다. “와, 아파트 단지에 버스가 들어가는 곳은 처음 봐요.” 논 사이로 세 단지가 들어서 있고, 그곳까지 마을버스가 들어와 사람들을 태우고 내렸다.
자리에 앉아 밖을 쳐다보고 있자니 구멍난 양말이 자꾸 신경이 쓰였다. 엄지 발가락이 다시 구멍을 찾았는지 구멍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옷을 입듯 양말 구멍을 입어버린 엄지발가락이 남의 옷을 입은 사람처럼 어색하게 와닿는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몸이 파도를 타듯 흔들거린다. 그럴 때마다 발가락은 구멍을 더 세차게 잡는다.
‘나는 왜 구멍난 양말을 신었을까?’ 내 마음에도 구멍이 하나 생긴 듯 바람이 불어댄다. 남편이 퇴근하고 시골에 간다고 한 것이 거슬렸을까, 아니면 육아 권태기를 지나고 있는 내 마음이 불편했을까. 어쩐지 내 마음이 구멍난 양말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구멍에 낀 발가락이 신경 쓰이듯, 생활의 구멍에 낀 내 마음도 하루종일 삐죽 나와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