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빛 하늘에 솜뭉치처럼 가벼운 구름이 유유히 흐르는 날이다. 도서관 그림수업을 마치고 가을길을 걸었다.
수채붓으로 주홍물감을 톡 친 것처럼 벚나무 잎들이 알록달록했다.
‘오늘은 뭘 먹지? 아차, 수제비 가게는 쉬는 날이지. 그럼, 보리밥 먹자.’
시장 안 골목 깊숙하게 자리한 보리밥집을 찾아든다.
아무렇게나 빈 자리에 앉아 수저를 놓는다.
전통찻집 분위기를 낸 가게에 듬성듬성 손님들이 앉아 밥을 먹는다.
이제 혼자 자리를 찾아 앉는 것도 익숙해졌다.
주전자에서 물을 따르니 연한 분홍빛물이 종이컵 안에 고인다.
“오늘은 양파물이에요.”
소설 속 아네모네 마담 같은 주인 아줌마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보리밥 하나 주세요.”
주문을 하고 가게 안을 휙 둘러본다. 주인장의 소녀 취향이 가게 곳곳에 묻어난다.
벽면을 가득 채운 인조꽃들과 아기자기한 화분 그리고 작은 그림액자까지 주인의 손길이 닿아 있었다.
건너편에 어르신 둘이 앉아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뿐 나머지는 모두 혼자 앉아 있다.
혼밥의 시대인 것이다.
예전에는 식당에 혼자 들어가려면 쭈볏거려야 했고, 자리에 앉아서도 주변의 눈치를 살펴야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도 혼자 밥 먹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보리밥이 나와서 먹고 있는데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온다.
어느새 좁은 식당이 혼밥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다.
시장에 장 보러 나왔다가 들어온 사람, 단골이라 습관처럼 온 사람,
나처럼 마땅히 생각나는 메뉴가 없어서 그냥 온 사람들이다.
밥을 먹고 있으려니 부부인 듯한 노년의 두 사람이 들어오고 테이블 합석이 시작이 된다.
새초롬히 짧은 머리를 한 주인 아줌마는 오봉에 한 상을 차려 내 온다.
음식값은 선불이다. 오봉이 앞에 놓이면 현금을 내고 거스름돈을 받는다.
‘오늘은 얼마나 버셨을까?’ 나는 궁금증이 생겨 아네모네 마담을 쳐다본다.
1인 가구가 늘어가는 요즘, 혼자 밥 먹는 일은 이제 더이상 특별하지 않다.
자주 가는 수제비집, 콩나물국밥집, 중국집 그리고 카페에도
혼자 온 사람은 나만 있는 게 아니다.
영화보고, 쇼핑하고, 공원에 혼자 가도 아무렇지 않다.
내가 타인을 신경 쓰지 않듯 타인도 나를 신경쓰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이 시대의 혼밥은 외로움일까, 자유일까.
오늘따라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나를 보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