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꾀꼬리는 다 어디로 갔을까

by 소금별

챗 GPT가 그림



그 많던 꾀꼬리는 다 어디로 갔을까



아들을 학원에 데려다주는 길, 우연히 새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시작은 금개구리였다. 시골에 다녀온 남편이 금개구리를 봤다고 했고, 부엉이와 관련된 어릴 적 일화를 들려준 게 시작이었다.


한밤중에 소가 미친 듯이 울어서 나가보았더니 날개를 활짝 핀 수리부엉이가 소를 가로채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때는 3m쯤은 되어 보였다고 했다. 어린 눈에는 더욱 거대해 보였을 것이다. 딴에는 사냥감을 찾았던 것인데 소등에 발톱이 깊게 박혀서 날아갈 수 없어서 버둥거리고 있었단다.


“그때 부엉이 눈을 봤는데 아주 노랗더라고. 날개를 폈는데 어찌나 컸는지 몰라.”


남편은 그때 이야기를 지금 본 것처럼 아주 실감 나게 말했다. 남편 얘기를 들으니 어린 시절 머리 위에서 빙글빙글 맴돌던 매가 생각났다. 병아리를 낚아채려고 그러는지 매는 떠날 줄을 모르고 크게 원을 그리며 날았다. 어린 나는 그 매를 두려움에 가득 찬 눈으로 쳐다보았다. 꼭 나를 채갈 것만 같았다. 나는 창밖을 쳐다보며 잠시 어릴 때를 떠올렸다.


부엉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소쩍새로 화제가 돌려졌다. “소쩍새는 부엉이보다 훨씬 작아.” 시골이 고향인 남편은 소쩍새를 잘 안다는 듯이 나에게 설명을 했다.


소쩍소쩍. 소쩍새는 한밤중에 참 처연하게도 울어대며 잠자리를 뒤척이게 했었다. 소쩍이란 이름처럼 ‘솥이 적다'는 뜻을 지닌 소쩍새는 굶어 죽은 며느리 전설을 담고 있다. 전설 속 시어머니는 밥을 많이 먹는다고 며느리에게 작은 솥을 주어 밥을 짓게 했다. 결국 시어머니와 남편 밥만 챙기던 며느리는 굶어 죽었고 소쩍새가 되었다고 한다.


“옛날엔 꾀꼬리도 많았잖아. 약수터에 가면 꾀꼴 하고 울어댔는데 요즘엔 통 볼 수가 없네.” 기억이 기억을 이끌어내는지 별안간 꾀꼬리 생각이 나서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도 어릴 적에는 꾀꼬리를 자주 보았는데 지금은 시골에 가도 꾀꼬리를 볼 수 없다고 한다.


어릴 적, 봄이면 뒷동산이 연분홍 저고리처럼 진달래로 아름답게 물들었다. 꼬불꼬불 길을 따라 약수터에 가면 꾀꼬리가 목청을 뽑았다.


“꾀꼴꾀꼴” 그렇게 울어서 꾀꼬리란 이름을 얻었을까?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그 울음소리를 듣고 있으면 왠지 이국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꾀꼬리는 샛노란 깃털을 가진 새였는데 어릴 때 기억이 강한 탓인지 내 그리움의 새가 되어버렸다.


잠시 상념에 젖어있다가 밖을 보니 전선줄에 앉아 있는 참새가 보였다. “옛날 참새는 통통했는데, 요즘 참새는 작아 보이지?” 남편이 말했다. “포장마차에서 참새고기도 팔았는데.” 남편의 말에 나는 또 예전 기억을 소환했다.


어릴 적 엄마 손을 잡고 들어간 포장마차에는, 연탄불 위에서 참새고기가 노릇노릇 익어가고 있었다. 참새를 잡던 기억도 떠올랐다. 작은 소쿠리를 나뭇가지로 세우고 그 가지에 실을 묶어 참새를 기다리면 새는 근처에서만 종종거릴 뿐 잡히지 않았다. 다 옛날 추억이 되었다.


어릴 적 새에 대한 추억 때문인지 새만 보면 내 눈이 마취당한 듯 그것을 찾아갔다. 오목눈이, 박새, 굴뚝새, 딱따구리, 직박구리를 보면 시선을 거두지 못했고, 산에 갈 때마다 꾀꼬리를 찾았다.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처럼 그 많던 꾀꼬리는 다 어디로 갔을까. 내 마음속에는 아직도 노란 날개를 펴고 노래하고 있는 그리움인데.

이전 05화혼밥, 외로움과 자유 사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