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짜보를 심다

by 소금별
KakaoTalk_20251022_205301669.jpg




청짜보를 심다


처음 ‘청짜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문득 떠오르는 식물이 없었다.
‘짜보’라는 단어가 언뜻 보리를 연상시켰지만, 그것은 한참 엉뚱한 상상이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농장에 도착해 처음 청짜보를 마주했을 때,
마치 미니 소나무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편백을 닮은 잎들이 가지 끝에서 조심스레 뻗어 있었고,
자라는 속도가 매우 느리다고 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짜보’라는 이름에는 ‘땅딸보’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오늘 농장에 간 이유는 청짜보를 직접 심기 위해서였다.
농장을 한 바퀴 둘러본 뒤, 자리에 앉아 심기를 시작했다.
농장 주인분이 먼저 시범을 보여주셨다.
4포트짜리 화분에 흙과 왕겨를 섞은 배양토를 가득 담고,

그 위에 아기 청짜보 한 포기를 조심스레 올렸다.
뿌리가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흙을 덮고,
마사토를 얹어 화분 둘레를 부드럽게 눌러주었다.


멀리서 보면 쉬워 보였지만,
막상 해보니 손끝이 서툴러 쉽지 않았다.
흙의 결을 느끼며 내 마음도 어느새 그 속으로 스며들었다.


청짜보는 모수에서 채취한 잎을 삽수해 번식시킨다고 했다.
언뜻 보면 편백의 잎 한 조각을 따놓은 듯했다.

쪼그리고 앉아 한참 동안 청짜보를 심었다.


비닐하우스 안으로 시원한 바람이 스며들었고,
하늘은 에머랄드빛 호수처럼 깊어가고 있었다.
가을이 무르익는 오후, 다리가 저려 잠시 일어서니
내가 심은 청짜보들이 눈에 들어왔다.
비닐하우스 안은 크고 작은 화분들로 가득했고,
이제 막 심은 아기 청짜보부터
1년 된 청짜보까지 줄지어 있었다.
이렇게 많은 청짜보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 심었지만,
그중 10퍼센트쯤은 죽는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더 조심스레 흙을 덮고 잎을 어루만지게 되었다.


청짜보를 심으며 자연스레 청짜보에 대한 이야기도 배워갔다.
소나무 분재는 만들기가 어렵지만, 청짜보는 자라는 속도가 느려
미니 소나무처럼 키울 수 있다고 했다.
모수에서 채취한 잎을 삽수해 심는 시기가 바로 지금 가을이라고 했다.
마치 가을걷이를 하듯, 이분들도 한 해의 농사를 짓고 있는 셈이었다.


청짜보를 다 심고 돌아서는 길,
농장주님이 1년 된 청짜보를 건네주셨다.
한 그루만 주셔도 감사했을 텐데,
무려 세 그루나 내 품에 안겨주셨다.
그 작은 화분 속에는 한 해의 정성과 노고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래서일까, 선뜻 받기가 민망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품에 안긴 청짜보가 나를 올려다보는 듯했다.
“안녕, 반가워. 앞으로 나를 잘 키워줄 거지?”
그 목소리가 들린 듯해 가슴이 따뜻해졌다.
오늘 하루, 나도 청짜보 한 그루처럼
천천히 자라는 법을 배운 날이었다.

작가의 이전글시 한편_두근두근,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