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다.
막 아침클래식 <지킬과 하이드>를 관람하고 나온 참이었다.
결혼식날 칼을 향해 돌진했다는 지킬박사의 여운이 길었는지 걷고 싶었다.
지킬과 하이디의 고뇌어린 앙상블이 겨울비처럼 젖어들고 있었다.
한 두방울 내리던 비가 장대비처럼 쏟아졌다.
우산을 꼭 잡고 도시의 가로수길을 걸었다.
전국 도시숲에서 우수상을 탔다는 그 숲길이 생각이 났던 것이다.
길 양쪽으로 오래된 나무들이 늘어서 있었다.
공작새의 활짝 핀 꼬리깃털처럼 붉은 잎들을 펼치고 있는 단풍나무에 눈길이 머물렀다.
울창한 그 자태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무엇이든 세월을 이길 수는 없구나.
뇌리를 스쳐가는 이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오래된 도심에 빼곡한 나무가 자라서 숲이 되었다.
그 숲길을 걸으며 마음 속 작은 번뇌를 위로받는다.
비는 걷잡을 수 없이 내리고 바지 끝이 조금씩 젖어든다.
교회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내 시선은 그곳에 머문다.
황혼에 접어든 사람들이 빗속을 걷는다.
내 인생의 황혼녁이 오면 나도 그들처럼 교회를 기웃거릴까 생각하는데
두 여인이 우산 하나를 받쳐들고 나를 추월해간다.
언젠가 헤매던 이 길이 조금씩 퍼즐을 맞추며 내 머리에 선명한 지도를 그린다.
걷는 내내 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도시숲을 공부하면서 스쳐 지나치던 나무들을 이제는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줄기차게 내리던 겨울비가 화를 달래듯 잦아들고 나는 신호등을 건넌다.
앞쪽에 고즈넉한 생태공원이 보이고 그 너머에 오늘의 목적지 도서관이 있다.
잔잔한 호수를 헤엄치는 오리 무리가 보인다.
하늘을 찌를 듯 위로 뻗은 메타세쿼이아 잎들이 황갈색을 띄며 그림처럼 원근감을 그린다.
생태공원에 사진 전시가 있었는지 풍경을 담은 사진들이 팔랑거린다.
하릴없이 사진을 보다가 새 사진에 눈길이 머문다. 그곳에 동경의 새 꾀꼬리가 있었다.
어느덧 겨울비는 그치고 고즈넉한 도시숲을 걷자니
하늘 위로 한무리의 겨울 철새가 브이자를 그리며 날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