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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티나인 Sep 30. 2022

말할 수 없는 비밀, 은밀한 욕망

    '비밀'( THE TOP SECORET) 시미즈 레이코 글 그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무섭고 끔찍하지만 만약 내가, 혹은 우리 가족이 이유도 모른 채 살해 당했다고 가정해 보자.

목격자도 없고 어떤 증거도 남기지 않아 범인은 오리무중이다. 미제 사건으로 남을 가정이 크다. 가족들은 절망에 빠진다. 그런데 뇌과학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고인의 뇌를 꺼내 컴퓨터로 분석하면 죽을 당시의 상황이 고스란히 컴퓨터에 생생하게 재현 돼 범인의 얼굴까지 선명하게 보여진다.

  유족들은 억울한 고인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고인의 신체가 훼손되는 불미스러운 상황에서도 기꺼이 고인의 뇌를 꺼내 보길 원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 또 선택의 문제가 있다. 고인의 뇌를 들여다 보면 고인이 죽을 당시의 상황뿐만 아니라 고인이 감추고 싶었던 은밀한 비밀까지 모두 영상으로 재현 되어 원치 않게 모두에게 공개되어 버린다.

심지어 마음만 먹으면 그 당시 뿐만이 아니라 몇 개월 전 , 몇 년 전의 고인의 행적이 고스란히 재현 될 수 있다. 더구나 실제로 행한 일이 아니라 내 뇌가 바라는 기억속의 마음도 영상으로 재현이 가능하다.  

 범인을 잡자니 고인의 은밀한 비밀을 어쩔 수 없이 봐야만 하고 덮자니 고인의 죽음이 너무 억울하고 안타깝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그 선택은 산 자의 몫이다.

그 고인이 나라면, 우리 가족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그림체가 신비롭고 아름답기로 유명한 시미즈 레이코는 전작인 ‘달의 아이’ ‘월광 천녀’의 작가로도 유명하다.

2008년 발행된 ‘비밀( THE TOP SECRET) 은 먼 미래인 2060년을 배경으로 일본의 최고 엘리트들의 집단인 과학 경찰 연구소 법의 제 9연구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옴니버스식으로 다룬 단편모음집이다.

9 연구실의 최고 두뇌이자 책임자인 마키 경시정은 빼어난 미모에 천재적 두뇌를 가진 인물이다. 그를 중심으로 그의 부하 7명은 세계적으로 불가사의한 전대미문의 사건들을 파헤치고 해결해 간다.

유족들의 허락 하에 고인의 뇌를 절단하고 컴퓨터에 분석해서 살해 당시의 고인의 뇌에 남아 있는 잔영으로 범인을 찾아낸다.

범인을 색출하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고인의 뇌를 들여다 보게 되고 죽을 때까지 감추고 싶은 그들의 은밀한 비밀을 알게 된다. 그로인해 마키 경시정과 그 부하들은 끊임없는 살해 위협에 시달리기도 하고 비윤리적이라는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사명감으로 시작했던 일에 부하들은 자괴감으로 힘들어 하기도 하고 지쳐간다.  마키는 그런 그의 부하들을 서슬 퍼런 카리스마로 제압하고 통제하면서 한편으로 그들의 미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방패막이 되어 주기도 한다.


   사명감에 시작한 마키와 그의 부하들은 수많은 미제 사건을 해결함에도 왜 자괴감과 책임감 사이에서 힘들어 하고 괴로워했을까     

하나의 에피소드를 들여다 보자  

2055년 제 57대 미국 대통령 존 리드는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청렴하고 훌륭한 대통령이다. 그래서  전 세계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는다. 그러던 그가 휴가 중 별장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사람들은 당혹감과 슬픔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갑작스런 죽음에 유족들은 9연구실에 범인을 찾아 달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마키 경시정은 밤을 새워 부하들과 사건 해결에 앞장선다. 대통령의 뇌를 스캔해서  보니 그는 정말 만인의 존경을 받을 정도로 일상 생활 자체도 깨끗하고 세상을 보는 시선도 따스하다. 그런데 컴퓨터 화면에 사건 당일 가면을 쓴 의문의 남자가 혼자 있는 대통령의 지갑에서 어떤 사진을 빼앗으려 하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대통령과 몸싸움을 벌이다가 결국 대통령을 살해하게 되는 영상이 재현된다.  죽는 순간까지도 대통령은 의문의 사진을 움켜쥐고 그 사진을 찢어버리며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

온갖 매체에서는 도대체 그 사진이 무엇이길레 목숨과 맞바꿀 정도인지 흥분에 연일 앞다퉈 보도 한다. 고인에 대한 진심어린 추모는 잊은 지 오래고 그의 죽음은 가십거리처럼 다뤄지게 된다.

마키 경시정과 법의 9연구실 사람들은  갖은 방법으로 그의 뇌를 연구해 결국 그 사진의 인물을 밝혀 낸다.

사진 속 인물은 마슈 헤버이 ... 딸의 약혼자이다. 존 리드 대통령은 그를 처음 본 순간 첫 눈에 반하게 되고 그런 자신의 마음을 철저히 감추었다. 하지만 애달픈 마음은 어쩔 수 없었는지 마슈의 사진을 자신의 지갑에 넣고 다녔다.

알고 그런 건지 모르고 그런 건지 알 수 없으나 가면의 남자는 그 지갑을 빼앗으려 했고 죽을 때까지 자신의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대통령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그 비밀을 지키고자 했다.

이 사실이 기사로 전 세계에 보도되자 사람들은 경악해 하며 연일 지저분한 보도를 일삼는다. ‘ 대통령 게이설.. 대통령 첫 남자... 금단의 사랑’

목숨을 걸고 지켰던 그의 비밀은 허무하게도 세상에 알려져 난도질 당한다. 그가 이루어낸 업적과 따스한 성품은 세상사람들 시선에 밀려난 지 오래다.    

       

본편과 속편까지 12권에 달하는 단행본 속에 흥미롭고 긴박감 넘치는 에피소드들이 넘쳐 난다. 밤에 보면 오금이 저릴 정도로 무서운 내용도 많다. 그래도 순정만화라 그런지 아름다운 그림체가 어느 정도 소름끼치는 장면을 희석 시켜 주기도 하고 사람들의 혼을 쏙 빼놓는 미모의 마키 경시정과 그의  부하인 우직하고 잘생긴 이오키와의 선을 넘지 않는 동성애적 사랑도 설렌다.      


‘비밀’을 읽고 나서 계속 내게 질문을 던졌다. 나라면 어떻게 할까 내가 죽고 내 뇌를 파헤쳐 범인을 잡게 된다면  내 은밀한 비밀이 밝혀져도 좋을까? 평범하게 살아온 내가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는 엄청난 비밀이야 갖고 있지 않지만 이래저래 좀 낯부끄러운 은밀한 비밀 정도는 나 역시 한 두 개쯤은  가지고 있다.

궁금해서 만나는 사람마다 불쑥 질문을 던졌다. 예상 외로 범인을 묻어두고라도 자신의 뇌를 보여 주지 않겠다는 답이 압도적이었다.

그들의 은밀한 비밀이 궁금하기도 하면서 알면 더 무서워 질 것도 같아 안 보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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