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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티나인 Oct 01. 2022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

'나빌레라' 글 HUM 그림 지민 

" 저기 애들아, 내가 내가 말이다. 발레를 해보려고 한다"

70대 심덕출씨는 오랜만에 자식들 며느리 손자들까지 모인 저녁 식사 시간에 담담하게 말한다. 가족들은 덕출씨의 말에 어안이 벙벙하다. 자식들은 아버지의 건강을 걱정하며 등산과 수영을 권한다. 덕출씨는 단호하게 자신이 원하는 건 발레라고 얘기하며 어릴 적 러시아에서 본 발레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며 가족을 설득한다. 가족들은 그런 덕출씨를 이해 하지 못하고 남부끄러워 한다. 가족들의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을 안 덕출씨는 혼자 꿋꿋이 발레학원을 찾아가 발레를 배우고 싶다고 원장에게 말한다. 발레원장은 늙은 덕출씨를 보고 곤란해 하지만 덕출씨는 발레학원의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며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킨다. 덕출씨의 확고한 의지에 감동한 원장은 결국 그가 학원에 다니는 걸 허락하고 드디어 덕출씨는 꿈에 그리던 발레를 배우게 된다. 

2016년에 카카오 웹툰에서 시작한 '나빌레라'는 드라마와 뮤지컬로 각색 될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나는 카카오에서 처음으로 '나빌레라'를 보며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연재가 되는 화요일마다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덕출씨가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간 러시아에서 발레하는 아이들을 보며 가슴이 뛴 것처럼 나도 일본 만화인'스완'을 보며 발레리나를 꿈꿨더랬다. '스완'에 나오는 발레 동작을 따라 하기도 하고 나비처럼 너훌거리는 발레복에 넋을 잃기도 했다. 엄마께 발레를 배우고 싶다고 졸라댔다.

"애가 무슨말이야? 니들 학교 보내기도 벅차죽겠는데..."

고된 식당일에 짜증이 묻어나는 엄마의 신경질적인 목소리에 찔끔거리며 속절없이 물러났었다. 

별보기 운동이라 불리던 학창시절을 졸업하고 결혼 해서 두 딸을 키우면서도 발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 했다. 하지만 뚱뚱하고 처진 몸을 굽어 보며 발레는 감히 생각도 하지 못 했다. 대리 만족이라도 하고싶어 아이들에게 발레를 시켰다. 하얀 피부에 긴 팔다리를 가진 아이들이 발레복을 입고 날아다니면 내가 발레리나가 된 것 같아 뿌듯하고 기뻤더랬다. 

그런데 덕출씨는 나보다 열 배는 더 용감했다. 70이라는 나이에 그는 자신의 꿈을 스스로 이뤄냈다. 

친한 친구의 허무한 죽음과 치매라는 청천벽력같은 병명에 마지막 불꽃을 피워내려는 덕출씨의 아름다운 도전은  이채록이라는 사연많은 청년을 만나 엄청난 에너지로 꽃피운다. 

어머니의 죽음과 축구선수로의 정체기에 괴로워 하는 채록은 덕출씨와의 만남으로 정체성을 찾아 발레리노의 꿈을 이루고 치매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덕출씨가 마지막 무대를 멋있게 장식할 수 있도록 도운다.  가족들은 그런 덕출씨에게 아낌없는 응원과 박수를 보낸다.

이 공연을 마지막으로 덕출씨는 결국 치매가 악화 돼 기억을 조금씩 잃어버린다.  마지막에는 채록과의  인연도 잊어버리지만 채록은 세계적 발레리노가 되어서도 덕출을 가끔 찾아간다.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 덕출씨가 난간을 붙들고 발레 동작을 무의식 중으로 따라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작품은 끝난다. 

난 이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가슴이 아파서 셔츠를 꼭 쥐었다.  그의 마지막 불꽃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 다음날 가까운 동네에 발레 학원을 찾아갔다. 2년 째 계속 발레를 하고 있다. 가느다랗고 늘씬한 젊은 사람들 사이에 비루하고 뚱뚱한 몸으로 여전히 왕초보반에서 머물고 있지만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 그렇게도 덕출씨가 부러워 했던 50대가 아닌가. 발레 학원에는 채록같은 아이도 없어 드라마틱한 결말이 펼쳐 지지 않겠지만 발레 음악에 맞춰 바에 다리를 걸치고 기본 동작을 따라하면 어느덧 어릴 적 꿈에 살짝 다가간 것 같아 행복하다. 













<처음으로 사 본 발레복에 하루종일 설렜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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