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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티나인 Oct 01. 2022

멋진 꼰대, 인간에 대한 애정

'천재 유교수의 생활'  카즈미 야마시타 글 그림

"Y대 경제학부 교수 유택.. 길을 걸을 때는 반드시 우측 통행, 횡단보도가 아니면 건너지 않는다. 9시가 되면 세상이 멸망해도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동네 꼬마가 담벼락에 낙서를 하면 끝까지 찾아내  지우게 한다. 바닷가에 쓰레기를 마음대로 버리는 젊은이들에게 겁도 없이 다가가 휴지통에 버리라고 충고해 아내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아내가 가난한 살림에 힘들어 할 때도 대학교에서 받은 월급으로 자신이 원하던 책을 한 꾸러미 사와 아내를 절망하게 한다. 평생을 책에 파묻혀 살아 어린 딸들은 서재에 틀어박힌 아빠의 부재에 외로워한다."



 아마 우리 아파트에 이런 노인이 산다면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몇 초를 못 기다리고 닫힘 버튼을 누르고 있을 내게 공동으로 내는 전기세의 효용성을 얘기하며 점잖게 충고 할 지도 모르겠다.  아파트 밴드에 주차 위반  사진과 번호까지 버젓이 올리고, 쓰레기 불법 투기를 한 사람을 기다렸다가 분리수거를 시킬 것도 같다. 말인즉 다 올바른 말이지만 어느 정도의 비도덕적인 자잘한 일들을 하는 나는 피로감과 불편함으로 그 노인을 피해 계단을 오르길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이쯤 되면 꼰대라고 불릴만한데 이런 유택 교수를 동경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유택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그를 뛰어넘으려던 친구들도 결국에 가서는 유택을 좋아하게 되고, 동네의 늙은 과부는 유택의 발소리만 들어도 소녀처럼 얼굴을 붉히며 그를 보기 위해 일부러 골목을 서성거린다. 유년 시절에 아빠를  책에 빼앗긴 유택의 딸들은 자신의 남편들과 아빠를 비교하며 ‘우리 아빠는 이러지 않았는데 ’ ‘우리 아빠라면 이렇게 했을텐데 ’라며 남편들에게 아버지의 모습을 덧씌운다.

제자들은 또 어떤가. 유택에게 인정받기 위해 몇 년을 졸업을 유보하며 논문을 쓰는 영화배우가 있는가 하면 , 유택의 말 한마디에 가식적인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며 새로운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는 제자들도 수두룩하다.

몇 십 년을 유택을 잊지 못해 죽기 전에 유택을 보기위해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도대체 이 꼬장꼬장한 원칙주의자에게 어떤 매력이 있어서  그 많은 사람들에게 동경과 사랑을 넘치도록 받는 것일까?     



1998년에 발행된 카즈미 야마치타의 ‘천재 유교수의 생활’은 34권이 넘는 단행본이 출간 된 옴니버스식 구성의 만화이다.  각각의 에피소드별로 엮어 유택 교수의 주변인들과 유택 교수의 일상적인 생활을 조금 과장 되고 코믹하게 그려낸다. 아직까지도 계속 출간되는 어마무시한 양에 19권을 사고는 더 이상 사기를 주저해서 뒤에 내용은 잘 모르지만 1권부터 19권까지의 내용으로도 유택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기에는 충분하다.   

    

몇 가지 에피소드를 살짝 들여볼까?

오랜만에 아내와 놀러간 바닷가 ..  유택 교수는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젊은이들을 불러 쓰레기를 치워 줄 것을 요구한다. 아내는 시비에 걸려 봉변을 당할까봐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유택을 빤히 보던 젊은이들은 인상을 쓰며 아무 말 없이 쓰레기를 치운다.

“당신도 참.. 나이든 사람이 젊은 사람 일에 참견했다가 칼 맞아 죽은 사건 모르세요?”

아내는 기겁하며 유택에게 소리친다.  유택교수는 담담하게 말한다.     

“주의를 주는 사람이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상대방에게 이해가 가도록 설명 해 주면 돼 ..”     

다음 날 아침 다시 만난 젊은 커플은 비를 맞고 걸어가는 유택 교수 부부에게 살가운 인사를 건네고 심지어는 자신들의 우산을 스스럼없이 준다. 아내는 그런 젊은이들과 담담하게 이야기를 주고 받는 자신의 남편을 보며 섣불리 젊은 커플을 두려워 하고 피했던 것을 겸연쩍어 한다.   

   

 불합리하고 공정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면 분노에 화부터 내고  상대방을 들이받으려고만 했던 나는 유택 교수의 말에 찔끔했다. 감정을 실어 이야기 하는 것은 상대방을 설득시키지도 못했고 관계만 악화시킬 뿐이었던 예전의 몇몇 일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상대방이 잘못을 했건 하지 않았건 불편한 감정부터 들게 하니 내가 옳았다고 하더라도 기분이 상해버린 상대방을 납득시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 후로는 감정을 실지 않고 이성적으로 이야기 하려고 애썼다. 급격한 변화는 없었지만 확실히 상대방에게 감정을 실지 않고 이성적으로 이야기할 때 조금 다른 반응을 보인다고 느꼈다.  질책 받는다고만 생각했던 상대방이 자신의 잘못을 빨리 인정을 하는 것을 보고  놀랍기도 했다.    

 


오오사코 사부로는 대학 시절 유택 교수에게 존경을 넘어 에로스적 사랑을 느끼게 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된다. 게이의 삶을 살게 된 사부로의 식당에 자신이 흠모했던 유택교수가 들어오자 사부로는 깜짝 놀라게 된다.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여장을 한  사부로를 다른 교수들은 신기해하며 가벼운 성희롱을 하지만  유택 교수는 말이 없다.

언제나 무덤덤하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유택 교수가 여장남자에게  놀라는 걸 보고 싶어 데리고 온 다른 교수들은 유택의 평온한 모습에 심술이 나기도 하고 기분이 상해 왜 놀라지 않느냐고 오히려 화를 낸다.

“(게이라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멋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녀 모두의 마음을 알 수 있으니까요. 넓은 시야로 사람을 볼 수 있다는 건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부로는 유택의 말에 움찔하며 감동한다. 유택은 한 술 더 떠서

“ 사회는 편견을 걷고 당신처럼 진지하게 사랑을 하는 사람을 인정해야 합니다. 법률 역시 결혼의 의미를 좀 더 확대시켜야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어떻습니까?”

라는 파격적인 말을 해서 사부로를 또 한 번 반하게 한다.

유택의 말에 자신감을 얻은 사부로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만 유택은 처음 들어 온 순간부터 그를 알고 있었고 그는 훌륭한 제자였다고 말해준다. 용기를 얻은 사부로는 자신을 사랑했던 식당 주인의 마음을 흔쾌히 받아주며 미래를 약속하게 된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대학교를 짓고 있는 인부들과 거리낌 없이 술자리를 하는 유택, 치매에 걸린 늙은 귀족의 안주인이 남편의 장례식에 정신을 놓고 가슴이 확 파인  원피스를 입고 새빨간 립스틱을 칠해 사람들을 기겁하게 했지만 그런 그녀에게 아름답다고 얘기하며 그녀와 춤을 추었던 유택, 길거리에서 자신에게 원조교제를 제안하는 여자아이에게 그녀의 재능과 가능성을 일깨워 주며 자신의 대학교에 와서 경제학을 공부하라고 설득하는 유택. 고서를 훔치러 들어온 도둑에게 자신이 읽은 감동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며 기꺼이 책을 다 내어주어 도둑의 인생을 바꿔버린 유택교수      

 유택의 매력은 교수라는 직업도 아닌, 늙어서도 잘생긴 외모가 아닌, 인간에 대한 진지한 자세와 편견 없는 시선에서 오는 무심하지만 따스한 애정이었다.      


원칙주의자이며 자신이 세운 삶의 기준을 평생토록 지켜가는 유택교수

꽉 막힌 틀 안에서 살아가는 것 같지만 견고한 자신의 넓은 울타리에 외롭고 지친 사람들을 단단히 받쳐줄 수 있는 멋진 꼰대

  지저분한 이해관계로 얼룩진 대학에서도  휘둘리지 않고 평생 학문의 길을 걸어가며  학생들에게 진심을 다하는 진짜 선생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던 이유도 그의 꼰대스러움이다.

  아마도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어쩔 수 없다는 체념으로 시류에 타협하며, 지키던 신념을 잃어버리는 자신들을 보며 당당하고 확고한 자신만의 길을 가는 진짜 어른 유택교수에게 위로와 힘을 얻기 위해 몇 년이 지나도  그를 그리워하며 찾았던 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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