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디캔디' 나기타 케이코 글 이가라시 유미코 그림
요즘 아이들은 캔디를 알려나
"괴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앞소절만 듣고도 "참고 참고 또 참지..."가 저절로 흥얼거리면서 나오면 아마도 내 나이 또래가 아닐까 싶다.
1975년에 나온 일본 순정 만화를 1977년 MBC 에서 만화영화로 방영하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온갖 핍박과 좌절에도 불굴의 의지로 일어서는 캔디와 주근깨 투성이 들창코가 무슨 매력이 있는지 (나중에 알고보니 미소녀였드만 그때는 못생긴 애가 무슨 재주로? 생각했다) 캔디에게 푹 빠져 정신을 못차리는 수많은 남자와의 러브스토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러브스토리의 중심에선 3명의 남자는 나중 웹툰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캐릭터와 거의 일치한다. (이게 원조인가?)
잘생기고, 츤데렐라이고, 부자고, 귀족이고, 다정하고, 차갑고, 후원자가 되어주고, 사랑했지만 떠나고, 뭐 지금 나오는 로맨스 남주의 전형적인 클리세들이 다 모였다.
난 캔디를 좋아하는 남자들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검은 머리에 이쁘고 얌전한 애니를 놔두고 정신 사납고 들창코 주근깨 사고뭉치가 뭐가 좋다고 그리들 목을 메는지...
애니가 부잣집에 입양가게 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이 말썽쟁이가 되는 연극을 감수하고, 사랑하는 테리우스가 자신을 위해 불구가 된 여인에 대한 죄책감에 캔디를 떠나도 쿨하게 보내 주고 괴로워도 슬퍼도 꾹 참고 밝고 명랑하고 한 남자 보내면 또 한 남자가 다가오고...
가식덩어리 그 자체였다.
괴로우면 울어야지 가지고 싶으면 적극적으로 뺏어야지 나도 힘들다고 소리쳐야지
얄밉고 싫었다.( 그런데 나중에 다시 찾아보니 내 기억에 왜곡이 굉장히 많더라 내가 멋대로 기억을 왜곡한 부분이 많았다)
내 친한 친구가 캔디같은 아이라면 어떨까
싫을 것 같았다. 그 완벽한 오뚝이 자세도 인간답지 않아 미울 것 같고 뭐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애가 수많은 남자들에게 사랑받는 것도 시샘이 날 것 같았다. 어린 마음에 묘하게 거부감이 드는 아이였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나를 보며 시무룩하게 말했다.
"널 보면 왠지 기분이 나빠. 나도 잘 살고 열심히 살고 있는데 너랑 얘기하다 보면 내가 잘 못 살고 있나 반성하게 돼 그런 기분이 들게 해서 너랑 얘기하면 우울해져"
돈 못 벌어 오는 남편과 뜻대로 되지 않는 아이들에 대한 하소연을 하며 징징거리고 있는 내게 친구가 한 소리는 너무 뜬금포라 어이가 없었다.
"뭐라는 거야? 지금 내가 얼마나 힘든 지 얘기하고 있는데!!!"
소리를 질렀더니 친구가 눈을 내리깔고 우물거리며 말했다.
"진짜 힘든 사람은 너처럼 얘기 하지 않아. 넌 힘들다고 하면서도 ,징징거리면서도 너무 당당하고 밝아.아무것도 없는 애가.. 그래서 얄미워"
아무것도 없으니까 더 열심히 살아야했고 힘들어도 도와줄 사람이 없으니 혼자 울다가 혼자 씩씩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비빌 언덕이 없으니 더 힘내서 살아야했다.
아 아 ...캔디야 네가 이런 심정이었겠구나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앞으로 나갈 방법밖에는 도리가 없어 그렇게 훌훌 털고 일어날 수밖에 없었을텐데 네 깊은 생채기는 보지 못 하고 무슨 애가 저리 당당하고 뻔뻔할까 못마땅했구나. 캔디를 다시 보고 싶었다.
시립도서관에 막내를 데리고 가서 엄마가 너무 좋아했던 만화라고 추천해줬다.( 시립도서관에 만화관이 따로 생긴걸 보고 시대가 많이 변했구나 느꼈다.우리 어릴적에는 만화를 보면 어른들이 공부는 안 하고 쓸데없는 걸 본다고 마구 야단치고 뺏기기까지 했는데... 지금 세상이 정말 행복하다)
그런데 만화를 읽어보던 막내의 반응이 영 시큰둥했다.
"뭔 막장이야? 왜 갑자기 말에서 떨어져 죽어? 뭔 노답 캐야?( 이 말이 뭔 말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얘가 잘생겼다구? 그림도 유치하구만..."
이놈이 감히 나의 안소니를..... 나의 추억을.....
그래... 그렇지... 요새 나오는 엄청난 퀄리티의 웹툰에 눈이 하늘끝까지 날아간 아이들이 무려 50년 전에 이 그림들이 눈에 찰 리가 없지
나의 감동이 너의 감동이 될 수가 없겠지 (막내가 요즘 빠져 있는 웹툰이라고 흥분해서 내게 보여준 웹툰이 있는데 도대체 이게 왜 좋은 지 이유가 궁금해 의문의 눈초리를 보내니 그런 내가 더 이상하다는 듯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더라)
그래서.......'유리가면'과 '베르샤이유의 장미'를 권하려다 말았다. 나의 추억은 나만 갖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