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생활 좀 해본 심리학자
평범한 직장인에게 몇 천, 몇 백만원이 아니라 단돈 몇 십만원도 아쉬울 때가 있는데, '1억'이라니 상상이 잘 안되는 제목일 수 있다. 조금만 생각을 달리해보자.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아둥바둥 살아가는가? 그리고 그렇게 아끼고 아낀 삶의 결과는 무엇인가?
90년대 비하면 지금 대한민국은 정말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을 옷만 봐도 알 수가 있다. 중학교를 다니면서 일부 친구들이 입는 비싼 옷을 보면서 어렴풋이 '브랜드(소위 메이커라 부르는)'에 눈을 뜨게 되었다. 당시 마리떼프랑소와저버, 리바이스, 게스, 엘리쎄, 나이키, 리복, 휠라 등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로 수많은 브랜드가 있었다. 집에 돈 좀 있는 친구들은 한 벌에 15만원, 20만원씩 하는 값비싼 청바지를 입고 와서 자랑을 하고, 다른 친구들이 입은 청바지가 진품인지 짝퉁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청바지 라벨에 찍힌 도장, 청바지 리벳 색깔 등을 보고 서로 낄낄 거리던 장면이 떠오른다.
* 생각하면 우스운 풍경이다(물론 지금도 '등골브레이커' 라는 브랜드들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지금 대한민국은 저런 브랜드들이 일상복이 되었을 정도로 발전했다.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유행하고 있던 휠라 브랜드의 가방(금액도 생각난다. 23,500원)이 너무 사고 싶어서 엄마에게 엄청 졸랐던 기억이 있는데, 엄마는 절대 허락해주지 않았다. 이유는 입학할 때 샀던 가방이 아직 새것이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그 때는 브랜드의 '브'자도 모르는 순진한 갓 초6을 졸업한 시기라 엄마가 사준 프로스펙스 가방이 새것이라는 이유로 즐거울 때였다. 이후에도 리바이스 청바지가 사고 싶었고, 미치코런던 맨투맨 티가 사고 싶었는데, 엄마는 용돈을 모아 사는 것 조차도 허락을 해주지 않았다.
* 이후, 대학을 가고, 군대를 가고, 조금씩 성인이 되어가면서 든 생각은 '저렇게 해 본들 과연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었다. 절약 정신이 늘어난 것도 아니고, 단지 부모-자식 간의 갈등만 남아 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부모는 자식이 원하는 것을 사주지 못했다는 생각, 자식은 그게 뭐라고 끝까지 안 사주셨을까 하는 생각).
나는 나중에 돈을 벌면 사고 싶은 것은 다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교 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느 정도 돈을 스스로 쓸 수 있을 때는 '생각하고 고민하는 시간에' 차라리 먼저 사보고 맘에 안들면(또는 불필요하면) 빨리 되팔자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이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을 때에는 사고 싶은 것은 그냥 사는 추세로 이어졌다.
* 여기서 한 가지 전제 조건!! '사고 싶은 것'들이란 것이 '명품'처럼 엄청난 고가의 물건들은 아니라는 것을 참고하자.
20대부터 30대 후반까지 그렇게 살았다. 결혼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와이프가 사고 싶은게 있으면 그냥 사라고 한다. 그리고 나도 사고 싶은 것은 사는 것이다. 집안 일 역시 마찬가지다. 보통 결혼하고 나서 양가에 용돈을 얼마를 주니마니 하는 것으로 부부 간 갈등 사례가 많은데, 처가집에 얼마를 주고 싶다고 하면 흔쾌히 주라고 한다. 그리고 당연히 우리 집에도 주는 것이다.
* 20대 때는 옷, 게임기, 카메라, 휴대폰 같은 것들이 관심사여서 (단통법 이전 시절)휴대폰은 반년에 한 번씩 바꾸기도 했다. 이후 30대에는 2~3년에 한 번씩 차를 바꾸기도 했다.
그래서 이렇게 쓴 돈이 얼마일까? 몇 십억? 몇 억? 안타깝지만 1억이 채 안된다.
* 요즘 시세로 스마트폰을 아무리 열심히 바꾼들 천만원 쓰기란 쉽지 않다.(아마도 천만원 쓰기 전에 자기가 먼저 지쳐서 바꾸기가 싫어질 것이다)
* 자동차를 2~3년에 한 번씩 바꾼들 1억을 쓸 수 있을까? 기존에 타던 차의 중고값이 이미 반(또는 그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에 역시 1억을 채우려면 최소 10년 정도 부지런히 차를 바꾸어야 할 것이다(위 전제조건을 참고하자. 고가의 자동차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 처가집에 용돈 역시 주고 싶은데로 주라고 하면, 오히려 많이 못 준다.
이렇게 살아본 결과, 40대 즈음에 생기는 한 가지 큰 변화는 '사고 싶은 것'이 별로 없어진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이 새로 나온들 이미 사고 싶은건 다 사서 써봤다. 신차가 나온들 새차 사는 기분은 이미 여러번 느껴봤다. 옷을 새로 사면 뭐할 것인가? 나의 내면이 그대로인면 새옷으로 아무리 치장을 한들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새옷의 감흥이 내면을 업그레이드 시켜 주지는 않는다.
* 돈 1억을 써보면 알 수 있게 되는 것들이다.
반대로 1억을 써보지 않으면 어떨까? 항상 고민하고, 작은 것 하나 아끼려고 아둥바둥하고, 니꺼 내꺼 나누고 더 가지려고 갈등하고. 아무 의미없는 고민과 갈등에 더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을까? 중요한 것은 이렇게 아끼고 더 가지려고 한들, 그 돈 역시 1억이다. 물론 어떤 사람은 절약하고 투자해서 1억 이상으로 불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 설사 더 불어나 본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래봤자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닌데.
직장 생활을 하다보면, 누구는 정년을 채우고 퇴직하는데, 어떤 누구는 직장생활 도중 생각보다 이른 시기에 삶을 마감하기도 한다. 아직 애들도 어리고 살아갈 날이 한창인데 말이다. 뉴스에서 연예인 누구가 몇 십억짜리 건물을 샀는데, 그게 몇 배가 더 늘었다느니, 축구선수 연봉이 얼마느니 하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보고 있으면서 정작 본인은 돈 1억도 내맘대로 못 써보고 세상을 하직한다는 것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 그깟 돈 1억! 더 있다고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없다고 거지가 되는 것도 아니다.
직장생활 열심히 해서 돈을 벌었으면 돈을 써라! 돈을 써야 아낄 수 있다. 돈을 써봐야 작은 것에 얽매이지 않는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하지만 '아니, 틀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전부는 아니더라도 절대 빼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 축의금/부의금, 몸만 가서 위로하고 축하해주면 욕 먹는다.
* 부모/자식 간에도 용돈 없이 육아 도와달라고 하면 갈등 밖에 남지 않는다.
* 후배에게 밥 한 그릇 사 주지 않으면서 선배 대접 받으려고 하면 뒷담화만 무성하다.
* 우리집만 챙기고 처가집은 나몰라라 하면 결국 부부 신뢰만 깨진다.
모두가 다 아는 대표적인 사례들 아닌가.
그러나, 돈 1억? 일반적인 정상생활 범위 내에서 사는 분들이라면 아무리 열심히 써 본들 생각보다 1억 채우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일반인들이 갑자기 몇 백만원짜리 명품 가방 사고, 고가의 수입차를 사보라는 의미가 아닌 것 정도는 이해할 것이라 미든다.
술자리에서 한 번씩 동료들이 제가 차 바꾼 것을 보면 돈이 많다고 합니다. 제가 1년에 한 두번 가족과 해외 여행 가는 것을 보면 역시나 돈이 많은 줄 압니다. 밥값 거리낌없이 내면 이 역시 돈이 많아서 그러는 줄 압니다. 저는 애가 사달라고 하는 것이 있으면 바로 사줍니다. 아이폰? 애플워치? 그깟게 뭐라고요(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저희 애는 부모에게 사달라는 것이 없습니다).
* 돈은 없습니다. 단지 그래봤자 돈 1억이기 때문에! 돈 1억 아껴본들 아무 의미 없기 때문에! 그냥 밥도 한 번 사고, 여행 가고 싶을 때 여행도 가고 하는 것 입니다. (그래도 요즘 차는 안 바꾼답니다^^; 차=차, 새차나 중고차나 그냥 차는 차 입니다;;;)
속시원하게 삽시다. 영원히 살 것도 아닌데, 그 깟 돈 1억도 내 맘대로 못 써보고 이 세상 떠난다면 너무 억울하자나요.
* (마지막 조촐한 심리학적 조언)아끼고 고민한다고 서로가 서로에게 주고받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을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