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완전히 심리적이다(2)

회사 생활 좀 해본 심리학자

앞의 글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브런치스토리의 5번째 글로 영어 관련 글을 쓰고 있으니, 제가 영어를 엄청 잘 하는 것으로 착각하시는 분이 (혹시나)있을까 하는 노파심에 말씀드리지만 저는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래도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아예 못 하는 사람은 아니겠지요?^^;


아마 저 같은 사람들이 굉장히 많을 것입니다. 학창시절 영어공부는 실전에서 전혀 효과를 보지 못하고, 어떤 외부 압박에 의해 영어를 하게 되었고, 하다보니 어떻게든 말하고 쓸줄은 알게 된 사람들 말입니다. 단지, 저는 심리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영어 공부 과정에서 느낀 몇 가지 심리학적 원리들을 생각해 본 것이죠. 사실 뒤돌아보면 초반에 비해서 장족의 발전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 2015년 하반기로 기억됩니다. 처음 미국 본토 땅을 밟았을 때 시카고 공항 입국장에서 출입국 공무원이 저에게 몇 마디 물어보는 영어가 머릿속에 입력도 되지 않은 채로 그대로 흘러나가는 경험 때문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던 것을 시작으로

* 2018년 독일 공동연구를 막 시작할 때에는 독일 연구자와 함께 회의를 해야 했는데, 준비한 내용 이후에 이어지는 자유토론 시간에는 시기적절 하게 영어단어가 떠오르지 않고, 영어 문장구성이 머릿속에서 꼬여 옆에 있는 (영어 좀 하는)직원의 도움을 받아 회의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 그래도 이런 시간들을 보내고 나니 몇 년 뒤에는 제가 영어 못하는 직원 2명을 데리고 스페인 출장을 가서 직접 회의를 주재하는데까지 성공했으니 나름 장족의 발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은 영어 관련 프로젝트들이 다 끝나고 나니 자연히 다시 영어 공부에 대한 열정도 함께 식어서 그 때의 수준이 유지나 되면 다행인데 이 조차도 의심스러운 상황입니다; 어쨌든, 이렇게 영어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느낀 심리학의 원리들을 이어서 정리해 보겠습니다.




앞의 글에서 저는 ‘한국에서 나고 한국어와 함께 자란 우리는 뼈 속까지 한국인이기 때문에 영어식 사고 라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 부분을 인정하는 것이 어쩌면 더 편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영어식으로 사고(영어 입력-> 바로 영어 출력)를 하려고 해도 우리 머릿속에서 자동적으로 작동되는 (말을 하는 경우에)‘한국어 생각(입력) - 영어 번역(인지적 사고) - 이후 영어 말하기(출력)’의 과정을 통제하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자동적이라는 단어 그대로 내 의지랑 상관없이 머릿속에서는 이렇게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영어를 듣는 경우에도 위 과정은 비슷하게 작동됩니다.

차라리 한국식 사고를 인정하면 어떻게 될까요? 오히려 위의 과정(입력-인지적 사고-출력)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요? 만약 우리의 목표가 ‘영어를 아주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영어로 적당히(어느 정도) 말할 수 있는 것’에 있다면 이것은 의외로 효율적인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우리는 영어로 말할 때 일단 머릿속에서 한국어 문장을 생각합니다. 문장 구성에는 문제가 없다는 전제하에 적절한 영어 단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영어가 나오지 않습니다. 앞의 글(1)에서 ‘한국어-영어 단어 매칭 오류’에 해당됩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내가 평소에 하는 한국식 말에 적합한 영어 단어들을 미리 생각해 두면 됩니다. 내가 말하려는 영어는 평소 내가 생각하고 말하는 한국어 범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평소 내가 말하는 한국어 단어들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거기에 맞는 영어 단어들을 떠올려 보는 훈련을 평소에 한다면 상황마다 나의 한국어 단어에 맞는 영어 단어들을 쉽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 (예1) 평소 내가 하는 말 중에 ‘주황색’이라는 단어가 있다. '주황색을 영어로 어떻게 표현하지?' 라는 고민에 부딪히면 영어가 막히지만 주황색이 아니라 ‘오렌지색'으로 생각해 보면 간단히 해결

* (예2)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은 정리 했니?' 라는 문장을 생각한다면, '이불'이 영어로 뭘까? 라는 생각에서 영어가 막힙니다. 만약 '잠자리'를 정리했느냐로 말을 고쳐 생각해 보면, 'organizing your bed'로 간단히 정리


요지는 우리는 내가 하는 한국어의 범주(주황색, 이불) 내에서 영어를 생각하려고 하는데, 이 말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한국어(오렌지색, 잠자리)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대체가능한 한국어 단어 범주에서는 의외로 알고 있는 영어 단어들이 상당히 많을 것입니다. 이것들을 평소에 연결짓는 훈련을 하면 영어 단어에서 막히는 문제들을 상당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다들 '중학교 수준의 영어단어만 알고 있어도 미국인과 대화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이다. 이것이 현실에서 작동되지 않는 이유는 중학교 수준의 영어 단어와 내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한국어 단어가 서로 매칭되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알고 있는 영어단어를 떠올기 위해서는 적절한 한국어 단어의 힌트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맞춰가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두 번째 오류로 언급한 하고 싶은 사례 입니다. 영어 단어는 준비되어 있는데 머릿속의 영어문장 재구성 과정에서, 특히 3형식 이상 복합문장의 재구성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도 해결방법이 있습니다. 맥락효과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성장해 오면서 한국어를 배우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상황마다 각자의 방법대로 말을 하는 자신만의 한국어 대화 맥락이 있습니다. 그 한국어 맥락의 범위에 해당되는 영어 문장을 구성하는 훈련을 평소에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회화책에 있는 영어문장대로 평소 한국어 문장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 (예3) 다양한 회화책에서는 회의 상황의 영어 문장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우리는 회의를 진행할 때 자신만의 말하는 방법들이 있습니다. 우연히 이것이 매칭된다면 공부한 영어회화가 그나마 작동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끊임없이 영어회화책에서 공부한 것과 자신의 방식대로 말하는 한국어 대화맥락 사이에서 인지적 부조화에 따른 오류가 발생할 것입니다. 한 번 다음 문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 안녕하세요. Kim 입니다. 먼길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오늘 회의는 ### 내용에 대해 진행을 할 예정입니다. 먼저 오늘 참석하신 분의 각자 소개를 하고, 내용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Hello, I’m Kim. Thank you for your attending despite of a long trip. The meeting agenda for today is ### . At first, I would like to introduce of who are attending this meeting. And then I will progress our main talk.)


전혀 영어 번역이나 자문을 받지 않고 평소 회의할 때 제가 말하는 한국어 문장을 떠오르는데로 기술하고 다시 영어로 정리해 본 것입니다. ‘먼길 오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제가 평소 한국어로 말하는 이 문장을 정확히 알려주는 회화책이 과연 있을까요? 아마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평소 내가 말하는 한국어식 문장 구성에 적합한 영어회화 문장을 생각해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우리가 한국식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더 편하다는 것을 인정하면 이 방법은 효과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언어를 배우는데 있어서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들이 있겠지만, 제가 위의 방법이 효과가 있다고 보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맥락(context)'입니다. 인지심리학의 주제 중 하나인 ‘맥락효과’는 언어공부에도 분명 영향을 미칩니다. 한국식 사고, 즉, 한국식으로 생각하고 거기에 맞는 영어를 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가장 친숙한 나의 언어 맥락에 맞추어 영어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오류들이 발생하는 주요 원인이 바로 나의 한국어식 사고, 나의 한국어식 말하기 맥락과 책에서 공부한 영어가 적절히 매치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이라 저는 생각했습니다.

* 그래서 위의 방법들을 염두에 두고 평소 내가 생각하는 한국어에 맞는 영어 단어떠올리기 또는 영어문장 구성해보기를 머릿 속으로 많이 연습했습니다. 저는 하루에 운전하는 시간이 제법 되기 때문에 운전하면서 떠오르는 한국식 생각들을 적절한 영어단어와 문장으로 바꿔보고 혼자 웅얼거리며 말을 해보는 식입니다.


물론 영어를 말하게 되는데 있어 위의 간단한 심리학적 원리 이외에 영어를 해야 하는 강력한 동기부여, 그리고 위의 방법과 행동들을 지속할 수 있는 의지와 실행력 등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특히, 많이 듣고 많이 써봐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 입니다. 언급한 것 이외에도 제가 특히 중요하다고 느낀 것은 '영어쓰기' 였습니다. 해외 연구자와 가장 쉽게 의사소통하는 것이 영어메일이었으니 자연히 머릿속의 한국어를 영어로 쓰는 것이 연습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그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것이 주는 효과는 상당합니다.

심리학을 공부하면 일상속에서 적용해 볼 수 있는 다양한 원리들이 많습니다. 영어공부에도 간단한 심리학의 원리들이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 참 흥미롭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심리학을 공부해서 상대방을 변화시키겠다? 이것은 불가능한 이야기 입니다. 그러나 나는 바뀔 수 있습니다:) 내가 바뀌면 상대방이 바뀌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질 수 있겠죠? 앞으로의 글에도 심리학의 다양한 원리들이 우리 직장과 일상속에서 어떻게 적용되될 수 있는지, 저의 경험에 비추어 정리를 이어나가 보겠습니다!




글을 쓰고 보니, 영어 전문가들이 보면 어설픈 초보수준의 영어나 하는 사람의 우스운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어설프면 어떻습니까! 나는 '영어를 잘 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고, 적당히(어느 정도) 말하고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 목표인 사람'이기 때문에 이정도면 만족합니다. 그 동안 경험에 비추어 봐도 문법과 발음이 영어를 말하고 쓰는데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다. 위에 제가 예시로 언급한 떠오르는대로 정리한 영어 문장에도 문법적 오류가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 말을 읽고 듣는 외국인들이 저의 의도를 이해하는데에는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인도사람이, 중국사람이, 일본사람이 어설픈 한국어 발음과 문장으로 이야기해도 우리가 이해하는데 문제가 없듯이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인데, 할 수 있는 것은 못하는 것과의는 천지차이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의 영어공부 과정에서 경험한 간단한 심리학적 원리들도 참고해 볼만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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