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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가 소환한 추억

by 권영순

토끼가 돌아왔다. 이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다. 몇 년간 토성에 살던 토끼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 많던 토끼는 어디로 갔을까. 야채를 들고 와 토끼 먹이를 챙기던 분들도 보이지 않은 지 꽤 된 것 같다. 나는 중성화 사업으로 토끼가 저절로 소멸되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애완용으로 기르던 토끼를 공원에 유기하자 관리공단 측에서 안내문까지 써 붙였었다. 그리고 중성화 사업을 통해 토끼가 더 이상 새끼를 낳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토성에서 토끼를 볼 수 없게 된 지 내 기억에 3년은 된 것 같다.

이해는 간다. 토성은 흙으로 만든 성이다. 토끼에 의해 훼손되는 문화재를 그대로 둘 수 없었을 것이다.

며칠 전이다. 토성을 도는 데 연한 갈색 새끼 토끼가 토끼풀을 맛나게 뜯고 있었다. 처음에는 청설모를 잘 못 본지 알았다. 몸집이 비슷한 데다 색도 갈색에 가까워서다.

산책로에서 우연히 발견한 어린 토끼

새끼로 보이는 녀석은 내가 다가가 사진을 찍어도 먹는 일에 집중했다. 수년 동안 보지 못했던 토끼의 발견은 잠시 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자연의 놀라운 복원력일까? 아니면 그 누군가 또 토끼를 유기한 건가?

유기된 녀석이라면 보호가 필요한 게 아닌가 싶었다. 지금이야 봄이라 녀석이 먹을 게 지천이지만 과연 여기서 혼자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 생겼다.

내게도 토끼에 대한 기억이 있다. 지금은 까마득한 1960년대. 화성 비봉 뱅골 집에 살 때였다. 당시는 초등학교도 월사금( 매달 학교에 돈을 내는 제도)을 냈다. 농촌이라 월사금이 만만치 않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래서 중간에 학교를 그만두거나 아예 입학조차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꽤 있었다.

그러니 등록금이 훨씬 비싼 중학교 진학은 심각한 문제였을 것이다. 사실 엄두도 못 내는 경우가 내 주변에도 허다했다.

안뱅골에 살던 그 오빠는 나보다 서너 학년 위였다. 그 집에서 마당에 토끼를 기른다는 소리를 듣고 구경을 갔다. 장에서 집토끼를 사다 바깥마당에 얼기설기 토끼장을 지어 기르기 시작해 아무나 들여다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절대 놓칠 수 없는 토끼 구경이었기에 소문을 듣자마자 달려간 거였다.

토끼를 기른 이유는 번식력이 왕성해 금방금방 새끼를 낳는데 녀석들을 장날 내다 팔면 중학교 교복 살 돈이랑 학비도 보탤 수 있다는 소리를 누가 해 준 모양이었다.

장터까지 가서 토끼를 사다 그 오빠는 내가 봐도 상당히 정성을 들여 기르는 게 보였다.

처음에는 토끼장을 만들어 거기서 길렀다. 농사를 짓는 시골이니 토끼 먹이에 대한 걱정도 필요 없었을 게 분명했다. 나 같은 어중이떠중이들이 토끼를 구경하러 가며 먹이를 수시로 가져가기도 했고. 항상 토끼장에는 먹이가 넘쳐났다.

그리고 그 누군가의 말대로 토끼는 왕성한 번식력을 자랑하기 시작한 것 같다. 토끼장이 너무 작다고 느낀 그 집에서는 바깥 마당 둘레에 그물을 치고 아예 토끼를 놓아 먹였다. 그물망이 등장한 뒤로 더이상 토끼를 구경할 수 없게 되어 아쉬워하던 기억이다.

문제는 그해 가을에 일어났다. 농사를 짓는 집의 바깥 마당은 온갖 양곡들을 거두어들이는 최종 작업장이다. 마당은 밭이나 논에서 거둬들인 알곡들을 손질하고 널어 말려야 한다. 벼나 보리이삭만이 아니라 수수, 콩, 깨 등 논밭에서 거둬들인 양곡들의 손질을 위한 중간 집하장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바깥 마당이다.

사극 드라마에 나오는 마당쇠가 하는 일 중 하나가 안팎 마당의 쓰레질이다. 쓸고 또 쓸어 반질반질하게 닦여 있어야 하는 곳이라는 의미다. 미당 서정주의 수필집에도 깨끗하게 쓸고 닦은 마당은 보름달도 비추는 거울이라는 비유가 있다. 그만큼 손이 가고 정성도 들이는 장소다.

한 가정의 일 년 양식과 각종 비용으로 써야 하는 중요한 양식 집하장이니 마당이 얼마나 중요한 곳이겠는가? 그 오빠가 몰랐던 것 중 하나는 토끼들의 습성이었다. 바로 땅에 굴을 파고 산다는 점이었다.

곧 마당 여기저기에 구멍이 생기며 무너져 내리는 곳이 생겼다. 토끼굴은 반듯하고 깔끔하게 쓸고 다져놓은 마당을 여기저기 허물어 놓았다. 토끼의 왕성한 번식 덕이었다. 토끼를 집에서 길러 본 사람들은 번식력 못지않은 식욕에 놀란다. 종일 먹고 배변활동을 한다. 잠시도 입을 가만두지 않는다. 늘 오물거리며 뭘 먹는 존재가 토끼다.

세 계절이 바뀌기 전에 그 집 마당은 다른 집과 확연히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황폐화되어 타작도 알곡들을 널어말리는 장소로도 쓰임이 불가능해졌다.

토끼가 굴을 판 구멍을 막아버려도 소용이 없는 것 같았다. 굴 어딘가에 들어간 토끼들은 우리들에게 얼굴도 보여주지 않았다. 정확히 토끼가 몇 마리인지 알 수 없게 되자 가족들 모두 토끼 생포 작전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된 것 같았다.

생애 최초의 사업에서 실패하게 된 그 오빠는 토끼라면 진저리가 났을지도 모른다. 나야 오물거리며 내가 주는 야채를 받아먹는 앙증맞은 토끼를 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그 기억 덕에 나는 관리공단에서 토성을 지키기 위해 안타깝지만 토끼들 방생을 막는 이유를 이해한다.

공원 동식물의 다양한 존재는 나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토성 보존을 위해 각종 노력을 들이는 걸 자주 목격하는 나로서는 오랜만에 발견된 토끼의 앞날이 걱정되는 건 사실이다. 더구나 다음 날 엄마 아빠로 보이는 토끼들을 보니 이런저런 걱정이 생긴다. 이것도 오지랍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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