냥이들 밥을 주고 집에 돌아와 옷을 벗을 때였다. 후드 모자에서 뭔가가 후드득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걸 집어 드니 뽕나무 열매 오디다. 진한 보라색 오디를 집어 드니 손에 금방 물이 든다. 후드 모자에도 보라색 물이 살짝 배어 있다. 혹시 오디만이 아니라 다른 게 더 집까지 따라온 게 아닌지 옷을 샅샅이 털어가며 수색했다. 다행히 농익은 오디 한 개 이외에는 더 이상 없다. 점박이 밥을 막무가내로 빼앗으려는 다롱이와 실랑이를 하다 뽕나무 주변을 왔다갔다한 게 문제였나 보다.
작년 일이다. 냥이들 집이 뽕나무와 명자나무 아래 있었다. 나무들이 사이좋게 들어선 언덕배기 주위에 집을 숨겨두었었다.
명자나무와 들 수국은 봄에 꽃이 피니 구분이 쉬웠다. 그래서 늦봄이 되도록 명자나무 주위에 제법 키가 크고 우거진 뽕나무도 자리하고 있는지 몰랐다.
나처럼 시골에서 자란 사람 치고 뽕나무 열매 오디에 대한 추억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손가락 마디보다 더 굵은 진보라색 오디의 단맛은 특별했다. 오디는 하교할 때 고픈 배를 채워주는 간식이었다. 그런 뽕나무에도 함정이 있었다. 한참 부지런히 오디를 따서 입에 넣다가도 나를 움찔하게 하는 존재가 있어서다. 누에였다. 누에의 하얀 몸체가 뽕잎 사이에서 꼼질거리는 걸 발견하면 오디를 따 부지런히 입으로 가져가던 손길이 저절로 주춤거려졌다. 그리고, 왕성하던 식욕이 사라지는 기적이 그 순간 일어났다.
작년 일이다. 바람에 날아갔는지 냥이들 밥그릇이 나무 둥치 사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할 수 없이 뽕나무 가지 아래를 기어 들어가야 했다. 무릎으로 기어야 하는 낮은 포복이 고난도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릇들을 간신히 꺼내 닦아 밥을 주고 토성까지 한 바퀴 돌고 집에 와 후드 겉옷을 벗었을 때였다. 손가락 길이만 한 흰색 벌레가 후드 모자에서 꼬물거렸다.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잃은 것 같았다.
50년 전이었다면 나도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옷을 움켜쥐고 바로 뒷베란다로 나가 4층에서 벌레를 털어버렸다. 입었던 옷을 모두 벗어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본 것은 연두벌레나 자벌레가 아니었다. 분명 흰색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누에였다. 공원에는 뽕나무들이 꽤 있다. 추억의 맛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오디를 따 먹는 모습도 종종 본다. 당연히 뽕잎을 먹고사는 누에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무슨 짓을 한 건가? 뽕나무 아래 널브러진 밥그릇을 꺼내느라 기어들어간 건 바로 나였다. 어쩌면 뽕잎 밥을 먹고 있던 누에 입장에서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 정도의 천지개벽 사건에 연루된 터.
아무 생각없이 밥 먹던 누에를 건드려 모자 속으로 허락도 없이 집어넣더니 땡볕 토성까지 한 바퀴 돌고 평생 구경해 보기 어려운 이상한 집이라는 곳으로 데려와 4층에서 추락사??? 를 당하기까지???
나로서도 예기치 않은 사고를 일으킨 거나 마찬가지였다. 일찍 알아차렸다면 다소 귀찮기는 해도 누에가 살던 뽕나무에 데려다 주기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고는 이미 치고 난 뒤! 어떻게 하겠나?
뱅골 우리 동네에도 부업으로 양잠을 하는 집이 꽤 있었다. 그런 집 중 하나인 할머니의 친정 집 잠사에서 잠을 잔 적이 있다. 아마 우리 집에 무슨 사정이 생겨 그 집에서 기르는 누에와 하루 잠을 잔 것 같다. 누에들과 동침한 그 밤이 가끔 기억나는 이유가 있다. 뽕잎을 잔뜩 깔아 둔 잠실 채반에서 밤새도록 솨아아~하는 소나기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지금 돌아보면 그렇게 먹성 좋은 누에를 부업으로 기르는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밤새 소나기 소리를 내며 먹어대는 누에들의 먹이를 대기 위해 얼마나 많은 뽕잎을 조달해야 할까를 생각해 보면.
뽕나무 아래 고양이 집은 중성화 수술 실패로 아로가 죽고 고등어까지 사라진 뒤 냥이들이 다 입양되면서 제법 긴 시간 방치되었었다.
나만해도 그 언덕배기를 잘 올려다보지 않았다. 죽은 아로와 새끼들의 잔상이 남아 나를 씁쓸하게 만들어서다. 냥이들이 모두 입양되고 홀로 남은 다롱이가 거기서 겨울을 나는 것 같았다. 다롱이는 멀리서도 나를 알아보고 쫓아와 밥을 주러 굳이 거기까지 올라갈 필요가 없었다.
봄이 오고 나뭇잎이 우거지자 독립한 아롱이 두 번째 새끼 점박이가 그 주변에서 밥을 기다린다. 할 수 없이 뭇사람들의 눈을 피해 거기서 밥을 주게 되어 다시 그곳을 드나들게 되었다.
얼마 전 그곳에서 서성대던 아주머니 한 분이 말을 거셨다. 검은 턱시도 냥이가 사람 잘 따르는 삼색 고양이를 못살게 굴고 쫓아낸다는 이야기였다. 사람 주변에 와서 앉아 있기도 하고 엄청 착하다고 하기에 나도 모르게 실소가 나왔다. 그 녀석이 다롱이라는 걸 내가 모르면 누가 알까? 하지만 그냥 모른 척했다.
얼룩소 무늬 점박이는 체격이 아주 작다. 태어난 지 일 년이 다 되어가는 데 제대로 자라지 않는 이유는 뭘까? 우리 집에서 입양한 오빠 까미 덩치의 3분의 2나 될까 말까 정도다.
아직 공원에 남아 살아가는 아롱이 새끼 두 마리가 오늘따라 마음에 걸린다. 점박이라도 뽕나무 아래 놓인 그 집에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정착해 살았으면 좋으련만. 그곳도 삶의 현장이라 갈수록 영역 경쟁이 심해지는 게 눈에 보이니 어쩌면 좋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