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마음

by 권영순


작은 아들이 독립해 살고 있는 화곡동을 가기 위해 아침부터 준비를 했다. 뭘 해다 줘도 잘 먹는다는 보장은 없다. 거의 집에서 밥이라는 걸 먹지 않는 눈치다. 가져갈 걸 싸면서 고양이 나리에게 줄 간식도 챙겼다.


신경숙 소설 <엄마를 부탁해>에 나오는 이야기다. 평소 심각한 두통에 시달렸던 엄마는 어떤 병에 걸렸는지 알지 못한다. 자식들 집을 가기 위해 서울에 왔다 복잡한 전철 출입문에서 사람들에게 밀려 남편과 헤어지고 길을 잃는다. 목적지는 물론 기억까지 잃은 상태의 엄마는 서울 여기저기를 홀로 헤맨다. 그런 엄마가 찾아가는 곳이 있다. 과거 자식들이 독립해 살았던 곳이다.

행방불명된 엄마의 흔적을 찾다 자식들은 자신들이 과거에 살았던 집 주변을 차례로 다녀갔음을 알게 된다. 그제야 엄마에 대해 자신들이 정말 무관심했음을 깨닫는다. 끝내 엄마를 찾지 못한 딸은 바티칸 피에타 상 앞에 무릎을 꿇고 성모 마리아에게 엄마를 부탁한다.

읽은 지 오래된 책에서도 엄마가 자식들이 살았던 집을 찾아가는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자식들이 사는 곳을 찾아가는 엄마의 마음은 비슷해서가 아닐까?

독립해 나가 사는 자식들의 안위. 그리고 행여나 삼시 세 끼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사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과 안쓰러움.

작은 아들이 원룸을 얻어 독립해 나갔을 때는 아직 늙고 병드신 부모님 두 분이 생존해 계셨다. 아들네 가봐야 뭘 할 수도 없이 좁았다. 무엇보다 그때는 독립한 아들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다는 게 맞을 것이다.

작은 아들은 3년 만에 방 두 칸짜리 빌라를 얻어 이사하고 아롱이 딸 나리를 입양했다. 나는 그제야 일주일에 한 번은 화곡동을 오가려고 한다. 돌봐야 할 부모님들까지 돌아가셔 시간 여유가 생긴 것도 있다.

일을 하는 아들 때문에 긴 시간 혼자 있어야 하는 나리도 겸사겸사 들여다보기 위해서다. 무슨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 그래도 가져간 간식을 주면 나리는 어린 고양이답게 잘 먹어치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는다. 사실은 아들 모르게 간식을 챙겨 주는 데도 알아주지 않는다. 집이 좁아 활동량이 부족해 비만이 될까 철저히 먹이 양을 지키는 아들 몰래 말이다.

중성화를 마치고 돌아와 밥을 주러 간 나를 따라다니는 아롱이. 까미와 나리 엄마다
식탁에 올라와 대놓고 치대는 까미. 별 반응이 없으면 노트북 뒤에 숨어 전원을 꺼버린다. 갈수록 점점이다.

아들 집 냉장고에서 오래된 먹거리들을 치우는데 문득 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가 오신다는 연락을 받으면 냉장고 정리가 필수였다. 엄마가 주셨는데 미처 못 먹은 음식물을 대강 치워내야 했다. 직장에 다니다 보니 엄마가 주신 걸 까맣게 잊어버리는 게 태반이었기 때문이다. 그걸 들키는 게 미안했다. 뭐 하나 정성을 들이지 않은 게 없어서다. 그 마음을 내가 모르면 누가 알까?

작은 아들도 웬만하면 내가 주는 걸 어떻게든 먹으려고 한단다. 다만 먹을 시간이 없다는 게 문제지만.

고양이에게도 모성이 있을까? 나는 아롱이가 새끼들을 두 번이나 낳아 기르는 걸 지근거리에서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아롱이는 새끼 중 누구라도 자기 밥그릇에 달려들면 곧바로 먹는 걸 멈추고 물러난다. 그걸 보면 마음이 짠했다. 태어난 지 일 년 만에 엄마가 된 녀석이라 더 그랬다. 뭘 안다고 당연히 물러날까 싶었다. 저도 배가 고플 텐데. 새끼들이 배를 불리고 물러나 그루밍을 하는 걸 보고서야 남은 걸 핦아 먹었다.

아롱이에 대한 사랑이 그냥 생겨난 건 아니다. 왼쪽 눈이 떠지지도 않을 정도로 다친 까미를 수시로 핥아주던 모습도 잊을 수 없다. 안전한 밥자리를 새끼들에게 양보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건 또 얼마나 애잔한지?

그래서 더 애틋하고 마음이 쓰이는 모양이다. 나도 엄마이기에 그 행동 하나하나가 님들 이야기로 보이지 않아서가 아닐까? 고양이나 사람이나 자식을 아끼는 엄마의 마음은 결국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늘 정원 전망대. 최근 그 주변으로 옮긴 아롱이를 찾아 경사진 길을 헉헉거리며 올라간다. 아이고 힘들어!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래도 가능하면 얼마 전 중성화된 점박이가 아롱이 근처에 있었으면 좋겠다. 여기저기 목덜미 주변을 물려 상처가 아물지 않고 늘어나는 점박이가 걱정되어서다.

중성화를 위해 병원에 갔을 때 자꾸 상처가 생기는 이유를 물었더니 힘이 너무 약해 그렇다는 점박이. 목과 귀 얼굴까지 물어뜯긴 상처 투성이다.

아롱이는 이 구역 최종결자. 여왕님이다. 그 딸이니 아롱이 주변에 있으면 적어도 누군가 자꾸 물어뜯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인 일로 약간 한산한 9호선 전철을 탔다. 문득 2년 전 코로나 와중에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다. 벌써 대상이다. 천안 공원묘원 풍광이 그려진다. 애써 그때의 괴로운 기억을 지우고 일부러 아롱이와 나리를 생각한다. 오늘은 저녁을 먹고 산책 삼아 아롱이와 점박이를 한 번 더 보고 와야겠다. 밤이 되면 사람들 출입이 드물어진다. 그러면 나를 따라 언덕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뛰어다니다 다가와 비비기도 하는 고양이 모녀에게 간식도 먹이고 좀 놀아주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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