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희 소설 <65세>를 읽고
용인에 사시는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 기흥도서관을 구경시켜 주셨다. 도서관 전망이 좋았다. 시야가 탁 트여 시원한 느낌이었다. 녹음 우거진 나무들이 보이는 경관 좋은 곳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부러웠다. 책 내용이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올 것 같이 보였다.
도서관 주변 산책로를 걷다 벤치에 앉아 잠시 쉬는데 선생님이 가방을 뒤적거리셨다.
과자 한 봉지와 책이 딸려 나왔다. 만남이 있을 때마다 늘 뭔가를 챙겨 주시긴 했으나 책은 좀 의외였다. 전직이지만 수학 교사가 국어 선생한테 책을 권하는 일은 아주 드물기 때문이다. 물론 퇴직 후 도서관 봉사를 하시면서 내가 읽을만한 신간을 가끔 소개해 주시긴 하셨다.
친구에게 받은 책인데 읽어보라며 건네신 책 이름은 <65세>. 언뜻 제목만 보고 에세인가? 했었다. 알음알음 아는 교사였던 분이 쓰신 책인데 나에게 꼭 맞을 거 같아 들고 왔노라고 하셨다.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인 노년의 시작은 65세. 어르신 대접을 지하철 무임승차권을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65세가 곧 닥칠 내게 꼭 필요한 책이니 미리 읽고 준비하라는 뜻이 담기신 건가? 이렇게 넘겨짚었다.
막상 책장을 넘기다 보니 내려놓을 수 없었다. 만만치 않은 가족사를 지닌 나로서는 지나온 수십 년의 시간들을 이 책을 읽으며 복기한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복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도 작가와 거의 같은 시간을 살아오며 비슷한 일을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내 또래를 부르는 말이 있다. 낀 세대!
작가는 6.25 전쟁 직후 태어난 55년생. 전쟁을 겪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때 태어나 대학을 다니고 교사가 된 사람들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 있다. 적어도 가정과 사회에 깊은 책무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 이 작품 안에도 낀 세대로 살며 책무와 함께 겪을 수밖에 없는 아픔이 곳곳에 있었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부모와 자식에 대한 책무. 거기에 교사로서의 높은 도덕성. 그걸 사회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교육받고 당연히 받아들이지 않으면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는 게 맞을 것이다.
부모의 헌신으로 대학을 다녔으니 노년의 부양을 나 몰라라 할 수가 없었다. 노부모 부양이 길어져 은퇴를 하고도 벗어나지 못하고 허덕거리는 신 노년층. 경제 성장은 수직 상승할 때였는데도 자녀들은 부모의 도움을 받아 키워야 했다. 그걸 노년이 되어서도 짐 지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국가는 숫자 파악이나 하고 있을까?
교사 월급으로 전일제 가정부를 두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회는 자녀를 키우는데 안전한 그물망을 전혀 갖추지 못한 상태. 오롯이 개인이 짐 져야 했다. 가사와 자녀 양육 거기에 직장생활까지. 토요일 근무는 당연하고 수시로 휴일 근무를 해도 수당이란 게 없던 시절. 교문 지도 아침 자습 보충 수업 점심마저 급식 지도 하교 후 청소 및 방과 후 수업과 생활지도. 헤아리기도 힘든 그걸 다 해내야 했다. 그나마 안정적인 교육 공무원이라며 긍지를 가졌던가?
아들 둘을 사설 유아원이나 학원에 맡기고 허겁지겁 허둥지둥 내가 살아온 날들이 <65세>에도 기록되어 있었다. 너무 아득해서 절대 되돌리고 싶지 않은 시간들이다.
은퇴를 해서는 여유가 생겼을까? 내 주변 친구 대부분은 갈수록 얼굴 보기가 힘들다. 과거 힘들었던 자녀 양육의 경험 때문에 손주 돌보미로 나설 수밖에 없는 우리 낀 세대의 그늘 탓이다. 무엇보다 아이는 낳으라며 양육의 책임은 가족이 짐 져야 하는 사회 덕분이다. 애잔하다.
노부모만이 아니라 자식들 부양에서도 벗어나지 못한 우리 세대 문제를 짚어낸 작품이 왜 없는지 나는 알 것 같다. 자신이 가진 재능을 펼쳐 보기는커녕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고 세상 바쁘게 오늘도 허덕거리며 살아가고 있어서다.
직장생활 독박 육아 가사 전담까지 해야 했던 내 또래 여성들의 삶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 책!
자녀들 결혼이 늦어지면 양육 기간도 길어진다. 자녀가 결혼하면 손자녀 육아 전쟁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팔순이나 구순이 넘어가는 노부모 돌봄까지 벗어날 길 없는 의무의 연장선에서 우리 세대의 악전고투를 이 책에서는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책을 덮으며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책을 읽어가며 오롯이 짐 져야 했던 생활의 무게에 어린 아들 둘을 키우던 젊은 엄마 시절의 나에게 저절로 손을 내밀었다. 위로를 건네지 않을 수 없었다.
책 속에 나온 대로 어느 카페에 가던 1인 1잔 시키는 걸 망설이지 말아야겠다. 당장 고쳐야겠다. 어쩌다 나를 위해 쓰는 적은 돈인데 카페 사장님 눈치까지 보지는 말고 살자고 다짐한다. 친구도 백만 년 만에 한 번 만나는 처지에 말이다. 그걸 아껴 무엇하리?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짧은 건 분명한데 이제 미련 좀 그만 떨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