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
아롱이는 두 번째로 새끼들 셋을 데리고 나왔다. 정확히 말하면 이번에도 셋을 안전한 밥자리로 우리에게 데려다준 거나 마찬가지다. 첫 번 새끼들은 네 마리였는데. 먹을 입이 줄었다는 걸 기뻐해야 하나???
어느 날 은토끼님이 이번 새끼들은 모두 암컷이라고 하셨다. 설마~ 했다. 하지만 셋 다 암컷이 맞았다.
셋 중 나리는 작은 아들이 입양했다. 처음에는 어찌나 내외를 하는지 제대로 키울 수 있으려나 싶었는데 지금은 침대를 싱글에서 킹으로 바꿔 가며 함께 뒹굴 정도로 동고동락하는 사이가 됐다. 고양이 나리가 차지하는 자리가 갈수록 커져 어쩔 수 없단다.
그렇게 빈 집에 들어가기 싫어하더니. 지금은 나리가 발소리만 듣고도 문 앞에 나와 앉아 맞이한단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집에서 기다릴 나리를 생각하면 발걸음이 저절로 빨라지겠지.
작은 아들은 초등학교 시절 아무도 없는 빈집에 들어오는 게 싫다며 고양이를 생일 선물로 사 달라고 한 전적이 있다. 그때부터 우리 집은 이런저런 사연의 냥이들이 있었다. 심지어 남자 중학교에 근무할 때는 수업을 하러 들어간 교실에서 학생들이 던지기를 하고 노는 새끼 고양이를 빼앗아 데리고 들어 온 적도 있다.
나리가 입양되고 공원에 남은 두 녀석 중 고등어는 보통 인상파가 아니다. 경계도 무척 심하다. 고등어 무늬에 인상을 팍 쓰면 '나 성격 대단한 놈이야?'라는 느낌이 팍팍 드는 녀석이라 수컷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암컷.
특기는 배수구 탐험! 자주 배수구 안에서 냐옹 소리로 존재를 알린다. 처음에는 어떻게 구조해야 하나 안절부절못했다. 하지만 고양이는 목숨이 여러 개라는 소리도 있다. 들어갔으니 알아서 나오겠지 했더니 다음 날 아무렇지도 않게 나와 있다.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엄마 아롱이와 딸 점박이. 둘 다 지난봄에 중성화를 시켰다. 얼룩 젖소 무늬 점박이도 이른 봄에 새끼를 낳았었다. 턱시도 한 마리였다. 박물관 천정에 숨겨둔 새끼가 울자 직원들이 데려다 은토끼님에게 보내셨다. 곧바로 동네분에게 입양이 되었으나 너무 약하게 태어났는지 무지개다리를 건너갔다.
어미도 약하게 태어났단다. 특히 귀는 상처가 장난 아니다. 결국 우리의 특단 대책은 제 엄마 아롱이에게 데려다 주기!
둘 다 중성화가 된 덕분인지 아니면 우리 설명을 찰떡같이 알아들은 건지 점박이는 제 엄마 아롱이 옆에서 지내며 상처가 거의 아물어 가고 있다. 츄르를 먹이며 약을 발라줘도 다음 날이면 새로운 상처가 생기더니 얼마나 다행인지.
새로운 상처를 발견할 때마다 내 스트레스 수치도 수직 상승을 했다. 나도 모르게 ‘어떤 놈의 시키가 그랬어!!!’라며 상욕을 해 댔다. 이제 상처 대신 그 자리에 흰 털이 나온다.
공원 고양이계도 족보와 엄연한 위계가 있어 보인다. 아롱이는 공원 고양이계의 최종결자 여왕님이다. 여왕님 아롱이 옆은 누구보다 안전할 것이라고 우리는 짐작했다. 나는 아롱이가 어떤 수컷을 만나도 코비비기 인사를 하는 걸 여러 번 봤다. 물론 4년 동안 상처 하나 없기도 하고. 아롱이는 보통 여우가 아니다. 아니, 고양인가?
점박이는 새끼답게 제 엄마 아롱이 밥을 지금도 가로챈다. 그래도 아롱이는 나무라지 않는다. 그것도 신기하다.
요즘은 여름이라 바람도 쏘일 겸 산책 삼아 저녁이면 자주 나와 본다. 엄마와 딸은 툭툭 장난도 치고 아옹다옹 거리는 모습도 자주 보여준다. 밥을 다 먹고도 나를 따라 왔다 갔다 하거나 어디 앉기라도 하면 내 주변에 앉아 졸기도 한다. 산책 온 개를 피하지도 않아 걱정이 될 때도 있지만 나를 보호자로 여기는 것 같아 짠하다. 입양을 해 주지 못하니 더 안타깝다.
엄마와 딸이 지금 지내는 곳은 공원에서도 지대가 높다. 시야가 탁 트여 있다. 정원수도 잘 가꿔 놓아 냥이들이 기척을 숨기기도 어렵지 않다.
비교적 안전한 여기서 밥은 잘 챙겨 줄 테니 어디 가지 말라고 내일 다시 오겠다며 돌아선다. 자기들 영역에서 더 따라나서지는 않지만 두고 올 때마다 내 뒷머리를 잡아당기는 느낌은 오늘도 마찬가지다.
한쪽 귀는 중성화로 잘리고 한쪽은 물어 뜯겨 너덜너덜한 귀에 목덜미 여기저기 상처 투성이인 점박이가 제 엄마 옆에서라도 오늘도 안전한 밤을 보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