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호와 백양사에서 가을을 걷다

1. 장성호 테크 길과 황금빛 출렁다리의 가을길

by 권영순

새벽 6시 20분.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추워진다는 소식은 듣고 있었다. 아직 어둑한 기운이 남아 있어서인지 찬기가 확 끼쳐온다. 10월 중순인데도 가을에서 겨울로 부지런히 달려가는 분위기라 더 스산해 나도 모르게 움츠러든다.

행여 귀요미가 보이면 밥을 주고 가려고 일단 공원 박물관으로 향했다. 돌아올 시간은 밤 10시나 되어야 한다. 밤이면 귀요미를 찾을 수 없다. 굳이 새벽에 간 이유다. 없었다. 대신 별로 반갑지 않은 다롱이가 억새숲에서 나와 엉긴다. 눈치가 천단 보다 더 많은 녀석에게 할 수 없이 새벽밥을 챙겨 먹이고 서둘러 잠실역으로 가는 시내버스에 탑승.

7시 5분. 무사히 꿈길 여행 관광버스를 탔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 대피소에 있다 탑승하니 안도감이 다 생긴다. 누군가 포기한 두 자리라서 우리 지정 좌석은 맨 뒤에 있었다.

죽전에서 이 여행을 추천하고 동행하시는 선생님이 타셨다. 친구가 아프기 전에는 봄가을로 이런 여행지를 셋이 같이 다니곤 했었다. 겨우 2,3년 전 일인데도 전설처럼 먼 과거 같다. 우울감을 살짝 접어두고 오늘을 즐기기로 했다. 이제 어딜 가고 싶거나 하고 싶은 일은 미루지 말자! 뭐든지 생각날 때 바로바로 하자! 이렇게 마음먹었으나 몸이 잘 따라주지 않는다. 혹시 몰라 챙겨 온 멀미약과 신경안정제를 뒤적거리는 내게 선생님이 뭔가를 내미신다. 고양이 장식품이다. 유튜브를 보시다 너무 귀여워 직접 만드셨단다. 손재주가 좋으셔서 직접 만드신 걸 자주 챙겨 주시긴 했으나 그 정성과 솜씨에 나도 모르게 행복한 미소와 감탄이 흘러나왔다. 만들기에 젬병인 나로서는 이 선생님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다.

집에 오자마자 자주 들고 다니는 가방에 까미를 꼭 닮은 까만 인형을 달았다.

11시 40분경 장성역 주변 도착. 엘로우 시티라더니 여기저기 노란색이다.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이미 줄을 선 사람들이 있었다. 줄을 선 사람들을 스치고 예약한 사람으로 당당하게 입장. 실내는 소박했다. 우리 팀은 금강산도 식후경을 실천하는 사람들답게 일단 상에 차려진 반찬을 먼저 먹기 시작했다. 허기는 나만 느낀 게 아닌 모양. 반찬을 몇 번이나 리필했다.

갈치찜으로 점심을 먹었다. 전라도의 반찬 맛은 변함없이 좋았다. 갈치찜을 찍을 겨를도 없이 먹기 바빴다.

다들 이른 시간에 나오느라 아침을 거른 상태. 나중에는 배가 부른 데도 호박식혜까지 후식으로 챙겨 먹었다. 도착 전에 살짝 멀미기가 있어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있었으나 기우였다. 간만에 전라도 손맛을 민끽한 기분이었다.

버스는 곧바로 장성호로 출발. 황룡강 장성댐은 이제 가을이 막 오기 시작하는 분위기였다. 마침 꽃 축제 기간이라서인지 입구 이전부터 강가에는 붉은빛 가득한 코스모스들이 만개해 눈을 즐겁게 해 주었다.

장성댐
노란색 이미지를 입은 장성호 수변길 주차장. 노란 해바라기 모양의 바람개비가 인상적이었다
테크 길 입구 만개한 백일홍
수변길 입구 표지판
바람이 많이 불어 황금빛 출렁다리가 제법 흔들렸다
테크 길 덕분에 걷기가 수월했다. 물빛이 하늘빛처럼 맑은 파랑이었다.

날이 다소 쌀쌀했다. 다행히 햇살은 맑고 화창했다. 댐 위로 올라가 천천히 테크 길을 걷기 시작했다. 맑고 화창한 날씨 덕에 시계가 환해 새파란 하늘이 더 시리게 느껴졌다. 화사한 단풍 대신 녹음의 끝자락을 구경하는 마음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전라도 장성까지 온 이유를 스스로 질문할 필요도 없었다. 마스크를 벗고 청량한 공기를 자꾸 들이마셨다. 마치 내 폐에 가득했던 나쁜 공기를 다 바꾸고 돌아갈 결심을 한 사람처럼. 걷는 걸음이 가벼웠다. 장성역에서 든든하게 채운 배를 여기서 다 소화시키는 특별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를 안내하는 가이드 필드로 님은 정말 바쁘셨다. 회원들 사진을 부지런히 찍어주시랴 안내하시랴 몸이 열개라도 부족할 정도로 뛰어다니셨다. 출렁다리 하나만 보자고 하셨다가 풍경이 좋아서인지 두 개를 보자고 하시며 우리에게 주신 산책 시간은 1시간 30분.

천천히 테크 길을 걸었다. 시간 계산도 없이 걸은 것이다. 출렁다리 두 개를 다 둘러보고 돌아섰는데... 일행들이 이미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다. 어! 하는 사이에 거리가 점점 벌어졌다. 그때야 '아차~' 싶었다. 이 모임은 원래 걷기로 출발해 그쪽 분야에서 특화된 분들이었음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거리감을 인식한 순간부터 여유 있던 발걸음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워 워킹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두 번째 출렁다리에서 돌아오는 2.5킬로는 주변 풍광을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나 할까?

동행 새벽별 님과 나는 중학생들을 인솔하여 수학여행이나 수련회 소풍 등을 수도 없이 다녀 본 사람들이다. 정해진 시간이나 규칙을 지키지 않는 학생들을 혼내 본 경험이 한두 번인가? 민폐 끼치는 걸 성격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들이니 동행들을 기다리게 하는 진상짓을 하지 않기 위해 더 부지런히 걸을 수밖에 없었다. 뛰지만 않았을 뿐 파워 워킹 덕에 늦지 않게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버스에 탑승하고서야 댐 위에서 동행 몇이 내려오는 걸 보았다. 댐 위를 돌아볼 생각도 못한 것이다.

점심으로 배를 넘치게 채웠는데도 가방을 뒤적거리며 먹을 걸 찾았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부지런히 다음 목적지 백양산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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