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계속 수런거렸다. 뭘 해도 안정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참사 소식을 듣는 순간부터 아마 다들 같은 마음이었을 거다. 어제까지 선진국에 살았던 거 같은데 하루 사이에 추락한 기분이 다 들었다. 나만 이런 마음인 건 아닐 텐데.
마음이 무거우니 발소리도 무거웠을 거였다. 초화지 핑크 뮬리 색상이 바래져가는 모습을 눈으로 훑으며 낙엽 밟는 소리를 귀로 들으며 천천히 걸었다.
여문 늦가을 햇살이 노랑과 진자주 국화, 그리고 댑싸리 위에 퍼붓고 있어 '가을이 여문다'는 표현이 실감되는 그런 날이었다. 하지만 얼굴에 느껴지는 바람은 제법 쌀쌀했다. 참사 희생자와 그 가족의 하늘이 무너질 마음이 떠올라 안타까웠다. 아무 연관성이 없는 나도 이럴진대 순식간에 사랑하는 혈연을 잃은 가족들의 마음은 어떨까?
천천히 바스러지는 낙엽을 밟으며 공원 초화지 모서리를 막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한 때 그곳에는 내게 통행세를 꼬박 물게 하던 녀석이 있었다. 턱 아래 부분과 뒷발 일부만 특이하게 하얗고 나머지는 모두 까만 털인 녀석이다. 나는 그 녀석 이름을 짓지 않았다. 그냥 "야! 까만 놈"이었다.
녀석이 안 보인 건 시간이 꽤 지났다. 작년 가을 이 무렵 친구들과 제주도를 며칠 다녀온 후다. 일주일 만에 가 보니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속으로 '다른 살 길을 찾았나?' 싶었다. 초화지 주변도 꾸준히 냥이들 급식을 챙기는 분이 있으니 굳이 날 기다리지 않아도 굶어 죽지는 않았으리라. 그래도 행여 녀석이 다시 나올까 지나갈 때마다 두리번거리곤 했다.
그곳은 휴일이 아니어도 가을의 풍취를 즐기려는 사람들 출입이 제법 많은 곳이다. 주변 소롯길은 벚나무가 빙 둘러 심어져 있다. 지난봄 눈송이처럼 벚꽃이 날리더니 벌써 낙엽이 잔뜩 깔리다니.
'시간이 정말 빠르구나.' 하며 새파란 하늘 한 번 보고 바닥에 갈수록 즐비해지는 낙엽 한 번 보고. 상념이 끝없이 밀려와서인지 까만 냥이 한 녀석이 핑크 뮬리 밭에서 나와 내 앞을 스치듯 달려가는 걸 별생각 없이 바라봤다.
공원에서 흔히 마주치는 고양이라고 무심히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분명 덤불숲으로 날렵하게 뛰어가 숨어버리던 녀석이 그 숲에서 후다닥 되돌아 나온다. 그리고 테두리에 금빛이 도는 까만 눈으로 말끄러미 나와 눈을 맞춘다.
까미와 유별나게 닮은 녀석이라 못 알아볼 리 없었다. 녀석도 분명 나를 알아봤는지 '야옹~' 소리를 낸다. 낮에 고양이들은 함부로 소리를 내지 않는다. 나름 반가워서였을까?
근 일 년은 보지 못했던 녀석이라 나도 모르게 말을 걸었다. '너 나 알지?' 그게 잘못이었다. 녀석이 눈을 맞추거나 말거나 그냥 무시하고 지나갔어야 했다. 결국 나는 다시 녀석의 호구가 되었다. 뭘 안 주고 갈 수가 없었다. 내 가방에는 언제 어디서 부딪칠지 모르는 안면 있는(?) 고양이들을 위한 파우치와 캔이 상비되어 있다. 정말 어쩔 수 없이 공원을 나갈 때마다 습관적으로 챙기는 것들이다. 특히 아롱이는 박물관 주변 어디서 마주칠지 모른다.
일단 나에게 아는 척을 하는 녀석들은 먹거리를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그걸 나도 안다. 밥 없다고 그냥 지나치려 하면 뒤따라 뛰어오며 심지어 소리도 지른다. 마치 왜 그냥 가냐는 듯이 냥냥거린다. 사람들 눈길이 다 신경 쓰일 정도다. 밥을 맡긴 것도 아닌데 그 소리는 나에게 죄책감을 부른다.
하루 그곳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도대체 몇 명인가? 아마 수 백 명은 될 것이다. 그 수없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자기에게 밥을 주는 사람을 정확히 인지하는 고양이들의 눈썰미! 나는 평소에도 자주 감탄하긴 했다. 오죽하면 눈치 천단의 고양이들이라고 부를까? 결국 그날은 그릇도 없어 떨어진 나뭇잎 두 개를 포개 먹이를 챙겨줬다.
작년 가을 내 건강보험이 모두 만료되었다. 다시 건강보험을 들어야 하는데 나이가 드니 보험료가 만만치 않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고양이 밥값이 얼마인지 계산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고교시절 수학 없는 나라에 살고 싶었던 수포자 중 한 명이었다. 그런 나도 공원 냥이들 밥값이 얼마인지 계산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수입은 고정적인데 각종 지출이 줄지 않는 상황에서 더 저렴한 고양이 캔과 파우치를 사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지출을 줄일 방법이 따로 떠오르지 않아 24개 한 박스에 오천 원 정도 저렴한 W상표를 구입해 실험적(?)으로 급식을 했다.
결과는? 급식을 거부당한 것 만이 아니라 나를 쫒아다니게 만들었다. 심지어 바지를 잡아끌었다. 그 밥이 아니라며! 그 상황은 절대 웃기지 않는다. 나는 정말 당황스러웠다.
공원에서 아롱이를 만난 초기에는 세계적인 참치 선단을 가지고 있는 국내산 캔을 먹였다. 무엇보다 양이 많아서다. 가격도 저렴하고. 고양이들도 국산을 먹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런저런 이유로 고양이들이 선호하는 걸 자꾸 사게 되었다. 고양이들 입맛을 알고 싶었던 건 절대 아니다.
사랑이의 경우도 녀석이 잘 먹는 걸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 새끼를 잃고 사방팔방 정신없이 새끼 흔적을 찾아 냄새를 맡고 돌아다니는 녀석을 봤기 때문이다. 밥도 먹지 않고 잃어버린 새끼를 찾는 어린 모성애에 얼마나 짠했는지. 그걸 직접 지켜보지 않으면 정말 모른다. 고양이에게도 그렇게 치열한 모성애가 있는지 나도 몰랐다.
가끔 사람의 마음에 대해 생각할 때가 있다. 고양이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이 뭐가 다를까?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며 말을 거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음색이 완전히 다르다. 나는 그 소리를 목에 꿀을 바른 것 같다는 표현을 쓴다. 갈수록 밥을 줘야 하는 고양이들이 늘어나 돈 계산을 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쉽게 그만두지 못하는 마음. 나는 그걸 안다.
며칠 전 독감에 걸려 골골거리다 늦은 시간에 공원에 나갔다. 병원까지 다녀갔으니 평소보다 4시간은 늦게 그곳에 도착했을 것이다. 감기 때문인지 식은땀이 나고 몸이 무거웠다. 열은 나지 않는 데 두통이 장난 아니었다. 더 늦지 않게 뇌혈관 질환 보험(보험료 부담 때문에 안 들었다)도 들어놔야겠다 싶을 정도였다.
멀리서도 덤불에 까만 뭉치가 보인다. 온몸을 웅크리고 있다 발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선다. 마음이 약해서 고양이에게 끌려다닌다고 나를 비난할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한 마리로 시작해 매일 25마리를 먹이는 분보다는 멘탈이 강한 편이다. 모르는 녀석들이 나와 청해도 밥을 잘 주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올 것을 알고 대놓고 기다리는 녀석들까지 떨치기는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엄마 걱정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유년의 윗목
조금 떨어져 밥을 먹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기형도 시인의 <엄마 걱정>을 부모의 입장에서 되뇌어 보게 된다. 제법 긴 시간 녀석은 하염없이 나를 기다렸을 터.
아무리 기다려도 되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난 가족을 가슴에 묻어야 하는 사람들이 저절로 떠오른다. 적어도 가족을 잃은 그분들에게 상처를 줄 말은 나라도 하지 말자고 생각한다. 그 책임은 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걸 너도나도 알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