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낙엽을 줍지 않게 되었을까?

by 권영순

단풍이 형형색색 물드는 시기가 되면 자주 하던 일이 있다. 학교는 가을이면 작품 전시회를 연다. 미술이나 가정 등 실기 수업에서 그냥 묻어두기에 아까운 학생들의 작품을 뽑아 전시회를 열어 공개한다. 거기에 가끔 나도 끼어들었다. 주로 시화전이다.

공원 인근 B중학교에 근무할 때는 시화전에 필요한 낙엽을 구하려 일부러 수업 시간을 할애했다. 교무부 수업계를 괴롭혀가며 두 시간을 연달아 진행할 수 있도록 부탁했다. 기안을 해 윗분들의 허락을 구하고 학생들을 끌고 공원에 갔다. 당시는 한 반 50명이 넘었다. 주로 3학년 수업을 했던 터라 다들 나보다 키가 컸다. 그런데도 혼자 인솔할 수 있었으니 그때의 학생들이 지금 돌아보면 너무 고맙다. 학생들은 예쁜 낙엽을 주워 교과서에 끼워 말렸다. 잘 말린 낙엽에 좋아하는 시나 자작시 또는 글을 쓰고 그림까지 그려 코팅했다. 학생들은 그 수업을 좋아했다. 모방 시 수업처럼 자신의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어서였을까?

학교에 부탁해 반마다 커다란 나무 판을 구해 이젤처럼 세우고 학생들이 작품으로 탄생시킨 낙엽들을 마음대로 붙이게 했다. 전시회는 열렬한 성원 덕에 나름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뭐 교과서를 지루하게 공부하는 대신 야외 수업을 하니 그것에 더 열광한 것이기도 했겠지만.

하지만 어려움도 있었다. 교실에서의 작업이야 제한된 공간이니 아무 문제없었다. 문제는 공원에서 주로 일어났다. 내가 잠시 눈만 다른 데 돌려도 금방 공원 관리를 맡은 경비 아저씨들의 호루라기 소리와 야단치는 소리를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공원 야외활동을 위해서는 미리 공문을 보내야 한다. 하지만 공원에 머무는 시간이 한 시간 정도일 텐데 무슨 힘들게 공문까지 보내랴 싶어 그냥 갔다. 덕분에 학생지도 똑바로 하라고 훈계까지 듣는 건 항상 내 몫이었다.

단풍과 낙엽은 다른 단어다. 차이도 분명히 있다. 나는 학생들에게 사전 교육을 나름 열심히 시켰다. 바닥에 떨어진 낙엽만 주워야 한다고 주의를 거듭 준 것이다. 모양도 색감도 좋은 낙엽을 잘 골라 책갈피에 끼워 말리면 된다고 말이다. 하지만 바닥에 즐비한 낙엽을 보다 나무에 달린 단풍을 보면 마음이 달라지나 보다. 견물생심인 건 공짜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나뭇잎에서도 생긴다는 걸 학생들은 곧 알게 되나보다.

공원 자작나무 숲. 낙엽이 융단처럼 깔려 있다
토성 길에서 내려다본 팔각정. 인근 P중학교 학생들을 데리고는 이곳으로 갔다. 벚나무 단풍이 아주 고운 장소다.
조각공원 이 주변은 은행잎이 융단처럼 깔린다. 중국단풍도 많아 다양한 단풍들을 구할 수 있다.
햇살에 반짝이는 단풍잎이 올해도 몹시 곱다. 그 사이 나무들이 많이 자랐다.
공원 식물원에는 감나무 잎이 예쁘다. 학생들을 데리고 이곳도 다녔다

더 문제가 되는 건 사춘기 넘치는 혈기를 풀려는 남학생들이 수십 명이었다는 점이다. 교실을 벗어나 오래간만에 공원에 왔으니 이해는 되었다. 하지만 나무에 결코 올라가 본 적이 없는 서울 토박이들이 분명한데 낙엽을 보다 단풍을 보면 갈등이나 선생님의 당부를 불러올 시간이 삭제 상태가 되는 모양이었다. 더구나 색감 고운 애기 단풍들이 많은 곳에서야 더 말할 것도 없다.

내가 B중학교에 근무할 당시 공원이 생긴 지는 10년이 조금 지난 시기다. 당연히 공원에 심긴 나무들은 우람하거나 울창하지 않았다. 단풍나무는 더 말할 것도 없이 가지가 가는 그야말로 애기 단풍나무였다. 그 나무들에 달린 단풍잎을 채취하겠다고 나무에 오르는 남학생들이나 열혈 여학생들을 말리는 게 나로서는 역부족이었다. 제발 나무에서 떨어져 다치는 일만 생기지 않는다면 다행이었다고나 할까? 게다가 왜 공원 경비아저씨들에게 훈계는 학생 대신 인솔 책임자인 내가 듣고 죄송하다고 거듭 고개를 숙여야 하는지??? 지금이야 당시 그 상황을 떠올려도 추억 한 자락이니 빙긋 미소가 지어지고 말지만.

요즘같은 가을 미술관 주변이나 자작나무 길, 수변 자락을 걷다 보면 그때 각종 말썽을 부리던 녀석들이 어떻게 자라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가끔 궁금해진다.

나한테 미안해하며 거둬들인 낙엽(나무에 올라가 딴 단풍잎을 버리지는 않았다)으로 그 무언가를 써 전시했던 학생들은 모두 시간의 강을 잘 건너고 있겠지. 벌써 40대가 되었으니 정말 고단하고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을 테지만 말이다. 애지중지 잘 말려둔 낙엽으로 정성껏 작품을 만들던 사춘기 학생들의 진지한 교실 분위기. 이제 돌아보면 다 추억이다.


근래 나는 평생 가졌던 습관 몇 가지를 버렸다. 낙엽도 더 이상 줍지 않게 된 것이다. 그걸 어느 순간 갑자기 깨달았다. 길을 가다 예쁜 낙엽(특히 벌레가 먹은 낙엽들이 모양이 더 예쁘다)을 주워 식탁 유리에라도 끼워 놓던 걸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수년 전부터 내 얼굴 사진을 찍지 않게 된 이유는 확실하다. 사진 속에 그대로 드러나는 나이를 인정하기 힘든 속마음 때문이다. 그걸 나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하지만 낙엽은 왜 더 이상 줍지 않게 되었을까?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이 아름답다는 말은 봄에만 해당되는 게 아닐 텐데. 꽃잎은 떨어질 때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낙엽도 분명 그랬다. 그래서 가을이면 학생들까지 끌고 공원이나 학교 운동장가라도 나가 낙엽을 주워 해마다 낙엽 전시회를 했었다. 그냥 보내기는 아쉽고 거기서라도 가을의 정취를 느껴보라는 교육자의 소명 의식??? 그걸 나도 즐겼던 것 같다.


화성 구포리에 살 때 가을걷이가 끝나면 엄마와 나는 창호지 바르기를 했었다. 그 속에 예쁜 나뭇잎이나 풀잎들을 이중으로 끼워 발라 두면 호롱불 아래 근사한 그림이 나타났다. 두둥실 만월이 떠오르면 창을 두드리듯 창호의 문양은 아른아른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어 나도 모르게 구경하다 잠들고는 했다. 어린 시절의 그런 추억을 만들어준 당시 젊으셨던 엄마를 나는 그렇게 기억해낸다.

그만큼 나에게 낙엽 줍기는 긴 시간 이어온 습관이었다. 올해도 낙엽이 늘어진 길을 걸으며 나도 모르게 예쁜 낙엽을 스캔하듯이 찾는다. 하지만 더 이상 주워 들고 집에 들이지는 않는다. 왜 그런 소소한 습관까지 버렸을까? 아직 답을 찾지는 못했다. 그나마 조금 남아 있는 감성까지 다 사라진 건 아닌지 슬쩍 걱정이 되는 가을이다.

서울의 명소 중 하나인 송파 은행나무 길

서성인다 / 박노해


가을이 오면

창밖에 누군가 서성이는 것만 같다.

문을 열고 나가보면 아무도 없어

그만 방으로 들어와 나 홀로 서성인다.


산뜻한 가을바람이 서성이고

맑아진 가을볕이 서성이고

흔들리는 들국화가 서성이고


가을편지와

떠나간 사랑과

상처난 꿈들이

자꾸만 서성이는 것만 같다.


가을이 오면

지나쳐 온 이름들이

잊히지 않는 얼굴들이

자꾸만 내 안에서 서성이는 것만 같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김밥으로 말아 낸 사랑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