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영순 Dec 16. 2022

냥이들의 겨울나기

 춥다. 지난밤 눈까지 내렸다. 바람 소리가 장난 아니었다. 우리 아롱이는 어디서 추운 밤을 보냈을까?

 아롱이는 어디서 잠을 자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작년 겨울은 새끼 세 마리와 지냈으니 온기가 있었을 터. 제발 사랑이랑 은토끼님이 설치해 준 집에 들어가 같이 지내면 좋을 텐데. 바람이 불며 눈발이 날리니 녀석의 안위가 더 궁금하다.

 여름 지내기도 문제지만 겨울이면 공원 냥이들 걱정이 더 된다. 날씨가 추워지면 급식도 힘들다. 물도 순식간에 얼어버린다. 오전 10시에 갔다 서너 시에 다시 가 보면 그 사이 물도 꽁꽁 얼어있다. 다 먹지 못한 습식 캔도 얼어붙어 있기는 마찬가지다. 냥이들을 불러대며 직접 먹는 걸 보려고 찾을 수밖에 없다. 반갑다며 눈밭을 뛰어오는 냥이들 모습이 그림이나 풍경으로 보이지 않는다. 녀석들의 극한 삶이 느껴져서다.


 이 정도면 해가 충분히 올라와 녀석들이 나와 있을까 싶어 집을 나선다. 누가 나를 만나도 알아보기 힘들 차림이다. 하지만 냥이들은 내가 어떤 차림으로 불러도 쏜살같이 달려온다.

 "까미야. 아롱이 엄마랑 동생들 밥 좀 주고 올게.”

 까미한테 허락을 구한다. 하지만 부루퉁한 표정을 풀지 않는다.

 속으로 "짜식아. 넌 따뜻한 곳에서 이불까지 덮어주는 사람들이랑 지내잖아~" 하며 무시한다.

날이 추워지니 이불을 덮어줘도 가만히 있는다. 까미는 공원에서 겨울을 난 적이 없다. 따뜻한 곳을 기가 막히게 잘 찾는다.
작은 아들이 입양한 나리는 겨울을 한 번 나고 집으로 들였다.

 11월 중순부터 공원 음수대가 폐쇄되었다. 냥이들 물을 집에서 가져가야 한다. 페트병에 약간 따뜻한 물을 담아 들었더니 온기가 전해온다. 물이 너무 뜨거우면 페트병이 쭈그러들기 때문에 적당한 온도가 중요하다. 음수대는 내년 3월이나 되어야 다시 열 것이다. 밥그릇도 일회용을 써야 한다. 닦을 곳이 여의치 않아서다. 화장실 청소 여사님이 냥이들 밥그릇을 화장실로 가져와 닦는 걸 하수구가 막힌다며 싫어하셔서다. 이해가 되긴 한다.


 아롱이와 사랑이 파우치와 캔은 안주머니에 넣어 온기를 나눈다.

 집을 나서자 발걸음이 나도 모르게 빨라진다. 냥이들 밥이 든 비닐봉지와 페트병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겨우 7마리 냥이들 먹거리가 뭐 그리 무겁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겨울이 되면 객식구들이 늘어난다. 밥을 청하는 걸 모른 척할 수 없다. 10마리가 넘을 때도 있어 밥이 부족할까 봐 살짝 긴장된다.


 박물관 후원으로 가는 길 주변은 야트막한 언덕이다. 언덕길을 오르며 두리번거린다. 인도로 통하는 계단 아래에서 고등어 녀석이 나올 때가 있다.

 멀리서도 박물관 창가에 하얀색 젖소 무늬가 어른거리는 게 눈에 들어온다.

젖소 무늬 사랑이가 추위를 피해 창가에 앉아 있다.

 사랑이가 거기 앉아 있다. 햇살이 환한 데다 바람막이도 되고 시야가 트인 장소라 괜찮은 모양이다. 갑자기 마음이 짠하다. 얼마나 추웠으면 저러고 있을까? 얼른 달려가 보니 아롱이도 그 아래 기다리고 있다. 요즘 이 모녀는 오전에 주로 이곳에 있다 나온다.

어느 날은 아롱이가 창가에 앉아 있다. 이곳은 통행이 제한된 곳이다.

 냥이들 밥을 주는데 객식구들이 나온다. 치즈 냥이 한 마리와 나리 아빠라고 추정되는 턱시도 녀석이다. 턱시도 녀석은 지난봄부터 침을 흘리며 다녔다. 구내염이 걸려 오래 살지 못할 줄 알았는데 누군가 약을 먹였는지 지금은 침을 흘리지 않는다. 남자 집사님 한 분이 녀석의 사진을 들고 찾아다니시더니.

 고등어는 주차장 주변에서 만날 수 있지만 일단 박물관 뒤에서도 불러본다. 하수구 근처에서 불러대고 주차장으로 가 보면 따라온다. 자기 이름은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녀석이 새끼들밥 먹으러 오는 걸 방해하는 느낌이 들어서다. 중성화를 시키느라 병원에 입원시킨 사이 새끼들은 완전히 독립되었다. 새끼들 밥이 다 얼어붙어 버려 같이 먹이면 좋은데. 저만 나와 먹는다.

고등어는 아주 추우면 정산소 앞에 마련해 둔 집에 들어가 잔다.


 귀요미 자리는 아주 복잡하다. 며칠 전 오전에 귀요미가 안 보여 걱정을 했더니 은토끼님이 찾았다며 사진을 보내셨다. 입 주변에 선명한 핏자국이 보였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해 오전에 나오지 못한 모양이다. 다행히 상처는 금방 아문 것 같았다.


 어떤 놈(?)이 귀요미 주변에 있는 집을 수시로 가져다 버린다. 밥그릇도 발로 밟아 부숴버려 거기를 갈 때마다 전투태세를 다지고 가야 한다. 그런데 이제는 고양이에게까지 괴롭힘 당하니 정말 신경이 쓰인다. 귀요미에게 마련해 준 상자나 집은 다롱이가 수시로 차지하더니 둘 사이 무슨 사달이 난 거 같다. 다롱이는 귀요미 거라면 뭐든 욕심을 부린다. 자신이 객식구라는 사실을 잊고 산다.

귀요미 주변은 까치들도 단체로 몰려든다. 그곳 건사료는 순식간에 동이 난다.


 다롱이만이 아니라 턱시도 냥이 한 마리도 아침마다 그곳을 지킨다. 그 녀석은 자기도 밥을 줘야 한다며 시끄러울 정도로 울어댄다. 녀석도 자기 입맛을 주장한다. 아무 거나 안 먹는다. 고양이 캔 값이 제발 오르지 않기를 바라는 이유다.


 밥을 다 주고 초화지로 가 보면 거기 검은 냥이도 밥 얻어먹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어디선가 지키고 있다 순식간에 몰려든다. 안면 있는 냥이가 되면 그다음부터는 안 줄 수가 없다

그 주변 냥이들도 장난 아니다. 우르르 몰려들어 밥을 가로챈다. 하지만 이미 밥을 거의 다 털린 터라 남은 게 별로 없다. 그래서 공원 냥이들 밥을 주시는 분들의 등짐 배낭이 큰 모양이다.

토성을 지나가다 우연히 냥이들 밥자리를 돌보는 분을 보았다. 멀리서도 꼼꼼히 보살피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숲길 깊숙이 설치한 밥자리에 냥이들 발자국이 어지럽다.

  눈이 내린 데다 강추위까지 몰려와 힘든 밤을 보냈을 아이들을 돌보는 사람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분들은 생각보다 많다. 그 비용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라는 훈수를 나도 여러 번 들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푼돈을 벌기 위해 전쟁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구에 사람만 사는 건 아니다.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사람보다 생존 능력이 부족한 공원 냥이들을 돌보는 분들. 공원을 산책하며 지나가는 1인으로 살았을 때는 그분들의 수고가 어떤 건지 몰랐다.

  개인적으로 돈과 시간을 들여 냥이들의 겨울나기를 돕는 사람들에게는 고운 마음 씀에 맞는 행운이 가득하기를 빈다.

 그리고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내는 아롱이와 그 가족들이 거뜬히 이 추위를 이겨내고 찬란한 봄을 맞기를 마음속으로 응원한다.

누군가 만들어둔 눈사람 주변으로 밥을 찾는 공원 냥이 한 마리가 서둘러 가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김장 김치 맛에 대한 가족들의 반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